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이냐 시장 안정이냐…전세사기에 정책도 ‘우왕좌왕’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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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역전세난에 제동 걸린 부동산 규제완화책
실거주 의무 폐지 논의 ‘주춤’하자 시장도 ‘잠잠’

전국을 충격에 몰아넣은 대규모 전세사기 여파가 부동산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다. ‘전세 포비아’ 현상으로 전국 전세거래 건수가 줄줄이 떨어지는가 하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에도 사실상 제동이 걸렸다.

윤석열 정부는 대출의 문턱을 낮추고 전매제한 기간을 늘리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하면서 부동산 시장 반등을 통한 경기 회복을 노렸으나, 일단 기류는 ‘스톱’ 상태다. 실거주 의무 폐지까지가 윤석열 정부판 부동산 부흥책의 완성인데, 해당 논의는 야당 반대에 부딪힌 상태다. 관련 논의를 매듭짓지 못할수록 시장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를 골자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오는 10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 연합뉴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를 골자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오는 10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에 발목 잡힌 ‘실거주 의무 폐지’ 논의

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달 26일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심사할 계획이었으나 보류를 결정했다. 야당 위원들의 반대 의견에 부딪혀 논의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국토위는 오는 10일 소위에서 심사를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개정안은 윤석열 정부의 1‧3 부동산 대책의 연장선상에서 마련됐다.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최대 5년)과 민간 택지 내 공공재개발(2년)에 적용 중인 실거주 의무 규제를 전면 폐지하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주거 수요가 높은 지역의 신축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야권에서 실거주 의무 폐지를 반대하는 주요 배경으로는 전국 곳곳에서 터져 나온 전세사기 상황이 꼽힌다. 통상 실거주 의무가 사라지면 실제 거주하려는 사람보다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을 사들이려는 사람이 관심을 보인다. 대출 규제까지 대폭 완화된 상황이라, 이 시점에서 실거주 의무가 폐지될 경우 투기성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올 하반기 역전세(전세가가 매매가를 뛰어넘는 현상) 대란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갭투자가 늘어날수록 보증금 반환사고나 전세사기도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반응이다.

다만 야권에서도 실거주 의무 폐지와 관련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실거주 의무 폐지와 전세사기가 별다른 영향 관계가 없다는 반대론도 나온다. 전세사기는 구조적으로 매매가가 높은 아파트보다 실거래가를 알기 힘든 빌라나 오피스텔에서 발생하는데,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거래 의무 폐지는 청약 받은 아파트 대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거주 의무 폐지 관련 논의가 4개월째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실수요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가 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피켓을 들고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가 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피켓을 들고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완성’ 1‧3 대책에 효과 못 보는 부동산 시장

실거주 의무 폐지 관련 논의가 길어질수록, 훈풍을 기대하던 부동산 시장의 경색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와 함께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의 핵심 두 축으로 꼽혀서다.

전매제한 완화는 정부 시행령만으로 개정이 가능해 지난달 7일부터 시행되어 왔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는 법의 영역이라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개정된 주택법 시행령에 따라, 전매 제한 기간은 수도권 최대 3년, 비수도권 최대 1년으로 줄었다. 시장에선 전매제한이 완화돼도 실거주 의무가 있으면 매도가 어려워 규제 완화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 전매제한 완화에 따른 효과는 미미해 보인다는 게 시장의 주효한 반응이다. 정부는 잇따른 부동산 규제 완화로 이달 전년 동기 대비 77% 이상 많은 3만102가구 분양 계획을 세웠으나, 실제 공급 수는 43%에 그쳐 절반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을 조사한 부동산 플랫폼 직방 측은 “전매제한 규정이 완화돼 대부분 단지의 분양권 거래가 가능해졌지만 아직 이렇다 할 거래량 증가는 보이지 않고 있다”며 “실거주 의무 폐지와 관련된 주택법 개정안이 아직 통과되지 않아 전매제한 완화 효과가 미비한 측면이 있다. 실거주 의무 폐지와 함께 분양권 양도세율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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