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따봉’부터 ‘태영호 녹취록’까지, 용산 ‘당무 개입’은 이제 시작?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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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공천 녹취록’ 일파만파…‘용산 개입설’ 되풀이
전대 당시 안철수 직격 논란도…“대통령실 개입은 이제 시작”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김기현 대표 등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김기현 대표 등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이 된 저는 모든 공무원을 지휘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당 사무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대선 승리 이튿날인 지난해 3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이 같이 말하며 ‘당‧정 분리’를 선포했다.

하지만 이후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논란은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체리따봉’ 문자 파동부터 이번 ‘태영호 녹취록’까지, 여의도를 향한 용산의 입김은 때마다 감지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총선이 다가올수록 당을 향한 대통령실의 개입은 더욱 강해질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일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에게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한‧일 관계 옹호 발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돼 후폭풍이 거세다. 태 최고위원은 즉각 녹취 내용이 과장됐다고 해명했고 이 정무수석 역시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당 지도부 역시 일단 “당사자의 해명을 존중한다”면서도 곤혹스러운 모습이 역력하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지난해 7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지난해 7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의혹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1년 간 때마다 발생해왔다. 시초로는 지난해 7월 이른바 ‘체리따봉’ 문자 사태가 꼽힌다. 당시 윤 대통령이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당이 달라졌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 보도되면서 촉발된 사태다.

그 무렵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당 윤리위의 징계가 진행되었던 만큼,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 쳐내기에 직접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거세졌다. 당시 대통령실은 “덕담 차원이었을 뿐, 확대해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사태의 여파는 수개월 째 이어졌다.

용산 개입설이 가장 크고 또 지속적으로 제기된 시점은 지난 3‧8 전당대회 기간이었다. 경선에 앞서 룰을 정하는 과정에서부터 개입 의혹은 시작됐다. 윤 대통령이 “일반 여론조사 방식을 배제하고 ‘당원 투표 100%’로 변경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당은 룰 변경 절차를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이를 두고 여권 내 ‘정적’인 유승민 전 의원의 출마를 막기 위함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경선 출마를 저울질하던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해임’한 것도 사실상 불출마를 압박한 대통령실의 메시지로 풀이됐다.

특히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던 안철수 의원을 향한 대통령실의 압력은 당무 개입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대통령실은 안 의원의 정체성을 비롯해 ‘윤‧안 연대’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이진복 정무수석은 안 의원을 향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전당대회는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들의 ‘김기현 후보 홍보물 전파’ 의혹까지 터지며 막판까지 시끄러웠다. 계속해서 당무 개입 논란이 이어지자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매달 당비 300만원을 내고 있다”며 “당원으로서 할말을 할 권리가 있다”며 반박하기도 했다.

여권 안팎에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친윤계 ‘김기현 지도부’가 탄생했을 때 이미 지금의 당무 개입은 ‘예견된 미래’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격적으로 총선 모드로 전환되면 이러한 개입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미 윤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어차피 총선은 내가 치르는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정치 경력이 짧은 윤 대통령이 차기 총선을 기점으로 당내 세력을 구축하려 하다보니 이 같은 당무 개입 논란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다음 총선 땐 완벽히 내 사람들로 짜인 정당, 그리고 국회를 만드려고 하다보니 계속해서 개입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이번 태영호 녹취록은 대통령이 총선 공천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이러한 의지를 그대로 내보인 것과 다름 없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 역시 통화에서 “그동안의 움직임을 봤을 때 용산에서 공천에 상당히 영향을 발휘하려 할 것”이라며 “이번 태영호 녹취록 속 발언은 기본적인 수준이며 공천이 진행되면 대통령실의 관여는 본격화될 수밖에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어느 정부나 어느 정도의 개입은 있어 왔지만, 그 과정에서 과거 공천 파동과 같은 당내 분란이 또 발생할까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2016년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총선을 앞두고 ‘비박’ 김무성 전 대표와 친박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갈등을 빚던 중, 김 전 대표가 당무를 거부하고 옥새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간 ‘옥새 파동’이 발생한 바 있다. 이러한 분란의 결과로 새누리당은 참패를 겪었다.

이 같은 전례와 맞물려 이번에 터진 당무 개입 논란 또한 조기에 수습하지 못할 경우, 총선 국면 내내 당이 심각한 내홍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검사 등 윤 대통령 측근 인사 수십 명이 총선 공천을 받을 것이란 풍문이 꾸준히 새어나오고 있어 용산발 입김으로 인한 국민의힘 내 분위기는 당분간 어수선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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