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으로부터 한국 경제의 특허 종속 막아낸 데 큰 의미”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5 10:05
  • 호수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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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조원대 특허 갑질 소송 승리 이끈 최승재 변호사 
“제2, 제3의 특허 갑질 가능성 열려 있어”

대법원은 4월13일 퀄컴의 특허 갑질에 대한 1조원대 공정위 과징금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8년여를 끌어온 세기의 재판이 결국 공정위의 승리로 마무리된 것이다.

공정위는 2014년 8월 퀄컴의 특허 갑질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와 휴대폰 제조사의 사업을 방해한 혐의였다. 공정위는 2017년 1월 퀄컴에 대해 1조31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부과한 역대 최대 규모였다. 퀄컴은 곧바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거대 로펌인 세종과 율촌, 화우 등의 변호사 수십 명이 이 소송에 동원됐다. 퀄컴이 변호사 비용으로 쓴 돈만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정위의 법률 대리인은 최승재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와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 서너 명이 전부였다. 때문에 언론에서는 이 소송을 두고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세종·율촌·화우 연합과의 소송에서 승리 

2017년 2월부터 치열한 법리 다툼이 벌어졌다. 양측이 법정에서 주고받은 답변 자료만 7만 쪽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2019년 12월)에 이어 대법원도 퀄컴의 청구를 대부분 기각하고, 과징금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1조원 넘는 과징금 역시 국고에 남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최승재 변호사는 “이번 소송을 단순히 1조원대 과징금을 지킨 수준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칫하면 한국 경제가 모뎀칩셋 시장의 ‘특허 공룡’인 퀄컴에 종속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면서 “법원이 다행히 법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면서 최악의 상황은 막았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4월18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만난 최 변호사와의 대화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보자.

ⓒ시사저널 임준선
4월18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최승재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대법원이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어떤 의미가 있나. 

“대법원의 판결은 기존 법리를 심화, 확인한 것이다.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퀄컴의 갑질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위는 소송에서 이 부분을 주장했다. 퀄컴 측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은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공정위 측에 ‘삼성을 살리기 위해 과징금을 부과한 것 아니냐’고 역공을 가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한국 경제는 IT뿐 아니라 자동차도 주축 산업이다. 이들 업종의 패러다임이 최근 전자화되고 소프트화되면서 통신 기능이 중요해졌다. 자칫하면 퀄컴의 특허에 종속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퀄컴 대신 다른 경쟁사 모뎀칩셋이나 특허를 사용하면 되지 않나.

“통신시장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주파수 대역은 한정돼 있다. 무작정 늘릴 수 없기 때문에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표준화했다. 이게 표준필수특허(SEP)다. 다른 산업은 특허를 사용하지 않아도 사업이 가능하다. 단지 불편할 뿐이다. 하지만 표준필수특허를 사용하지 못하면 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퀄컴의 경우 2015년 기준으로 LTE와 CDMA 분야에서 각각 69.4%와 83.1%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모뎀칩셋 매출액 및 표준특허 로열티 매출액은 연간 251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무소불위의 갑질을 했다. 폐해를 막기 위한 국제표준화기구의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확약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늦기는 했지만 대법원이 퀄컴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퀄컴의 갑질 사례는 대법원 판결 직후 공정위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다. 프랜드 확약에 따라 SEP 보유자는 원하는 기업에 우선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퀄컴은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인 인텔 등의 요청에도 칩셋 제조·판매에 필수인 이동통신 SEP에 대한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했다. 삼성전자 등 휴대폰 제조사에는 칩셋을 공급하는 조건으로 부당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소송 초기 공정위의 보조참가인이었던 삼성이나 애플이 중간에 소송을 철회한 것도 이 때문일 것으로 최 변호사는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공정위 조사 당시 전원회의 심의에 참석했을 뿐 아니라, 소송 때도 공정위의 보조참가인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 하지만 소송 중간에 보조참가인에서 빠졌다. 그는 “퀄컴의 시장지배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퀄컴 입장에서 공정위의 힘을 빼려면 공정위 우군을 줄여야 했다. 칩셋 제공을 볼모로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 퀄컴이 특허 갑질을 해서 공정위 제재를 받은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2009년에도 퀄컴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 273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럼에도 퀄컴은 방식을 바꿔 또다시 특허 갑질을 하다 공정위의 철퇴를 맞았다. 공정위 측은 대법원 판결 이후 “향후 시정명령 이행을 철저히 점검하고, 표준필수특허 남용 등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퀄컴 역시 공식 입장 자료를 통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앞으로 한국 파트너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함께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또 다른 갑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지식재산권 지키려면 전문성 길러야” 

또 다른 갑질 발생을 우려하는 이유는 뭔가.

“과거에는 경쟁사가 많았다. 하지만 퀄컴의 갑질로 경쟁사가 다 무너졌다. 중앙처리장치(CPU) 기술력이 있는 인텔의 경우 한때 칩셋을 개발해 애플에 공급하려고 했지만 퀄컴의 방해로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사가 모두 무너졌다. 퀄컴의 갑질이 근절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안은 없나.

“전문인력 육성이 시급하다. 우리가 거대 로펌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전문성이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과 특허법에 능통한 전문가를 대리인으로 선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지식재산권 분야는 글로벌하게 경쟁한다. 국내에서 법리를 다투는 것과 차원이 다른 만큼 후배들이 노력해서 국가대표라는 마음으로 세계적인 전문성을 길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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