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하면 의심한다? 때마다 ‘동네북’ 되는 여론조사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9 16: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尹 “여론조사 과학적이고 공정하지 않으면 국민을 속이는 것”
과거에도 ‘불신론’ 반복…전문가들 “조사 탓하고 잘 된 경우 못 봐”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6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6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심각한 하락세를 이어가자 여론조사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여권에서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시사저널이 인터뷰한 복수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전광판을 무시하거나 불신하는 태도 자체에 대해선 따끔하게 비판했다.

지난 18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여론조사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표본 여론조사는 표본 설정 체계가 과학적이고 대표성이 객관화돼야 한다. 나아가 질문 내용과 방식도 과학적이고 공정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결국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주 69시간’ 논란을 부른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과 관련해 국민 여론을 보다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맥락이었다. 윤 대통령은 “여론조사 결과뿐 아니라 내용과 과정도 국민께 소상히 알리고, 이에 따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국정지지도를 비롯해 최근 쏟아지는 부정적인 여론조사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최근 여론조사에 대한 대통령실과 정부가 민감한 반응들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지난 14일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떤 여론조사를 믿어야 하는지 굉장히 의구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참고하는 경우도, 참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보다 앞서 농식품부는 한국갤럽이 조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와 관련해 질문 자체가 찬성을 유도하는 쪽으로 편향돼 있었다며 “신뢰하기 어렵다”고 이례적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7일 발표한 여론조사(지난 4~6일 실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표본오차 ±3.1%p, 95% 신뢰수준, 응답률 9.1%,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조)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찬성 60%, 반대 26%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여당 내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12일 정진석 전 비대위원장은 중진 의원 연석회의에서 “요즘 여러 여론조사들이 나오는데,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며 “가장 정확한 여론조사는 선거 결과다. 우린 직전 지방선거에서 가능성을 확인하지 않았나”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
ⓒ한국갤럽

여권의 ‘여론조사 불신론’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민심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부정하는 태도는 당과 진영을 불문하고 정치권에서 때마다 나타나곤 했다.

당장 지난해 6‧1 지방선거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에 불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자 이재명 대표는 “여론조사 통계 다 틀리다” “여론조사 전화 받는 사람 없다. 100명 중 2명밖에 받지 않는 수준”이라며 깎아내렸다. 이 대표 외에 당시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이 잇따라 ‘여론조사 불신론’을 거론했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여론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는 쓰디쓴 결과를 맛봤다.

앞서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여론조사기관들이 작정하고 (민주당) 편을 든다”며 “지방선거가 끝나면 여론조사기관은 폐쇄시켜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 역시 선거는 한국당의 참패로 끝맺었다.

정치권이 보여 온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여론조사 수용 태도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현실을 회피하려는 좋지 않은 태도”라고 꼬집었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이 싸늘하면 할수록 더욱 전광판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여론조사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쪽에서 무엇을 지적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배 소장은 “지금 윤 대통령이 계속 여론조사를 외면하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태도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트럼프는 계속 자신에 부정적인 조사를 부정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면서 “대통령 곁에 냉철한 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30년 넘게 여론조사 전문가로 활동한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그동안 여론조사를 탓하는 사람 가운데 결과적으로 잘 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여론조사가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과학적인 면에서 신뢰도가 굉장히 높아진 상태”라며 “최근 정부‧여당이 문제 제기한 여론조사들도 공정성을 운운할 만큼 문제되는 내용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여론조사가 문제라기보다 ‘프레임화 돼버린 여론’이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여론이 이미 극명히 갈려, 어떤 사안에 대한 어떤 질문을 던져도 대통령 지지 여부에 따라 찬반의 비율이 갈려버렸다”며 “이번 양곡관리법 여론조사 결과 역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영돼 나온 상식적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매주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전면 불신해서도 안 되지만 일희일비할 필요 역시 없다고도 지적한다. 정치학 박사 출신의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은 “여론조사가 가변성이 큰 건 사실이다. 일일이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을 향해 ‘여론조사를 제대로 살피는 방법’을 제시했다. 김 소장은 “한 주에 나온 여러 여론조사들 가운데 가장 높게 나온 것과 가장 낮게 나온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의 평균값을 내보라. 그것이 곧 우리에 대한 여론이구나 생각하면 된다”며 “이 수치마저 부정하거나 외면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