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이냐 ‘극일’이냐…尹대통령, WP인터뷰 논란 일파만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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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100년전 일로 日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 못 받아들여”
“국민 설득 과정 필요해”…野뿐 아니라 與내에서도 ‘전전긍긍’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 정삼회담 후 ‘친일 외교’ 논란에 휩싸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는 ‘친일 사관’ 논란에 휘말린 모습이다. 윤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 역사로 인해 일본이 사과하기 위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인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다.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나온 발언이지만, 야권뿐 아니라 여권 내에서도 발언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가열되는 모습이다.

WP는 24일(현지시각) 윤 대통령과 90분간 진행된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한‧일 정상회담의 배경과 의의, 한‧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유럽은 지난 100년간 수차례 전쟁을 경험하고도 전쟁 당사국끼리 미래를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았다”라며 “나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거나,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선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일각의 반발을 감수하더라도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해 과거사 문제를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이 문제(한‧일 역사)는 결단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라며 “설득하는 문제에 있어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은 과거 발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지난달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며 “우리 사회에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대일 외교를 둘러싼 ‘리스크’를 모두 본인이 지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야권이 이걸(강제징용 제3자 변제 등) 물고 늘어지면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단 우려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윤 대통령의 생각이 워낙 완고했다. 한‧일 문제는 누군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한다는 게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자 대선 출마 이유”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WP 인터뷰가 보도된 이후 민주당 내에선 반발을 넘어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고위 전략회의를 마친 뒤 “참으로 당황스럽고 참담하다”며 “수십년간 일본으로부터 침략 당해 고통받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발언으로 생각되고 대통령의 역사 의식이 과연 어떠한지 생각해보게 되는 발언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뭔가 수습할 대책 있었으면 좋겠는데 추후 저희가 좀 더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 내에서도 ‘불안감’이 감지된다. 자칫 윤 대통령의 발언이 ‘친일 논란’으로 이어질 경우 총선을 앞두고 중도층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한‧일 관계는 일거에 해결될 수도, 해결되지도 않는 문제”라며 “(윤 대통령 인터뷰) 취지는 이해하지만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에 조금 더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TK(대구‧경북) 지역의 여권 한 관계자도 “한‧일 문제는 계파를 막론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며 “특히 외교에 있어 ‘과속’은 경계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미국이 추진하는 ‘한‧미‧일 삼각공조’를 의식, 한‧일 관계 개선에 속도를 붙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新)냉전체제 속 진전된 한‧일 관계를 바라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 적극 호응하는 대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선물 꾸러미’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 일각에선 한‧미‧일 정치 협력이 강화되더라도 ‘친일 사관’ 논란이 확산한다면 민심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일 관계는 미국이 뒤에서 등을 떠민다고 해서 금세 어떤 결론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일제 침략의 역사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며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과부터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아무런 입장 변화가 없는데) 한국만 달라진 입장으로 접근한다면 그 자체가 저자세이자 굴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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