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자기계발에 소송비용까지…국회의원들 정치 후원금 사용 백태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9 10:05
  • 호수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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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회의원 정치자금 회계 전수분석]
본인이 이사장인 단체에 후원하고, 248만원짜리 태블릿PC 구입도

지지자들이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정치 후원금(기부금)은 제대로 쓰이고 있을까. 정치 후원금은 각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위한 자금으로 활용된다. 시사저널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정치자금 회계 보고서를 입수해 전수 분석했다.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에 대해 ‘정치활동을 위하여 소요되는 경비로만 지출하여야 하며, 사적 경비로 지출하거나 부정한 용도로 지출하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정치자금이 대부분 지지자들의 후원금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한 문제다. 실제론 어떨까. 분석 결과 의원들의 정치자금 사용처 대부분은 식대와 차량유지비 등 의원 사무실 운영비로 쓰이고 있었다. 그 외의 용처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특징적 현상들이 발견됐다.

ⓒ시사저널 박은숙

컨설팅 업체에 지불하는 용역비 비중 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컨설팅 업체에 지불하는 용역비 비중이 컸다는 점이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당 컨설팅 업체들은 친민주당 성향 관계자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많은 의원이 계약한 업체는 ‘㈜박시영’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고, 친민주당 성향 ‘박시영TV’를 운영하는 박시영 대표가 있는 곳이다. 강선우 의원이 ‘의정 대담 영상 제작 비용’ 명목으로 700만원, 정청래 의원이 ‘의정활동 홍보대행’ 명목으로 770만원, 김병기·유정주·전용기·최혜영 의원이 컨설팅 명목으로 각각 1000만원의 계약을 ㈜박시영과 맺었다.

안호영 의원은 지난해 5월 박 대표가 지금의 업체를 꾸리기 직전 대표로 있었던 ‘윈지컨설팅코리아’(이하 윈지)에 450만원의 컨설팅 비용을 지불했다. 박찬대 최고위원도 같은 해 7월 총 1375만원의 비용을 ‘최고위 관련 컨설팅’ 명목으로 윈지에 냈다. 당시는 박 대표가 윈지에서 나온 직후였으나 여전히 박 대표는 윈지의 3대 주주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올해 1월부터 민주당 혁신위원이었으나 최근 그가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총선 컨설팅 영업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불거졌고, 5월2일 “제 본업인 정치컨설팅 업무와 혁신위 활동 간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 경기지사로 출마하려고 했던 안민석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홍보소통본부 부단장을 맡았던 전인호 대표가 운영하는 ‘얌전한고양이’와 수천만원의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안 의원은 지난해 3월과 4월, 5월에 걸쳐 총 6000만원의 정치자금을 얌전한고양이에 지불했다. 위성곤 의원은 ‘말과글 컨설팅’에 ‘의정활동 컨설팅 비용’으로 1210만원을 지불했다. 말과글 컨설팅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과 안희정 지사 시절 충청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윤원철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의원들은 각종 시민사회단체 등에도 정치자금으로 정기적인 기부 행위나 후원을 하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정치자금을 통한 후원 행위와 관련해 일부 우려도 나온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정학연구소에 지난해 이사회비 300만원을 비롯해 정치자금 총 700만원을 냈다. 이는 자칫 자신이 직접 연관된 단체에 이익을 줄 수 있는 행위로 비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회원으로 있는 단체에 후원을 해도 되는지에 대해 사전에 선관위에 물어보고 가능하다고 해서 후원한 것”이라며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선관위에서 고발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졸업한 학교의 교우회비를 정치자금으로 낸 경우도 있다.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말 ‘카네기 33기’ 회비 20만원과 고려대 교우회비 2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냈다. 김 의원은 의원이 되기 전인 양평군수 시절 ‘데일카네기 최고경영자 과정’ 33기에 다녔고, 대학원 교우회비 등은 의정활동이 아닌 명백히 사적인 비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용실에서 1년에 500만원 넘게 쓰기도

의원들이 자신의 ‘자기계발’에 정치자금을 사용한 경우도 자주 발견된다. 지난해 다수의 의원이 대학 등이 주관하는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데 정치자금을 사용했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환경미래전략 과정 등록금으로 400만원을,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대 미래융합기술최고위 과정과 글로벌아카데미 최고위 과정에 각각 400만원과 100만원을 지출했다. 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ESG리더십 과정에 350만원을, 같은 당 임오경 의원은 성공회대 최고경영자 과정 19기 글로컬인문경영아카데미에 16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 지난해 민주당 의원 10여 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정책, 리더십 등을 배우는 프로그램인 김대중정치학교 과정에 등록하기 위해 각각 150만원씩 정치자금으로 내기도 했다.

