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총리 표적 테러…붕괴되는 ‘일본 안전’ 신화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2 10:05
  • 호수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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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기무라의 기이한 묵비권…아베 암살범 모방 범죄 분석도
“지지율 끌어올리기 위한 자작극” “아베 저격 모방 범죄” 등 說만 난무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4월15일 오전, 중의원 보궐선거 응원연설을 위해 와카야마현을 방문 중이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폭탄 테러를 당했다. 지난해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선거 유세 중 발생한 총격 테러로 사망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현직 총리가 폭탄 테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기시다 총리를 향해 날아온 ‘파이프 폭탄’은 폭발하기까지 50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어 큰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용의자 기무라 류지(24)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기무라의 움직임을 수상하게 여겨 지켜보고 있던 현지 어민(54세)이 범행 직후 기무라를 붙잡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범행 당시 기무라는 폭발물 외에도 라이터와 약 13cm 길이의 과도를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 관계자는 기무라의 자택에서 화약으로 추정되는 가루와 절단된 파이프 등이 발견되고 기무라의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폭발물 관련 사이트 검색 기록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기무라가 자택에서 파이프 폭탄을 자체 제작하고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AP 연합
4월15일 일본 와카야마의 항구에서 열린 기시다 총리 유세 현장에서 폭탄 투척 용의자인 기무라가 붙잡히고 있다. ⓒAP 연합

일부에선 아베 저격범을 ‘영웅’으로 우상화

일본의 총기범죄 평론가 쓰다 데쓰야는 “파이프 폭탄은 전문적 지식이 없어도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제작도 어렵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무라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파이프 폭탄은 폭발해도 파편이 튀기 어려운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수제 폭탄의 폭발 규모가 작고 투척부터 폭발까지 시차가 있어 인명 피해가 크지 않았던 점, 기무라 자신이 폭탄 투척 이후 먼 곳으로 도망가지 않은 점과 관련해서는 “기무라가 명백히 위해를 가할 의사가 있었는지는 현시점에서 판단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무라는 체포 당시는 물론 4월17일 검찰에 송치된 이후에도 19일 현재까지 기이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 구체적인 범행 동기가 밝혀진 바 없다. 다만 기무라가 과거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 등에서 세습정치라든가, 자신이 참의원 선거 입후보에 실패한 데 따른 현행 선거제도에 대한 불만 등이 범행의 동기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아베를 저격한 야마가미 데쓰야의 모방범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가타다 다마미는 “야마가미의 총격 테러 이후 통일교 관련 피해자 구제 법안이 성립되는 등 실제로 현실 정치가 움직이는 효과가 있었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에서는 야마가미를 ‘영웅’으로 우상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기무라도 야마가미로부터 영감을 받아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무라가 기시다 총리를 노릴 수밖에 없었던 명확한 이유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며, 기무라가 정치적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세간의 주목을 받고 싶다”는 심정이 범행의 핵심적인 동기였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폭탄 테러 발생 당일인 4월15일부터 이틀간 ‘올 닛폰 뉴스 네트워크’(ANN·아사히 계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지난 3월 조사보다 무려 10.2%나 상승한 45.3%로 나타났다. 이처럼 폭탄 테러 이후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대폭 상승한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폭탄 테러 피해자인 기시다에게 ‘동정표’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자 테러 사건 자체가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자작극’이 아니냐는 음모론도 등장했다. 2020년 창당된 군소정당 참정당의 임원을 맡고 있는 다나카 요시토는 사건 발생 당일인 4월15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사건 자체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작극이라고 의심하게 되는 건 저뿐인가요?”라는 글을 올렸다. 기시다가 폭탄 테러 이후에도 오후 스케줄을 감행한 점이 수상하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다나카의 게시물에는 “전부 자민당의 자작극”이라거나 “사건 발생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다” “화약량이 너무 적은 거 아니냐” 같은 댓글이 이어지며 음모론이 점차 확산되었다. 그러나 해당 게시물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다나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의견이며 소속 정당의 견해가 아니다”고 밝히고 경솔한 발언이었다며 사죄했다. 현재 해당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이며 다나카는 참정당 임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EPA 연합
사고 현장에서 한 목격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장면. 기시다 일본 총리가 폭탄이 근처에 떨어진 후 돌아서는 모습을 담고 있다. ⓒEPA 연합

G7 회담 앞두고 국제사회도 ‘안전성’ 주목

한편 5월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어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일본의 국가 요인 경호체계가 불안한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아베 전 총리 총격 사건 이후 일본 정부 및 경찰이 요인 경호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음에도 현직 총리가 버젓이 폭탄 테러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권자와의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청중과 정치인의 거리를 가깝게 설정하는 선거 유세의 경우 요인 경호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200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린 기시다의 응원연설에서 시민의 소지품 검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G7 정상회담 같은 국제회의에서는 대통령·총리 등 국가 요인 근처에 일반 청중이 접근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요인 경호를 위한 조건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번 폭탄 테러 발생이 일본의 ‘안전성’에 대해 일본 국민 및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사건 발생 당일, 경찰청에 철저한 요인 경호를 지시하는 한편 4월17일 기자회견에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정상회담이 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4월16일부터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서 열린 G7 외무장관 회의와 관련해서는 경비체계가 강화되어 가루이자와역 주변 편의점을 임시 폐쇄하고 역사 내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인근 주민들은 “역사 출입이 안 된다는 걸 사전에 몰랐다, 당황스럽다” “개찰구를 통과하기까지 평소보다 훨씬 시간이 걸렸다” “외무장관 회담 기간 중 아무 일도 없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4월18일에는 에히메현 니하마역에서 에히메 현경과 JR(일본 철도)그룹 직원들이 총기 테러에 대처하는 테러 대책 훈련을 실시했다. G7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의 ‘안전 신화’를 회복하기 위한 일본 정부 및 경찰의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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