브레이크 걸린 현대차의 전기차 드라이브…尹대통령 해법 있나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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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 전기차보조금서 현대차‧기아 차종 제외 ‘후폭풍’
尹대통령, 한‧미 정상회담 앞두고 ‘성과’ 압박 받을 듯

“2030년까지 전기차 분야에 24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판매량 톱3에 들겠다.”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시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 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내놓은 청사진이다. 완성차 분야뿐만 아니라 전기차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현대차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자국 우선주의’ 기조 하에 추진 중인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현대차‧기아의 전기차종이 보조급 지급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조치는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게 주된 반응이지만, 현대차‧기아의 주가가 잇따라 들썩이는 등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경기도 화성시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 앞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관계자들과 사전 환담을 하는 모습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경기도 화성시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 앞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관계자들과 사전 환담을 하는 모습 ⓒ 대통령실 제공

미‧중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현대차·기아

17일(현지 시각) 미국 재무부는 IRA 세부 지침에 따라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전기차 대상 22종을 발표했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골자다. 결국 현지에 전기차 생산시설이 없는 현대차‧기아의 전기차종은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차 GV70의 경우 북미에서 조립하지만 배터리가 중국산이다.

IRA 세부 지침 상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북미에서 제조한 배터리 부품을 50% 이상 사용하면 3750달러, 미국 혹은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된 배터리 소재를 40% 이상 사용하면 나머지 3750달러를 받는다. 때문에 GM이나 테슬라, 포드 등 미국 업체를 제외한 외국 전기차 업체들은 모두 보조금 대상에서 빠졌다.

IRA의 핵심은 미국 정부의 ‘자국 우선주의’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의 제조업 부흥을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미국 내에선 이로 인한 경제적 효과도 벌써 기대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IRA와 더불어 반도체지원법(CHIPS)이 통과된 이후 미국 내 첨단산업 분야 투자 규모는 총 2040억달러(한화 약 266조원)로 껑충 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21년 연간 투자액의 2배에 달한다.

반대로 한국 전기차 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이미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의 북미 전기차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조금까지 받지 못하면 현지 가격 경쟁력이 뒤쳐질 수 있어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1분기 미국 시장에서 최다 판매실적을 갈아치웠지만, 차종을 전기차로 좁히면 사정은 달라진다. 미국 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판매량은 1분기 기준 1만4703대를 기록, 전년 대비 6.5% 줄어들었다. 특히 지난 3월 한 달 간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5225대로, 전년 동월 대비 32.1% 급감했다.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이 공개된 이후 현대차‧기아의 주가는 잇따라 빠졌다. 18일 오후 1시50분 기준 현대차는 전일 대비 5500원(2.82%) 하락한 18만9500원에 거래 중이다. 장중 3.5%까지 낙폭이 확대됐다. 기아 역시 전일 대비 2400원(2.84%) 내린 8만21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2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2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현대차가 솟아날 구멍은

다만 업계에선 IRA 조치에도 불구하고 국내 전기차 업체가 “당장 손해 볼 것은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미국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란 사실은 이미 지난달 IRA 세부지침이 공개될 때부터 예견된 데다, 경쟁 업체인 일본과 유럽의 다른 전기차종도 보조금을 못 받는 처지여서다.

현대차그룹 측은 상업용 리스 전기차는 IRA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착안해, 향후 리스 판매 비중을 확대하는 것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또 2025년 건립 예정이던 미 조지아주 내 전기차 및 배터리 합작 공장의 가동 시기를 이르면 내년 중반으로 앞당겨 북미 시장 점유율을 조속히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26일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기대감을 품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IRA 관련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양국 관계를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하고 그 일환으로 IRA와 CHIPS 등 안건을 주요 의제로 다루겠다는 입장이다.

당장 야권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정부가 ‘성과’를 가져와야 한다며 압박에 나선 상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미‧중 간의 총성 없는 무역 전쟁이 심화하면서 한국의 글로벌 경제환경이 여러 도전에 직면해있다”며 “윤 대통령이 제발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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