선관위에선 현재 이러한 교육비도 의정활동과 연관이 있다면 정치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자기계발을 위해 정치인 스스로 선택해 교육과정을 밟는 것에 대해 정치자금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느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치자금을 의원들의 소송비용으로 쓴 경우도 있었다. 국민의힘 윤상현·이명수·허은아 의원, 민주당 강득구·김병기 의원, 무소속 양향자 의원 등은 지난해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억6000만원이 넘는 정치자금을 변호사 선임 등 소송비용으로 사용했다. 선관위는 이 또한 의정활동과 관련한 소송이라면 정치자금으로 우선 지불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유죄가 확정되면 정치자금으로 인정되지 않아 되돌려놔야 한다는 취지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부담이 될 수 있는 소송비용을 정치인들은 정치자금으로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특권이란 시각도 제기된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정치자금으로 미용실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총 5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사용했다. 의원들의 ‘외모 계발’에도 정치자금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에 비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인천 계양을 출마회견을 위해 7만원을 들여 한 차례 미용실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윤영석 의원은 각각 210만원과 165만원을 미용실 이용 등 단장 비용으로 썼다. 실제 정치인들은 잦은 방송 출연, 사진 촬영 등 정치활동을 위해 미용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다만 그러한 목적으로 정치자금을 사용할 때는 그에 대한 입증이 결산 등 과정에서 명확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자금은 의원들이 의정활동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는 데도 사용된다. 의원이 타는 차, 사무실, 거기서 사용되는 각종 사무용품과 전자기기 등이 다 포함된다. 다만 특별히 법이 정하는 가격 제한이나 기준도 없다는 점이 맹점으로 꼽힌다. 따라서 각 의원과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 등을 보면 차이가 크다. 지난해 회계자료를 보면 어떤 의원실에선 30만원대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다른 의원실에선 수백만원에 달하는 컴퓨터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른 전자제품 역시 마찬가지다. 냉장고, 에어컨 등 필수적인 전자제품들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시사저널은 국회의원들이 2022년 사용한 정치자금의 회계 보고서를 입수해 전수 분석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정치자금으로 ‘스마트’해진 의원들

정치자금으로 ‘스마트’해지는 의원들도 있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월 248만9000원짜리 태블릿PC를 ‘의정활동 업무’를 위해 구입했다. 가격대로 봐서는 최신형 고사양 제품으로 추정된다. 다른 의원들도 의정활동에 사용하기 위해 태블릿PC를 새롭게 구입한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 100만원 안팎이었다. 민주당 한 의원은 46만3500원짜리 태블릿PC를 지난해 말 마련하기도 했다. ‘의정활동용’으로 스마트워치를 구입한 의원도 있다. 민주당 강준현 의원과 국민의힘 정동만 의원은 지난해 30만원짜리 스마트워치를 정치자금으로 구입했다.

의원실 대부분이 보유하고 있는 전자제품 중에서 가장 고가 제품은 의외로 따로 있다. 의정활동 장면들을 포착해 홍보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카메라다. 정치인들에게 홍보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각 의원실은 상당히 고가의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해에도 다수 의원실이 수백만원대 카메라를 새로 구입했다. 함께 사용하는 렌즈 등 액세서리를 합쳐 적게는 100만원대부터 500만원 가까운 돈을 주고 카메라를 구입한 의원실도 있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자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본다. 후원자들이 어떤 의도로 후원금을 보냈는지 알고 있다면 함부로 사용하지 못할 텐데 양심 없는 정치인이 많다. 먼저 정치인 개인들이 정치자금 사용에 대한 기준을 높이는 자각, 자의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선관위도 애초부터 기부금을 활용할 때의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해야 하고, 이후 맞는 목적에 잘 쓰였는지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더 철저히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돈봉투 의혹’ 이정근에 40명 넘는 의원 후원금 보내

정치자금과 관련해 자신이 받은 후원을 다른 정치인에게 ‘재’후원하는 ‘품앗이’ 후원도 늘 논란이 돼왔다. 특정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위해 기부하도록 돼있는 제도의 취지와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시각에서다. 지난해에도 상당히 많은 품앗이 후원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시사저널이 2022년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회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대선 때 당의 대선후보를 향해 정치자금을 활용한 당 의원들의 집중 후원이 이뤄졌다. 민주당에선 60여 명의 의원이 100만원부터 1000만원까지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에게 직접 정치후원금을 냈다.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직접 기부하는 방식이 아닌 대선 특별당비를 내는 방식으로 비슷한 수준의 금액으로 품앗이 후원이 이뤄졌다.

그런데 더욱 눈길을 끄는 건 이재명 대표와 함께 여러 의원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한 정치인이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재보선에 민주당 서초갑 후보로 출마했던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2021년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영길 전 대표 당선을 위해 그 측근 의원들과 당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돈봉투 의혹’의 핵심 인물이다.

각 정치인의 회계자료에 따르면 민주당 의원 40여 명은 이정근 당시 후보에게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까지 후원했다. 총금액은 4000여만원이다. 노웅래·이성만 의원 등이 300만원, 서영교·이용빈·김영진·이원욱·임종성 의원 등이 200만원씩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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