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불완전한 작품’ 사랑해 주는 한국 관객 다정해”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5 14:05
  • 호수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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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재난 3부작’ 완성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재난이 할퀸 상처의 흔적은 긴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남는다. 일상을 보내던 공간은 폐허가 되고, 소중한 것들을 상실한 사람들은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너의 이름은.》에서 한순간에 마을을 파괴한 혜성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메타포였다면, 《스즈메의 문단속》은 지진이라는 재난을 직접적으로 꺼내 들었다. 지진이 일어난 지 12년 만이다. ‘애니메이션 거장’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지진으로 발생한 집단적 상처를 위무하고, 버려지고 방치된 장소에 애도를 표시한다. 재난으로 인해 이제는 부재한 풍경과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길 바라는 그의 메시지는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이라는 세 편의 연작을 통해 기록됐다.

재난을 부르는 문을 우연히 열게 된 소녀 스즈메는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막기 위해 일본 전역을 달리며 필사적으로 문을 닫는다. 실제 재난을 맞닥뜨린 장소를 그리며 일본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회고한 영화지만, 영화는 넓은 측면에서 재난과 극복이라는 함의를 지녔다. 그래서 《스즈메의 문단속》은 또 한 번의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한국에서도 큰 공감을 얻었고, 역대 국내 개봉 일본 영화 1위라는 기록을 달성하며 500만이 넘는 관객의 마음을 열었다. 신카이 감독은 한국 관객 수가 300만 명이 넘으면 다시 한국을 찾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4월27일 내한한 신카이 감독을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시사저널 박정훈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결정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상처를 입은 소녀가 회복해 나가는 영화의 스토리가 한국의 젊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수입사인 미디어캐슬에서도 노력해 주셨다. 한편으로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영향도 있을 거라 본다. 《슬램덩크》가 흥행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생겼고, 많은 분이 다음 작품으로 《스즈메의 문단속》을 선택해 주신 것이 아닐까 싶다.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에 비하면 저의 작품은 매우 불완전하다. 등장인물도, 완성도도 불완전한 영화다. 그처럼 부족한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마음 깊이 받아들여 주시는 것을 보고, 한국 관객들이 정말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재난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배경은.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기로 했을 때, 옛날이야기나 신화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존재하기 전부터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거나 그림을 그려 다음 세대에 전달해 왔다. 애니메이션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미디어 중 하나다. 실제로 일어난 큰 재해가 이야기로 전달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12년이 지난 시점에 만들어졌다.

“실제로 일어났던 재난을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재해가 일어나고 4~5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라면 그 아픔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만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재난을 극복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메시지가 한국 관객들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상황은 어떤가.

“미국과 유럽에서도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과거 제 작품보다는 훨씬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만큼 흥행하고 있지는 않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특히 핸드드로잉 애니메이션이 대중화돼 있지 않다.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장 흥행하는 애니메이션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중국에서도 개봉했는데, 《스즈메의 문단속》이 더 흥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실제 재난 상황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신경 쓴 부분이 있었나. 영화를 만들거나 마케팅을 할 때 고려한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12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분이 많다.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피난 중인 분도 수천 명에 이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고민을 많이 했고, 직접적인 묘사를 보여주지 말자는 방침을 정했다.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는 순간이나 지진 자체를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기로 했다. 또 세상을 떠난 이를 재회하는 이야기로 만들지 말자고도 정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지만,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미리 인터넷을 통해 영화가 지진에 대해 다룬다는 점을 알렸고, 영화를 상영할 때도 영화의 내용과 영화 속 지진 경보에 대해 주의사항으로 알렸다. 트라우마가 있는 분들이 우연히 영화를 보고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는 어떻게 선정했나.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동쪽에서 일어났지만, 일본 전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스즈메가) 전국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일본의 끝인 규슈부터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도호쿠 지방까지 향한다. 스즈메가 여행을 하며 들르는 동네도 과거에 모두 큰 재해가 있었던 동네다. 큰비가 내려 홍수가 났던 에히메, 1995년 큰 지진이 발생했던 고베, 1923년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던 도쿄 등이다. 이 영화는 가공의 동네와 실제로 존재하는 동네를 섞어서 그려냈다. 언덕길과 바다가 보이는 동네는 가공의 마을이다. 《너의 이름은.》 등 영화가 개봉한 후 ‘성지순례’라고 해서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분이 많았는데,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작고 조용한 마을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지역 자체는 규슈로 설정했지만, 마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장소’로 만들었다.”

 

전작과 이번 작품 모두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유가 있나.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다. 학교나 집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원하고 추구하는 시기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소설은 그 제3의 장소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 자신이 성숙해 가면서 내용도 성숙해져야 한다거나, 어른 세대를 중점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분들도 있다. 성인이 주인공인 작품은 많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만들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어떤 연령대의 주인공을 등장시킬지 고민하고 있다. 또 10대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성인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

 

일부 불친절한 서사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전작에서도 설명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 대한 반성점도 많다. 영화를 완성하고 보면 ‘이렇게 할걸’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2시간이라는 시간은 모든 것을 다 전달하기에는 모자라다. 얼마나 많은 설명을 남기는 것이 옳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의도적으로 여지를 남겨 관객들이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다이진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다. 스즈메가 소타의 집에 들러서 보는 책에 일본의 고어로 된 설명이 나오는데, 고어를 해독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될 수 있겠지만 일본 관객들도 읽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시사저널 박정훈

‘빛의 마술사’로 불릴 정도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한다. 그에 못지않게 소리의 중요성도 강조했는데.

“소리에 관해 다른 작품과 다른 방식이 있다면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음성을 넣은 것이다. 영화는 두 시간의 긴 곡이라고 생각한다. ‘한 곡의 영화’랄까.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템포가 빠른 부분도 있고, 천천히 노래하는 부분도 있다. 이 긴 멜로디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제가 취하는 방식은 일단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대사를 녹음해 넣고, 그 리듬에 맞춰 그림을 넣는 것이다. 스토리보드에서 소리와 리듬을 넣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의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해 어떻게 보나. 앞으로 재패니메이션은 어떤 방향성을 지녀야 할까.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를 대변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성장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너의 이름은.》이나 《스즈메의 문단속》이 관객 수를 늘리긴 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이 확대되는 것에 제 작품의 역할은 굉장히 미미하다. 주간소년점프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여러 애니메이션이 널리 퍼지면서 힘을 얻고 있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해외에 알리려는 오랜 노력이 열매를 맺고 있다고 본다. 코로나가 종식돼 가는 타이밍도 주효했고. 다만 일일이 손으로 그리는 방식이 시대에 뒤처진다는 평가도 있다. 그 방식을 업데이트하는 것은 애니메이션 업계의 과제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 다시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한국 관객분들을 직접 재회하고, 왜 이렇게 《스즈메의 문단속》을 좋아해 주시고 많이 봐주시는지 직접 듣고 싶다. 외국 영화, 특히 애니메이션 영화임에도 이토록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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