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 야구도 100마일 ‘광’속구 경쟁 펼친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30 12:05
  • 호수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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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에 부는 시속 160km 속도 전쟁
오타니가 마냥 부러웠던 한국 야구에서 안우진·문동주·김서현 기대감 부풀려

지난 3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다. 일본 대표팀의 사사키 로키(지바 롯데)는 조별리그 체코전에 선발 등판해 시속 160km가 넘는 강속구를 자유자재로 뿌렸다. 전광판에는 시속 164km까지 찍혔다. 돔구장 특성상 포수 미트에 ‘퍽’ 하고 박히는 공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사실 일본의 WBC 우승보다 부러웠던 것은 100마일(161km)을 넘나드는 공을 마음껏 던지는 사사키나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의 존재였다. 이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최고 구속은 이의리(KIA 타이거즈)가 던진 시속 155k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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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6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1회말 한화 선발투수 문동주가 역투하고 있다. ⓒ뉴시스

문동주, 160km 벽 넘으며 최고 구속 1위에

WBC는 세계 야구에 휘몰아치는 구속 혁명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시속 150km만 넘어도 ‘광속구’라고 칭하는 KBO리그를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KBO리그 또한 해마다 구속은 상승해 왔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자료에 따르면 2015년 KBO리그 속구 평균 구속은 시속 140.9km였지만, 2022년에는 시속 143.6km까지 올랐다. 7년 만에 평균 구속이 시속 2.7km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미국·일본과 비교하면 아쉽기만 하다. 지난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151.2km(93.9마일)였다. 일본프로야구(NPB) 속구 평균 구속은 시속 146.1km(90.8마일). 나라마다 구속 측정 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면 안 되겠으나 제법 차이가 크다. 참고로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 구속은 아롤디스 채프먼이 세운 시속 170.3km(105.8마일)다. 

그렇다고 KBO리그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안우진(키움 히어로즈)이다. 과거 학교폭력 문제로 국가대표팀에는 발탁되지 못하지만 그의 투구 재능에 이견을 달 이는 거의 없다. 

안우진은 2021년까지 제구가 불안한 공 빠른 투수 범주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해 시즌부터 제구가 잡히면서 국내 리그 최고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구속·제구력·변화구 완성도와 구사율 모두 리그 최고를 달린다. 올해는 속구 평균 구속이 더 빨라졌다. 지난해에는 시속 152.6km였는데, 올해는 1.6km 더 빨라져서 평균 구속이 시속 154.2km(4월25일 현재)까지 나온다. 최고 구속이 시속 150km에도 못 미치는 투수가 많은 리그에서 경기 내내 시속 155km 안팎의 공을 던진다. 안우진의 속구 최고 구속은 지난해 9월30일 SSG 랜더스 김성현을 상대로 기록한 시속 158.4km(역대 3위)다. 지난 시즌보다 평균 구속이 높아졌기 때문에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올해는 이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질 것으로 전망된다. 

평균 구속에는 못 미치지만 최고 구속으로 안우진을 넘은 선수는 있다. 안우진뿐만 아니라 구속에서 역대 국내 투수들을 다 넘어섰다. 한화 이글스 2년 차 투수 문동주다. 문동주는 4월12일 KIA와의 경기에서 박찬호를 상대로 시속 160.1km의 공을 던졌다. 한화 구단 자체 트랙맨에는 시속 161km가 찍혔지만, KBO는 스포츠투아이 피치트래킹시스템(PTS)에 따른 기록만 공식 인정한다. 국내 투수가 시속 160km의 벽을 깬 것은 문동주가 처음이다. 

문동주가 시즌 3경기 등판 동안 기록한 올 시즌 속구 평균 구속은 시속 152.0km다. 지난 시즌(150.9km)보다 1.1km 상승하기는 했지만 안우진에게는 아직 못 미친다. 시속 100마일(161km)의 공도 곧 던질 것 같은데 문동주 스스로는 구속에 대한 욕심이 없다. 문동주는 한겨레신문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구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자와 잘 싸워서 이겨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문동주는 고교 2학년 때 투수로 변신해 어깨 자체가 싱싱한 편이다.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 등 성실한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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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진(키움 히어로즈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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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한화 이글스) ⓒ뉴스1

장재영·고우석·장현석 등도 강속구 뿌려

문동주의 구속을 위협하는 이는 팀 내에 있다. 지난해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사이드암 투수 김서현이다. 최동원을 동경해 안경을 쓰고 마운드에 오르는 김서현은 4월19일 두산 베어스전에 구원 등판해 최고 구속 시속 157.9km(역대 4위)의 공을 뿌렸다. 전광판에는 158km까지 찍히면서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김서현은 제구 문제로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2군에서 데뷔 시즌을 시작했다. 2군에서 꾸준히 공을 던지면서 제구를 가다듬었고 첫 등판에서 19세답지 않은 배짱투를 선보였다. 프로 무대 데뷔 소감에서 “부담은 됐지만 긴장을 즐기려고 했다. 긴장해서 못 던지는 것보다 자신 있게 던지고 싶었다”고 말하는 당찬 신인이기도 하다. 김서현은 4월25일까지 3경기에 등판했는데 속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7.9km, 평균 구속은 시속 154.3km를 기록 중이다. 안우진·문동주와 달리 아직은 1이닝, 2이닝 정도만 소화하는 불펜 투수 역할을 해서 평균 구속이 조금 더 나오는 점은 있다.

문동주와 김서현은 투구 성격이 조금 다르다. 프로 2년 차인 문동주는 마운드 위에서 신중한 반면 새내기 김서현은 저돌적이다. 문동주는 “김서현을 보면서 동기부여가 더 되는 점이 있다”고 했다. 문동주 또한 신인왕 자격이 있어 이래저래 둘은 시즌 내내 비교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외에도 장재영(키움), 고우석(LG 트윈스) 등이 빠른 공을 자랑한다. 또한 미국에 진출하지 않을 경우 올해 KBO 신인 드래프트에 나오는 마산 용마고 3학년 장현석이 지난해에 시속 156km의 속구를 던져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팀 순위상 한화가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차하면 문동주·김서현과 함께 ‘강속구 독수리 트리오’가 탄생할 수도 있다.  

물론 강속구가 전부는 아니다. WBC로 돌아가면 사사키가 던진 시속 164km의 공은 체코 아마추어 선수의 방망이에 걸려 2루타로 연결됐다. 제구되지 않은 강속구는 타자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문동주가 “구속 욕심은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느리디느린 공으로도 칼날 제구만 된다면 얼마든지 강속구만큼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래도 100마일의 속구를 KBO리그 국내파 선수들에게서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스피드만큼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투수의 손에서 벗어나 0.4초 이내에 18.44m를 날아가 포수 미트에 정확히 꽂히는 ‘광’속구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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