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영화에 허탈감 느낀 관객의 마음을 보수하다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6 11:05
  • 호수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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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음악과 성장의 서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웃고 있는 건 마블일까, DC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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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재밌다. 마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주춤거림 없이 ‘재밌다’고 말한 게 얼마 만인지. 단점 없는 완전무결한 작품은 아니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이하 《가오갤3》)는 지난 몇 년간 마블 영화에 허탈감을 느낀 관객들의 마음을 일부 보수해 주는 멋진 오락물이다.

뒤돌아보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의 ‘화양연화’는 페이즈3가 진행된 2016년부터 2019년까지였다. 그 시기 마블 영화는 솔로물로 나오든 캐릭터가 떼를 지어 나오든 (만듦새에 편차는 있었지만) 나오는 족족 흥행 과녁을 맞혔고, 관객의 환대를 받았다. 파트1과 2로 쪼개졌던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 사이 1년은 특히나 전 세계 관객이 함께 즐기는 일종의 퍼즐놀이 같기도 했는데, 마블이 던지는 미끼 하나하나를 주워 먹으며 관객들은 어벤져스 멤버들의 미래를 꿰어내려는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렇게 당도한 《엔드게임》은 팬들의 기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단순한 파트2가 아니라, 10년간 이어진 마블 영화 22편의 추억을 건드리는 피날레로서 “3000만큼 사랑해”를 부르짖게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리즈물엔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다. 박수 칠 때 떠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거칠게 말해서 《엔드게임》까지 10년간 마블을 강력하게 떠받친 건, 세계관 공유라는 ‘기획의 승리’였다. 그러나 인생은 아이러니. 페이즈4로 들어오면서 마블은 그 기획력에 오히려 발목 잡히는 모습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MCU라는 큰 그림에 집착하면서 개별 영화들의 매력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뜩이나 편수가 쌓이면서 알아둬야 할 정보는 늘어가는데, OTT 플랫폼 디즈니+ 콘텐츠까지 세계관에 합류하며 피로감을 높였다. PC(politically correct·정치적 올바름)라는 시대적 흐름을 과도하게 좇다가 히어로 무비 본연의 재미를 놓쳤다는 비판도 마블이 만난 암초였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언제나 주인공은 너였어, 로켓”

이 시점에 나온 《가오갤3》는 다른 영화에 곁눈질하지 않고 시리즈 고유의 매력과 개성으로 승부를 건다. 《가오갤3》를 보기 위해 디즈니+를 구독해야 한다거나, 어벤져스 역사를 복습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세대교체를 위해 무리하게 끼워 맞춘 서사 또한 여기엔 없다. 《가오갤》 시리즈 전편을 이끌어온 제임스 건은 10년을 함께해온 멤버들에게 오로지 집중해서, 그들을 예우하며, 마지막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엔드게임》 때 그랬듯 외치게 한다. “I love you guys!(아이 러브 유 가이즈!)” 이런 《가오갤3》에 팬들이 긍정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건, 마블이 자신들의 행보를 점검해야 한다는 강력한 시그널일 것이다.

《가오갤》 시리즈 인기를 견인한 것 중 하나는 ‘끝내주는 음악’이었다. 단순히 좋은 음악들을 비싼 저작권 주고 사 와서 끝내준 게 아니었다. 극의 상황과 맞는 음악들을 절묘하게 사용해 끝내준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 말인즉슨, 음악 선곡을 살펴보면 서사의 행간이 읽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오갤3》의 문을 여는 노래가 라디오 헤드(Radio head)의 《크립(Creep)》이고, 이 노래를 로켓(브래들리 쿠퍼)이 ‘굳이’ 따라 부르는 이유는 그래서 중요하다.

1992년 세상에 나온 메가 히트곡 《Creep》은 한 여성을 갈망하지만, 그녀의 남자가 되기엔 자신이 너무 모자라고 ‘찌질(Creep)’해서 괴롭다는 한 남자의 구구절절한 자기 비하와 열등감으로 점철된 노래다. 열등감과 자기 비하. 이것은 로켓이 자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다. 그러니까 이 오프닝은 로켓이 왜 자기혐오를 하게 됐는지, 왜 그토록 시니컬한 너구리가 됐는가를 풀어내겠다는 일종의 예고다.

이에 짝 맞춰 공수된 빌런은 하이 에볼루셔너리(추쿠디 이우지)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타노스(조쉬 브롤린)와 비교해볼 만한 인물인데, 인구 증가와 자원 고갈로 멸망한 타이탄 행성 출신 타노스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인구 절반을 몰살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탄 빌런이었다.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주장한 ‘인구론’과 맞닿았다는 이유로 히어로계 인물로는 드물게 신문 경제면에도 자주 호출된 캐릭터이기도 했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하이 에볼루셔너리 역시 종을 소멸시키는 데 가차 없는 인물이다. 차이라면 타노스가 부자든 가난한 자든 가리지 않고 소멸시켰다면,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그만의 진화론에 입각해 결함이 있는 종만 제거한다는 것이다. ‘완벽한 종족’만으로 이뤄진 ‘완벽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필생의 업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건 무지막지한 동물실험이다. 여기엔 일말의 도덕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그는 그 어떤 희생도 정당화한다. 우생학을 신봉해, 이를 인종 청소의 중요한 근거로 활용한 나치가 떠오른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쯤이면 예상하겠지만, 로켓은 종족 개량을 명목으로 개조된 실험 대상이었다.

