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데믹’ 진정에도 가시지 않는 금융위기 걱정
  •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2 12:05
  • 호수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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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발표한 글로벌 금융안정보고서 분석해 보니… 
금융 시스템 위기 재연 가능성은 낮지만 우려 여전

최악으로 치닫던 ‘뱅크데믹(bankdemic)’이 최근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뱅크데믹은 은행과 팬데믹을 합친 용어다. 은행 위기가 전 세계적인 전염병처럼 번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의 P&A(자산부채이전)에 이어 스위스 크레딧스위스은행 매각, 독일 도이치뱅크 주가 급락 등 확산되던 은행 위기가 최근 주춤해졌다. 최악의 상황은 일단 넘겼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여전하다. 과연 2008년과 같은 금융위기는 없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긴 이른 것 같다. 뱅크데믹을 야기한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한 가계나 기업, 자산 부실이 아직 현재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글로벌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를 중심으로 금융위기 가능성을 점검해 보기로 하자.

ⓒ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으로 시작된 은행 위기가 최근 주춤해졌지만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는 모습 ⓒ연합뉴스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 이머징마켓 위험 

1980년대 이후 크고 작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국제기구나 각국 금융 당국, 연구기관, 금융회사까지 위기 징후를 미리 포착하고 대비하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금융위기는 특정 금융회사에 그치지 않고 금융 시스템 마비를 통해 국민경제와 글로벌 경제위기로 확산되기 때문에 조기경보지표(EWI)를 개발해 사전에 대비하고자 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IMF가 개발한 종합지표가 금융상황지수(Financial Conditions Index·FCI)다. 2018년 기준 43개국을 대상으로 단기 금리, 장·단기 금리차, 국채·사채의 리스크 프리미엄, 주가지수와 변동성, 환율, 주택 가격 등 위기 시그널을 가중평균해 산출한다. 올해 3월까지의 FCI에 따르면 전반적인 위험은 아직 위기 수준이나 임계치에 미달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을 제외한 이머징마켓의 위험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고, 3월 들어 유로 지역과 미국 등의 위험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은 두 지역 위험은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를 즉각 반박하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일 수 있는지, 우리로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FCI 항목으로 보면, 미국과 유로 지역의 주가 변동성과 기업 신용위험이 높아졌고, 은행 간 금리와 국채 금리의 스프레드가 확대됐다. IMF의 미국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분석에 따르면 과거 통화긴축기에 비해 S&P500 기업들의 실적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고, 국채수익률 곡선도 경기 침체를 예고하고 있다. 기업이나 은행 부문이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고금리와 주택 가격 하락이 겹침에 따라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DSR)이 커지고 주택담보대출 부실도 우려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IMF는 선진국의 경우 주택대출 비중이 높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해 전반적으로 가격 하락 위험이 작고 가계 원리금 상환 부담도 적다고 판단한다. 이머징마켓의 경우 가격 하락 위험이 더 크지만 주택대출 비중은 낮은 편이다.

자산 부실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섹터는 상업용 부동산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약세였던 데다, 금융비용이 상승하며 캡레이트(Cap rate)가 더 떨어지면서 주택에 비해 가격 하락 압력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관련 대출 익스포저가 큰 미국의 중소형 지역은행들과 북유럽 은행들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다만, 부실이 늘어나도 위기로까지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선진국발’ 위기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이머징마켓발’ 위기 시나리오는 생각해볼 문제다. IMF 진단에 따르면 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선제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자본유출 위험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머징마켓 외화표시 국채의 부도가 늘어났고 스프레드로 측정된 부도 위험도 최근 10년래 가장 높아졌다. 커지는 지정학적 위험도 자본유출 위험을 키우고 있다.

 

금융 당국의 신속한 대응이 연쇄위기 막아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두 가지 위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글로벌 위험과 마찬가지로 주택 가격 하락과 관련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및 부동산PF의 부실 가능성이다. 이 부분은 IMF도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둘째, 작년 9월 하순에서 10월까지 지속됐던 고환율에서 드러나듯 외환시장 불안과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 가능성이다. 주택시장의 경우 매매가격 하락세는 다소 둔화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매매거래량은 여전히 감소세이고, 미분양주택 물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결국 부동산PF의 부실 정도와 영향으로 귀결되는데, 비은행권 PF사업장이 문제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개별 위험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시스템 위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자본 유출입의 경우 올 1분기 중 채권자금이 유출에서 유입으로 큰 변동을 보이는 등 다소 불안한 양상이다. 스트레스 상황에 대비한 금융회사별 외화유동성 관리는 필요해 보인다. 환율도 비교적 높은 수준이고, 경상수지 적자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단기외채 비중과 외환보유액 수준을 감안할 때 대외지급 능력에서 문제 소지는 적어 보인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국내외 경제 모두 특정 국가, 섹터 또는 회사 차원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시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금융 시스템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무엇보다 고물가를 잡기 위한 각국 통화긴축 지속성과 시차를 두고 나타날 경기 침체 정도에 따라 향후 금융위기 발생 여부와 정도가 결정될 것이다.

뱅크데믹 이후 현재까지 국내외 금융 당국의 대응은 매우 신속했고 적극적이었다. 이는 분명히 이전의 금융위기 때와는 다른 점이다. 학습효과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의 경우에도 부동산PF 문제에 대해 사업장별 리스크 점검과 대주단을 통한 구조조정을 가동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예상된 위기는 실제 위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당국도 민간도 위기에 사전에 대비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디지털 시대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자금 이동이든, 신냉전과 공급망 재편이 가져올 구조적 변화에 따른 금융 마찰이든, 우리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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