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데자뷔? 與 윤리위, 김재원-태영호 징계 ‘시간 끌기’ 이유는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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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도 ‘자진사퇴’ 종용 분위기…윤리위선 ‘정치적 해법’도 거론
與 일각 “이준석 때처럼 ‘정치적 오해’ 안 사려면 얼른 해결해야”

“당이 위기상황이라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

지난 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 위원들은 설화를 일으킨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의 징계 심의에 앞서 이 같은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윤리위는 이날 5시간의 논의에도 ‘사실관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윤리위가 두 최고위원에게 ‘자진사퇴’ 기회를 주기 위해 의도적인 시간 끌기에 나섰거나, 윤석열 대통령 성과인 ‘한·일정상회담’ 이슈를 띄우려는 의도가 있단 분석이 나온다. 다만 징계가 당내 정쟁으로 비화됐던 이준석 전 대표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며, 윤리위의 조속한 판단이 필요하단 지적도 제기된다.

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 출석을 위해 여의도 당사에 들어가고 있는 태영호 최고위원(왼쪽)과 김재원 최고위원. ⓒ연합뉴스
8일 국민의힘 여의도 당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에 출석한 태영호 최고위원(왼쪽)과 김재원 최고위원. ⓒ연합뉴스

윤리위 “사실관계 추가확인”…징계수위 논의도 못 해

국민의힘 윤리위는 8일 여의도 당사에서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안건을 심의했다. 태 최고위원은 ‘제주 4‧3 발언’과 ‘대통령실 공천 개입 녹취록 유출’, ’민주당 JMS 비유 발언’으로 윤리위 심판대에 올랐다. 김 최고위원은 ‘5‧18 민주화운동 관련 발언’과 ‘전광훈 극우 발언’, ‘제주 4‧3사건 폄훼 발언’으로 윤리위에 출두했다.

하지만 윤리위는 5시간의 논의에도 징계 수위는커녕 징계 사유도 확정짓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논의는 태 최고위원의 ‘대통령실 공천개입 녹취록’ 사안을 질의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윤리위는 이틀간 추가 사실관계 확인을 거친 후 오는 10일 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두 최고위원이 2시간 가까이 소명했고 그에 따라 징계 사유를 논의했다”며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사실관계를 조금 밝혀봐야 할 게 있어서 추가 소명 자료를 요청했으며 사실관계 확인 과정을 위해 이틀 정도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김기윤 윤리위원도 9일 TV조선 《뉴스퍼레이드》에 출연해 윤리위 심사가 연기된 이유로 “두 최고위원의 주장에 대한 입증 자료가 불충분했다”며 “두 최고위원이 추가 입증자료를 오늘까지 제출할 수 있다고 해서 내일로 결정이 연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인지 묻는 질문에는 ‘비공개 사항’이라며 말을 아꼈다.

황정근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윤리위 첫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며 잇단 설화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황정근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윤리위 첫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며 잇단 설화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회담 부각 의도도”…“굳이 尹 취임 1주년에 윤리위?”

정치권에선 윤리위가 징계 심의를 유보한 의도가 따로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여당 지도부와 윤리위가 두 최고위원에게 ‘자진 사퇴’의 마지막 기회를 주는 시그널이란 분석도 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9일 통화에서 “지도부나 주변에서도 두 최고위원에게 자진사퇴를 설득하는 움직임이 보이는 분위기”라며 “윤리위도 감안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전했다.

황 위원장도 두 최고위원이 자진사퇴할 경우를 고려하고 있단 발언을 했다. 그는 “(자진사퇴 등) 그런 어떤 ‘정치적 해법’이 등장한다면 거기에 따른 징계수위는 여러분이 예상하는 바와 같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김기윤 윤리위원은 ‘자진사퇴’ 종용을 목적으로 윤리위를 연기했다는 주장에 대해 “만약 그랬다면 소명 절차에서 두 최고위원에게 자진사퇴 의사를 물어봤을 것”이라며 “그런데 그런 내용에 대한 질문은 한 번도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명확한 소명을 통해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란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 관계자도 이날 통화에서 “만약 (윤리위에서) 징계를 약하게 걸 생각이었으면 어제 단숨에 결론이 났을 것”이라며 “황 윤리위원장도 작정하고 강한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하자 없이 문제를 처리를 하려는 의도 같다”고 봤다.

여권 일각에선 지난 주말 진행된 한·일정상회담 등 대통령 성과와 직결된 이슈가 묻힐 것을 윤리위에서 염두에 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친윤(친윤석열)계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한·미정상회담 때도 ‘워싱턴선언’ 등 수많은 성과가 나왔는데 결국 태 최고위원의 발언 파장으로 다 묻혔다”며 “(윤리위 순연으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방한 뉴스를 조금이라도 더 끌고 가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다만 당내에선 윤리위의 2차 회의가 윤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일(10일)인 만큼 당일 이슈를 또 묻히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기윤 위원은 “(두 최고위원으로부터) 입증자료를 받지 않고 진행하면 소송이 들어올 경우 절차적 하자가 생긴다. 징계취소 사유까지 될 수도 있다”며 “그나마 윤리위에서 가장 빠르게 선택할 수 있는 날짜가 10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리위로서는 (취임 기념일에 윤리위를 진행하는게) 부담되지만 어쩔 수 없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리위의 심의가 늦어진 것을 두고 ‘이준석 사태’ 데자뷔라는 목소리도 당내에서 나온다. 당 지지율이 위기인 상황에서 명확한 증거를 빨리 확보해 조속히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인규 국민의힘바로세우기 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윤리위가 (두 최고위원의) 자체징계를 한다고 하면 명확한 징계 사유에 대해 양형을 정하고 소명만 들으면 되는데, 또 정치적 해법을 운운하면서 이틀 뒤로 미루면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오해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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