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은 왔지만…‘감염병X’ 발생 시나리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3 12:05
  • 호수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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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빨라지는 감염병 유행, 이젠 대응 아닌 ‘대비’가 필요한 시기
중장기적 대비에 범정부 차원의 지원과 통치자 의지는 필수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2일 746만 명까지 치솟았던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꾸준히 줄어들어 4월에는 하루 10만 명 아래로 감소했다. 감염병 확산 감소세가 뚜렷해지자 미국은 5월11일 코로나19에 대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종료하기로 했다. 일본도 5월8일부터 코로나19를 계절성 독감처럼 관리할 예정이다. 사실상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마무리되고, 엔데믹(풍토병화)이 시작되는 셈이다. 

세계 각국이 5월을 코로나19 엔데믹 시작점으로 삼은 배경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WHO는 4월말이나 5월초 국제보건규칙 긴급위원회를 열어 2020년 1월30일 선언했던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해제할 계획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3월17일과 4월7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에 대한 PHEIC 선언이 올해 안에는 해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도 WHO의 결정에 발맞춰 5월 감염병 위기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낮출 예정이다. 감염병 위기 단계는 ‘관심(해외 신종감염병 발생 및 유행)→주의(국내 유입)→경계(국내 제한적 전파)→심각(지역사회 전파 및 전국 확산)’ 4단계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직후인 2020년 2월부터 ‘심각’ 단계를 유지해 왔다. 감염병 위기 단계가 경계로 하향되면, 대응 수준이 완화돼 국무총리가 본부장으로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해체되고 보건복지부 내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중심으로 재난위기총괄체계로 전환된다. 

7월에는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2급에서 4급으로 조정하고 주요 방역 조치를 크게 전환한다. 현재 코로나19는 결핵·수두·홍역·콜레라 등과 함께 2급 감염병이어서 발생 ‘24시간 이내’ 신고하고 격리가 필요하다.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을 4급으로 조정하면 이런 의무 사항들이 사라진다. 격리 의무가 해제되면 그동안 해오던 치료제·치료비 지원과 생활지원금·유급휴가비 지원이 축소되거나 중단된다. 또 2024년부터는 코로나19를 계절성 독감처럼 상시로 관리하는 감염병으로 전환하고, 먹는 치료제와 예방접종 지원도 마무리된다. 

이처럼 대다수 국가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 중이지만, 코로나19가 3년 동안 할퀸 상처는 작지 않다. 아워월드인데이터는 4월12일 기준 세계 230여 개국에서 코로나19 감염자는 약 7억6279만 명, 사망자는 약 690만 명으로 집계했다. 세계 인구의 10%에 육박하는 사람이 피해를 본 셈이다. 국내 사정도 말이 아니다. 4월12일 기준 인구의 60%가 넘는 3092만 명이 감염됐고, 그 가운데 3만4332명이 목숨을 잃었다. 감염자 규모로는 미국(1억638만 명)·인도(4476만 명)·프랑스(3985만 명)·독일(3837만 명)·브라질(3731만 명)·일본(3353만 명)에 이어 세계 7위, 인구당 감염률로는 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프랑스에 이어 세계 4위다. 치명률이 0.11%로 낮은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다. 이처럼 우리의 방역 성적표는 초라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친 2020년 8월19일 서울·경기·인천 지역에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되자 국민은 마스크 착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시사저널 박정훈

감염병 피해 규모는 커지는 양상

‘2027년 3월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2238명이 확진됐고 국내에서도 23명의 감염자가 발생해 4명이 사망했다. 치명률이 무려 17.4%다. 이른바 코로나27은 코로나19와 호흡기 증상이 비슷하지만 구토 증세를 보인다는 점이 다르다. 코로나27 확진자의 30%가 구토 증세를 보인다. 코로나27은 코로나19 변이가 아니라 새로운 바이러스다. 코로나27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전 세계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상은 새로운 감염병 출현을 가상해 만든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는 질병관리청이 3월27일 충북 오송 질병청사에 마련한 ‘감염병 예방관리 아카데미’에서 역학조사 교육 목적으로 공개했다. 가상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료된다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다가 또다시 인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최근 감염병 추세를 보면, 감염병 출현 시기가 짧아지고 피해 규모는 커지는 양상이다. 2003년 사스(SARS),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MERS), 2019년 코로나19 등 새로운 감염병 출현 주기는 6년→6년→4년으로 짧아졌다. 감염병 피해는 각각 3명→1만5160명→186명→약 3000만 명이다.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더 센 감염병이 출현할 수 있다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질병관리청은 3월2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신종감염병 대유행 대비 중장기계획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정통령 질병청 위기대응총괄과장은 “감염병 유행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어 (신종 감염병은) 늘 우리 옆에 존재하는 위험”이라면서 향후 25년 이내 코로나19보다 더 큰 팬데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세대가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을 또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질병청은 코로나19 다음 팬데믹인 ‘감염병X(감염병엑스)’에 대한 대비를 강조했다. 감염병X는 WHO가 2018년부터 쓰기 시작한 용어로, 미래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신종 감염병을 말한다.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미지수를 뜻하는 ‘엑스(X)’라는 알파벳을 쓴다. 이날 토론회에서 예측된 감염병X 후보로는 조류인플루엔자(AI) 인체 감염증이나 고병독성 RNA 바이러스의 인수 공통 전파 등이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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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하루 20만 명대였던 2022년 4월 서울역 임시 선별검사소에 사람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사후약방문식 대응으로는 안 돼