아마 《가오갤3》에 관심을 가질 만한 잠재적 관객 중 하나는 동물애호가들일 것이다. 영화가 동물 권리 메시지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훑는 게 아니라, 핵심을 짚어 현실세계에서의 동물들을 돌아보게 한다. 로켓이 89P13으로 불리던 시절, 또 다른 실험체들인 라일라(수달), 티프스(바다코끼리), 플로어(토끼)와 실험실에 갇혀 나눈 우정 시퀀스들은 그 감정의 파고가 짙고도 깊어 놀라울 정도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며 하나의 개별 존재로 거듭나는 장면은, 올해의 신에 넣고 싶을 정도로 애잔한 감흥을 안기기도 한다. 그들의 이별 과정 역시 눈물 버튼. 휴지를 챙기시라.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부족함을 인정하며 성장하기

로켓의 서사가 중심에서 흐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가오갤 멤버들을 영화는 따돌리지 않는다. 로켓뿐만 아니라, 모든 캐릭터가 저마다 지니고 있는 부족함을 안고 성장한다. 강조하지만, 이 인물들은 부족함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안음으로써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건 《가오갤》 시리즈 정신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는 빌런 하이 에볼루셔너리와 대비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완벽은 무엇인가. 부족함이란 또 무엇인가. 그것은 타인에 의해 규정된 것일 뿐,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만한 것임을, 《가오갤3》는 교조적인 자세가 아니라 유머와 익살과 감동을 빌려 풀어낸다.

그런 점에서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인물은 로켓에게 치명상을 입힌 아담 워록(윌 폴터)이다. 로켓처럼 하이 에볼루셔너리에 의해 만들어진 아담은 《가오갤2》에서 소개됐던 금테를 온몸에 두른 소버린(Sovereign) 족이다. 자기애가 흐르다 못해 넘치는 여사제 아이샤(엘리자베스 데비키)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하는 인물. 로켓이 자기혐오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면, 워록은 자기애의 늪을 비집고 나와 그만의 성장을 보여준다.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실험용으로 삼았던 로켓과, 그런 실험들의 최상위 버전 중 하나로 탄생했을 아담.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두 캐릭터의 시선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다.

그렇다면, 《가오갤3》는 마블의 구세주일까. 페이즈3가 투척한 실망이 너무 짙어서 이번 편의 선방 하나로 마블의 미래를 낙관하긴 힘들 것이다. 게다가 시리즈 내내 꾸준한 기량을 보여준 제임스 건은 이미 DC 사람. 마블의 오랜 침체기를 녹이는 작품이 DC의 새로운 수장이 된 제임스 건의 손에서 나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이 제임스 건이 마블에 안기는 따뜻한 이별 선물인 건가, 부담인 건가. 무엇보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마블은 어떤 마음일까.

알려졌다시피, 제임스 건이 DC로 이직하게 된 사연에는 영화만큼이나 드라마틱한 부분이 있다. 과거 트위터에 소아성애를 옹호하는 글을 작성한 것이 문제가 되면서 제임스 건은 《가오갤3》 준비 도중 마블-디즈니로부터 퇴출당한 바 있다. 당시 출연진은 감독의 편에 서서 옹호하기도 했는데, 모르긴 해도 그때 스튜디오와 《가오갤》 팀 내부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런 상황에서 제임스 건에게 대뜸 손을 내민 건, 마블의 경쟁사 DC 스튜디오. 제임스 건이 DC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연출직을 수락한 사이, 마블이 기존의 해고 결정을 번복하면서 제임스 건은 잠시 마블과 DC 양쪽을 오가는 ‘웃픈’ 상황을 연출하게 됐는데, 그래서 궁금하다. 《가오갤3》의 선전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건 마블일까, DC일까. 바야흐로 히어로 세계가 혼돈기에 접어들었다. 

■마블 vs DC 차기작 대결도 관심

극찬 또 극찬이다. 지금 할리우드는 이 영화에 대한 입소문으로 뜨겁다. DC의 《플래시》가 그 주인공. 플래시 역을 맡은 배우 에즈라 밀러가 최근 주거침입·절도·폭행 등 갖가지 구설에 휘말렸음에도 영화에 대한 기대가 배우 개인의 논란을 앞지른 분위기다. 소문대로 DC가 대어를 낚은 것일까. 결과는 6월 공개된다. DC는 라틴계 히어로물 《블루비틀》과 제이슨 모모아 주연의 《아쿠아맨 앤 더 로스트 킹덤》도 8월과 12월 내놓는다.

한편 《가오갤3》로 잠시 한숨을 돌린 마블은 하반기에 《더 마블스》를 출격시킨다. 《캡틴 마블》의 속편으로 박서준이 출연해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다. 그러나 개봉이 당초 예정인 7월에서 11월로 밀리면서 영화 만듦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마블의 속이 타들어가는 202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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