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덮고 동맹 강화?…한‧일 ‘셔틀외교’ 손익계산서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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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안보 측면 국익 강화” vs 野 “간·쓸개 내주고 사과 못 받아”
尹 지지율 향방은…“리스크도 플러스도 無, 큰 변동 없을 것”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7일 정상회담을 통해 12년 만에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정치권에선 이번 회담의 손익을 놓고 반응이 분분하다. 일단 경제·안보 동맹을 강화해 신냉전 체제에서 ‘한·미·일 공조’의 초석을 다진 점은 수확으로 꼽힌다. 다만 ‘과거사 해법’은 제자리걸음에 그쳤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윤 대통령이 여론 역풍을 무릅쓰고 징용피해 ‘제3자 배상안’을 제시한 점을 고려하면, 기시다 총리도 ‘역대 내각 계승’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반성과 사과 표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일 공조’ 초석 마련, 외교 입지 다져”

기시다 총리는 실무 방문 형식으로 7일 한국에 도착해, 윤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에서 102분가량의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에서는 ▲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 확인 ▲북핵·미사일 대응 공조 방안 ▲첨단산업·과학기술·문화 협력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관련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 등이 논의됐다. 특히 앞서 한·미 정상이 발표한 ‘워싱턴 선언’을 한·미·일 안보 공조로 확대하는 방안도 다뤄졌다.

윤 대통령은 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 두 정상은 한·일 관계 개선이 양국 국민에게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확인하고, 앞으로도 더 높은 차원으로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데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기시다 총리도 “협의를 본격화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양국 간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권에선 이번 회담으로 ‘셔틀 외교’ 본격화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했다는 입장이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7일 논평을 통해 “(한·일 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해 객관적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우리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시찰단 파견에 합의하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강조했다.

유 수석대변인은 이번 회담을 통해 특히 안보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그는 “‘워싱턴 선언’에 이어 진일보한 한·일 관계는 ‘한·미·일 3각 공조’를 통해 확고한 안보태세를 구축해 줄 것”이라 전망하며 “정부여당은 과거와 현재를 냉철히 직시하며 동시에 미래와 국익을 위한 길을 국민과 함께 걸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도 이번 회담이 한국의 국익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 한·일관계는 최악이었는데 이번 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정상적으로 원상 복귀하는 중요한 모멘텀”이라며 “기시다 총리도 첫 회담 직후 바로 답방하는 등 윤석열 정부가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주장했다.

최 원장은 현 국제 정세에 주목했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양분하는 신냉전 체제가 도래한 것을 고려하면 이번 회담이 적기에 이뤄졌다는 평가다. 그는 “북·중·러가 구사 외교 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시점인데 우리가 또 어정쩡한 태도를 모인다면 샌드위치 신세로 고립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일본을 상냉철하게 실용적으로 상대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안보실 2차장, 최상목 경제수석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안보실 2차장, 최상목 경제수석 ⓒ연합뉴스

“尹, 과거사 아픔 퉁쳐…中 고려한 실용 외교해야”

다만 과거사 문제들에 대해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받아내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앞서 한국 정부는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무릅쓰고 ‘제3자 해법’을 골자로 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 해법을 먼저 제안하면서 일본의 호응을 기대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외교 손익을 고려했을 때 ‘역대 내각 계승’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의 ‘사과 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하지만 결국 일본의 직접적인 사과 표명은 없었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서도 “역사 인식과 관련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말씀드렸다”고 선을 그었다. 여기에 윤 대통령도 “(한·일)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다는 인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시다 총리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를 두고 야권에선 ‘굴욕 외교’라며 한국에 전혀 이득이 없다고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SNS를 통해 “간도 쓸개도 다 내주고 뒤통수 맞는 굴욕외교,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국익을 지키지 못하는 셔틀 외교의 복원은 국력 낭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정상화하는 등 우리 정부가 다자간 외교, 실용 외교를 통해 국익을 극대화할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도 회담 직후 논평을 통해 “누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강제동원을, 위안부 문제를, 우리의 아픔을 퉁치고 넘어갈 자격을 주었나. 누가 용서할 자격을 주었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방류에 반대한다’는 명확한 원칙을 관철하지 못했다”면서 “양국 현안을 두고 윤 대통령이 말하는 한·일이 공유하는 가치와 공동이익이 무엇인지, 양국 공동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직격했다.

그렇다면 이번 회담 결과가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전문가들은 지난 3월 진행된 한·일정상회담 당시와 달리 5월 회담은 대통령의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대일 외교정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이 현 지지율에 선(先)반영된만큼 추가적인 지지율 이탈세는 적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최진 원장은 “단순한 한·일관계를 떠나서 외교·안보적으로 획기적 변화를 이뤄낸 만큼 국민 정서도 제대로 설득하기만 한다면 지지율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 정부가 크게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남은 반 잔’의 과제를 반만 채운 두루뭉술한 느낌”이라며 “윤석열 정부 입장에선 이제 (외교성과의) 첫 걸음이라고 하겠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무엇을 했나’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 입장에서도 크게 잃거나 얻은 것도 없이 최소한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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