우리나라는 감염병 대응에는 강하지만 대비에는 약하다는 것이 의료계 진단이다. 한마디로 일이 터지면 잘 봉합하지만 그 전에 예방하는 시스템은 허술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대비가 부족한 탓에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초기 방역은 오락가락했다. 코로나19가 처음 퍼진 중국에 이어 두 번째 감염국이 됐다. 당시 190여 개국은 우리 국민의 입국을 제한 또는 거부했다. 감염병 대응의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청보다 대통령, 국무총리, 청와대 방역기획관 등 정치권의 목소리가 컸다. 

국민은 고강도 검사·추적·치료(3T)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불편과 고통을 기꺼이 견뎌냈다. 그러나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 소비 진작을 위한 지원, 백신 부작용에 대한 보상 등에서 뚜렷한 원칙이 보이지 않았다. 2021년 11월의 일상 회복 움직임은 최악이었다. 전문가들은 오미크론 대유행을 경고했으나 정부는 백신 접종률을 근거로 ‘방역패스’를 내세웠다. 과학적·합리적 대응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지난해 3월에는 하루 확진자가 세계 최고인 62만 명을 기록했다. 섣부르게 K방역을 자랑했던 일이 낯 뜨거울 정도였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우리는 코로나19 이후에도 감염병X 예방 시스템을 잘 갖추자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해이해졌다. 엠폭스(원숭이두창)가 이미 지역사회에 퍼지고 있지 않나. 벌써 코로나19의 교훈을 다 잊은 듯하다. 과거 감염병은 인명 피해만 줬다. 그러나 국제 교류가 활발한 현대사회에서 발생한 감염병X는 인명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피해를 준다. 앞으로 감염병X 주기는 과거보다 빨라질 것이다. 감염병X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중장기 계획에 쓰는 돈, 비용 대비 효율 높아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놓이자 우리는 백신과 치료제가 없어 갈팡질팡했다. 같은 시각, 미국·독일 등은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어 자국민의 안전을 확보했다. 감염병X에 대한 중장기 대비 체계를 갖춰둔 덕분이다. 중장기 대비 체계를 구축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감염병X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감시체계가 필요하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 역량도 갖춰야 하며, 의료기관의 중환자 병상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국민과의 소통체계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미리 계획해 둬야 한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에 우리가 대응을 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진단검사나 손실 보상 등에 지출할 경제적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5년이든 10년이든 향후 감염병X가 올 때는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가 지금보다 더 진전돼 있을 것이다. 그때 필요한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예컨대 진료기술, 역학기술, 병실 확보 등은 지금 당장 돈을 써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비용에 비해 효과적인 투자다. 이는 또 의료계의 구조적 개혁과도 맞물려 있으므로 거시적인 시각에서 감염병X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감염병이 터진 후에 돈을 쏟아붓고 감염병 유행이 잠잠해지면 지원을 줄여왔다. 즉 감염병 대비에 돈을 쓰지 않아 큰 대가를 치르는 악순환을 경험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감염병 대응보다 대비에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질병청이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중장기 계획에는 의료체계 개편 등에 큰 예산이 필요하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나 기획재정부 등 범정부 지원이 필수다. 그러나 계획만 있고 예산 지원은 없다. 당장 큰돈이 든다고 예산 지원을 미루면 감염병X가 터진 후에는 피해는 피해대로 보고 비용도 10배 이상 더 발생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악순환을 경험해 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감염병X 대비 체계를 갖추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5월초 감염병X에 대비할 중장기 계획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통치자의 의지가 없으면 공염불에 그친다. 김우주 교수는 “전문인력·방역조직·방역계획 등 감염병X 대비 시스템을 갖추고도 통치자의 의지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통치자가 의지를 보여야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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