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조명받는 ‘이상익 함평군수 리더십’…‘함평판 슈뢰더’ 되나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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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사업’ 광주 군 공항 이전 유치 선언…“지역 소멸 위기로부터 함평 구하기 위해서”
최영태 전 전남대교수 “대중 인기에 영합하기 바쁜 대다수의 정치인과 확연히 다른 모습”
‘유럽의 병자’ 독일 구한 슈뢰더의 정치적 리더십 보는듯…“지지층 요구에 반해도 결단”

광주시와 전남도가 광주 군 공항 이전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수장인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도는 서로를 향해 “먼저 통큰 결단을 하라”는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변죽만 울렸다. 이로 인해 광주전남 시도민의 피로감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담대한 소신의 리더십으로 조명 받는 전남의 기초단체장이 화제다. 

주인공은 이상익 함평군수다. 이 군수가 자칫 자신의 정치생명을 끊을 수도 있는 민감 사안에 대해 보란 듯이 선 굵은 결정을 내린 것을 염두에 두고서다. 지역발전의 백년대계보다는 대중 인기에 영합하기 바쁜 대다수의 정치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이상익 함평군수가 8일 군청 5층 대회의실에서 광주 군 공항 유치 관련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함평군
이상익 함평군수가 8일 군청 5층 대회의실에서 광주 군 공항 유치 관련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함평군

군 공항은 대표적인 기피시설이다. 가히 ‘역린사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섣불리 잘못 건드렸다가는 2003년 위도 방사능 폐기장 유치문제를 두고 빚어졌던 전북 부안사태에 버금가는 최악의 사태를 불러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함평 내부에서도 유치 반대 움직임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군수가 이끄는 함평군이 지난 8일 ‘광주 군 공항’ 유치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전남 도내 지자체 중 광주 군 공항 유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곳은 함평군이 처음이다. 지역소멸의 위기로부터 함평을 구하기 위한 명분에서다. 이 군수는 이날 발표한 담화문에서 ”군 공항 이전사업을 통해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함평 발전의 대전환을 이룰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함평군 인구는 2013년 3만5610명에서 지난 4월 3만791명으로 줄어 ‘3만명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군수는 “함평은 지속적인 인구감소 속에 지난해 출생아 수가 75명에 불과하며 향후 5년 내 출생아 수가 0명이 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면서 “군수로서 지역소멸의 위기상황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공동체의 미래 공동번영을 위한 담대한 구상과 과감한 결단을 보여줬다고 평가받는 대목이다.
  
선출직 단체장으로선 결코 녹록치 않은 높은 절제력도 보여줬다. 이 군수는 논란이 되고 있는 함평군의 광주시 편입 문제에 대해서는 ‘요구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광주와의 통합은 절차상 전남도와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광주 공군 제1전투비행단 활주로에서 T-50고등훈련기가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1전비
광주 공군 제1전투비행단 활주로에서 T-50고등훈련기가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1전비

일각에선 이 군수의 결단을 두고 마치 ‘함평판 슈뢰더’의 리더십을 보는 것 같다는 찬사까지 나온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Schröder) 전 총리는 ‘공동선’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는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준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힌다. 좌파 성향의 사민당(SPD) 소속이었던 슈뢰더는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2003년 3월, 연방하원에서 ‘아젠다(Agenda) 2010’이라는 일련의 복지삭감 개혁정책을 발표했다. 

아젠다 2010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을 1년으로 줄이고, 미니잡 등 탄력적인 저임금 일자리를 늘리는 노동 분야의 하르츠 개혁과 연금 지출의 축소를 골자로 했다.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개인의 책임을 늘리는 구조적 개혁이었다. 하지만 슈뢰더는 2005년 총리직을 내려놔야 하는 혹독한 개혁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자신의 정치적 무덤을 스스로 팠다는 비아냥 소리까지 들었다. 그만큼 슈뢰더의 개혁에 대한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특히 논란인 부분은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꾼 하르츠 개혁이다. 노동계와 좌파 정치인들은 그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사민당이 분열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 결실은 후임인 기민당의 메르켈 정부 들어서며 보게 됐고 독일은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강자’로 부활했다. 많은 이들은 그 공을 슈뢰더의 개혁에서 찾는다. 

슈뢰더 전 총리는 2018년 1월 시사저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책임감 있는 정치지도자라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지지층의 요구에 반하더라도 결단을 내려야할 뿐 아니라 반드시 이를 관철해야 한다”며 “보통 그런 의사결정은 시기적으로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내려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더욱 용기가 필요하다. 내 직책을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최영태 전 전남대 교수는 9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상익 함평군수의 군 공항 유치 결정은 물론이요 그 절제력에 박수를 보낸다”며 “결과와 상관없이, 또 미래가 어떻게 되든 우선 인기 전술부터 구사하고 대중에 영합하기에 바쁜 대다수의 정치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고 적었다. 

이어 최 전 교수는 “전남 22개 시군 중 18개 시군이 인구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또 아직 인구소멸 위험지역은 아니더라도 면 단위로 내려가면 대부분이 인구 소멸지역인 군도 있다”며 “그럼에도 온갖 장밋빛 청사진을 발표하며 곧 다가 올 위기에 눈감고 있는 지역의 지자체장을 볼 때마다 ‘저건 아니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상익 함평군수가 더욱 멋져 보인다”고 평가했다.  
 
최 전 교수의 마무리 글이다. “이상익 군수의 결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또 우리 지역에 이런 합리적인 정치인, 당장의 인기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면서 결단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고, 또 그런 사람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정치문화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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