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노선 포기한 룰라의 승부수, ‘자책골’ 될까
  • 정덕주 남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3 08:05
  • 호수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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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과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우주 협력계획 등 협정 체결
브라질 언론 “불쾌해진 바이든, 비싼 대가 요구할 것” 우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4월12일 밤(현지시간) 중세 고위 관료들의 수행을 연상하듯 호화롭게 구성된 200여 명의 정·재계 수행단과 함께 나흘간의 중국 국빈방문 길에 올랐다. 남미 최대이며 세계 6위로 2억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브라질은 중남미 1위의 경제 대국이며 가장 중요한 신흥 경제국이다. 올 1월 룰라 대통령은 자신의 세 번째 대통령 취임식 직후, 전임자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외교적 고립주의를 타파하는 의미로 “브라질을 다시 세계 정세 속에서 중심이 되게 하겠다”고 표명했다. 원자재와 천연자원 보유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나라 중 하나인 브라질이 아메리카 대륙을 벗어나 택한 첫 행선지가 바로 중국이었던 것이다.

4월13일 방중 공식 행사의 첫 행보부터 룰라 대통령은 미국에 첫 번째 경고 신호를 보내며 시작했다. 상하이에서 열린 지우마 호세프(전 브라질 대통령) 브릭스(BRICS) 신개발은행 총재 취임식에 참석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의 이웃 나라인 아르헨티나를 언급하며 국제통화기금(IMF)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아르헨티나의 경우처럼 한 나라의 경제를 질식시키는 IMF(국제통화기금)를 비판한다”고 열변을 토했고, 브라질을 포함한 BRICS 회원국의 무역 화폐가 왜 달러여야만 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4월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하고 있다. ⓒREUTERS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4월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하고 있다. ⓒREUTERS

룰라 “브릭스 무역 화폐, 달러여야 할 필요 없어”

중국에서 분출한 룰라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 패권에 도전장을 내미는 일이었으며, IMF를 향한 화살이 아닌 IMF 내 막대한 투표권(17.43%)을 가진 미국을 비판하는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브라질은 이미 지난 3월 중국과의 무역 시 자국 통화로 결제하기로 했다. 이는 미·중 화폐 전쟁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줌을 의미하며 위안화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는 데 일조한 일이기도 했다. 중국 경제 전문매체 ‘차이신’에 의하면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과 남미 최대국 브라질의 자국 통화 거래는 미국 중심의 달러 패권에 균열을 가져오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룰라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제재 대상인 중국 통신회사 화웨이의 기술혁신센터를 방문하면서 미국을 향한 두 번째 경고 신호를 보냈다. 대통령 공식 트위터를 통해 “화웨이 기술혁신센터를 방문해 이 회사의 원격 의료, 교육 및 연결 분야 관련 5G 및 솔루션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들었다. 연구와 혁신에 대한 매우 강력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브라질은 중국에 대해 그 어떠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아무도 브라질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함”이라며 화웨이 방문의 타당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룰라의 세 번째 경고 신호는 4월14일,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나왔다. 두 정상은 브라질과 중국 기업 간 협정 외에도 총 15건의 협정을 체결했다. 여기엔 2032년까지 양국 간 우주 협력계획과 양국 파트너십의 일곱 번째 위성인 CBERS-6 발사가 포함되었다. 특히 여기엔 백악관을 매우 우려하게 할, 중국 위성의 아마존 같은 생물 군계를 모니터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계획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룰라 대통령은 방중 기간 동안 여러 번 미국에 경고 신호를 보냈다. 미국의 ‘1극 체제’를 견제하며 ‘다자주의’를 강조했고,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기 사업에 열중해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며 “전쟁 부추김”을 중단하라는 비판을 가했으며, 평화 중재자 역할을 맡겠다는 의도도 내비쳤다. 또한 대만을 두고 미·중 간 전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시점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굳건히 견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렇듯 룰라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미국을 견제하면서 중국에 손을 내미는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그가 중국을 방문하기 두 달 전인 지난 2월 미국을 먼저 방문했으나, 결과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망감 탓이다. 당시 룰라와 바이든 대통령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 만났고, 상업적 또는 기술적 협정이 전혀 성립되지 않았다.

둘째는 브라질 경제의 중국과의 무역 중요성 때문이다. 브라질은 지난 40년 동안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가장 많은 수혜를 본 국가 중 하나다. 또한 이전 룰라 대통령의 임기(2003~10년) 중이었던 2009년부터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브라질 최대의 무역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지난해 대외교역에서 중국이 브라질 전체 수입액의 22.55%(약 615억 달러), 수출액의 27.24%(약 912억 달러)를 각각 차지했다. 브라질의 대(對)중국 수출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을 합친 것(약 884억 달러)보다 많다고 알려져 있으며, 14년 연속 브라질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며 대두와 광물을 대량 수입해 가고 있다. 또한 중국은 2010년 이후 브라질에 약 70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이는 남미 전체 투자액의 절반에 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브라질 현지에서는 룰라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우려와 염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브라질의 중국 무역 의존도가 지극히 비대칭 상황인 점이다. 브라질의 수출은 대두·철광석·석유 등에 의존하는 반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품은 하이테크 산업의 공산품인 것이다. 현지 언론들은 브라질의 고부가가치 제품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브라질의 한 전직 외교관은 “브라질이 세계 정세에서 지나치게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게 좋으며, 룰라 대통령은 성격상 과잉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며 좀 더 신중한 외교정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미국 “우리는 美·中 중 선택하라 요구 안 해”

여전한 브라질의 미국 의존도도 지적된다. 엄연히 미국은 브라질 내 주요 투자자이며 브라질 교역에서도 주요 국가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룰라의 방중은 바이든과 미국을 불편하게 했다. 특히 달러를 국제 통화로 쓰지 않겠다는 것은 직격탄”이라고 언급하며, 아마도 귀국한 후 룰라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화해 제스처를 보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만약 이런 제스처를 바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 대가를 미국 측에 비싸게 치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우 글로브(O Globo)신문과 인터뷰한 토머스 섀넌 전 브라질 주재 미국대사는 “룰라 대통령이 브라질의 이익을 위해 중요한 그 어떤 것도 얻지 못한 채 중국이 한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달러는 미국이 세계 통화로 지정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미국 경제의 힘과 금융 시스템을 인정해 세계 통화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측의 불편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4월15일 아르헨티나를 순방 중이던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포쟈(Folha)와 인터뷰한 여러 미국 정부 소식통도 “(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브라질은 분명히 중국 및 러시아와 협력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균형을 중시하지 않고 미국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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