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여전히 ‘유령’을 좋아해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3 15:05
  • 호수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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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이끄는 뮤지컬 최대 흥행작 《오페라의 유령》
부산과 서울 공연 전 회차 매진 진행 중

프랑스에서 1910년 출판된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현재까지 여러 버전의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등으로 각색돼 한 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세계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각색은 영국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일 것이다.

원작 소설에 작가는 유령의 이름을 ‘에릭’이라고 썼지만 등장인물들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진 않는다. 뮤지컬에서도 사람들은 그를 ‘유령’이라고만 부른다. 에릭(유령)은 벽돌 기술자 아버지를 둔 하층민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흉측한 외모를 가졌지만 자신의 괴기스러운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프릭쇼(freak show)’를 통해 돈을 버는 악착스러움도 갖추었다. 그는 떠돌이 집시들한테 배운 마술과 노래 실력이 빼어났고 손재주도 좋은 덕에 파리 오페라 하우스 공사장 인부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무대 한 장면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무대 한 장면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무대 한 장면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무대 한 장면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무대 한 장면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무대 한 장면 ⓒ에스앤코 제공

괴담을 로맨스로 바꾼 뮤지컬 

그리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하는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남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극장 지하에 미로를 만들어 자기만의 거처로 삼는다. 원작에서 그는 자신의 외모로 인한 고통에만 집중하느라 타인의 고통에는 눈감고 폭력이나 살인을 저지르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악마적이고도 위험한 캐릭터가 뮤지컬과 만나면서 그는 상당 부분 천재성과 로맨티스트적 속성을 가진 인물로 변모할 수 있었다.

그는 극장 지하에 기거하면서 발레 앙상블 출신의 소프라노 크리스틴에게 반해 비밀 음악 레슨 선생을 자처하고 헌신적으로 가르친다. 어느 날 크리스틴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귀족 라울과 정분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릭은 그녀를 지하로 납치하면서 본색을 드러내나 싶었는데, 반대로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The Music of the Night》의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하며 진정성을 보이고 크리스틴은 감동한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유령에게 가졌던 일말의 불안감이 무장해제되는 것을 느낀다. 평생 모태솔로로 살아온 그가 크리스틴을 마음속 깊이 연모해 왔지만 실제로는 서툴게 대하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연민과 함께 오히려 그가 가면에 가려진 진정성 있는 내면을 가진 캐릭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1막 끝에서 유령이 샹들리에를 추락시키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원작 소설은 공포스러운 재난 상황을 연출했지만, 뮤지컬은 극장 관객들에게 안전하면서도 스펙터클한 재미를 선사해 주기에 한때 마술사 경력까지 가졌던 유령의 신통방통한 능력에 경배하게 된다. 그나마 무대장치 담당 부케를 목매달아 죽게 하는 장면 정도로만 그의 야만성을 최소화해 남겨뒀다.

사실 무대에는 공포 장르가 어울리지 않는다. 호러 소설, 호러 영화는 있지만 호러 뮤지컬이라는 것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무대는 배우들과 관객들의 특수한 약속으로 구성돼 있다. 무대 위에서 그 배우가 죽는 연기를 해도 암전이 되면 다시 벌떡 일어나 퇴장한다는 것을 관객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 역시 괴담에서 비롯된 스릴러 소설이지만 무대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제작진에 의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로맨틱한 뮤지컬이 됐다. 그 중심에는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졌지만 타고난 재주가 많고 특히 노래를 잘하며 진실된 사랑에 이제 막 눈뜬 순수한 ‘유령’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뮤지컬의 결말은 그의 순수함을 증폭시킨다. 크리스틴을 다시 납치한 유령을 쫓아 라울이 지하에 내려오자 자신은 가면을 남겨준 채 어디론가 떠나버린 것이다. 결국 크리스틴과 라울의 사랑이 이루어졌음을 말해 준다.

원작 소설에서는 에릭(유령)이 객사한 것으로 나오지만 뮤지컬에서는 그가 어디선가 계속 크리스틴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갈 것임을 암시하며 유령을 사랑한 관객들에게 아쉬움을 주었다. 그래서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이야기가 끝난 10년 후 뉴욕을 배경으로 크리스틴을 다시 만나게 되는 유령의 이야기를 《러브 네버 다이즈(Love Never Dies)》라는 속편 뮤지컬로 만들었다. 속편에서는 유령의 이야기가 대폭 늘어났지만 실질적인 서사가 충분하지 않아 오히려 지나친 집착으로 보였고 막장 요소들까지 추가되면서 유령의 신비감이 퇴색했다. 속편이 나왔어도 관객들은 여전히 《오페라의 유령》에서의 유령만 기억하고 싶어 한다.

뮤지컬 《러브 네버 다이즈》 무대 한 장면 ⓒJoan Marcus 제
뮤지컬 《러브 네버 다이즈》 무대 한 장면 ⓒJoan Marcus 제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으로 기네스북 올라

그런가 하면 가스통 르루의 원작 소설을 또 다른 뮤지컬로 각색한 《팬텀(Phantom)》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두 차례 라이선스 공연을 가졌는데 대본은 아서 코핏이, 음악과 가사는 모리 예스턴이 담당했다. 《오페라의 유령》과는 다르게 서사의 중심이 처음부터 에릭(팬텀)의 구체적인 인생 여정에 맞춰져 있다. 이 버전에는 그의 출생 비밀과 크리스틴과의 구체적인 로맨스 과정까지 나온다. 그러다 보니 《오페라의 유령》의 베일에 싸여 있는 유령 캐릭터에 비해 연민은 덜 느껴진다. 하지만 이 버전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특히 에릭이 무대 위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보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재미를 준다.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고 지난 4월 무려 35년간의 공연(1988~2023)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폐막했다. 한국에서도 이 작품을 볼 수 있다. 부산 공연이 6월18일까지 진행 중이고 7월부터는 서울 공연을 한다. 조승우가 유령 역으로 출연해 전 회차 매진을 기록 중이다. 그리고 저마다 색깔이 다른 세 명의 유령(최재림, 전동석, 김주택)이 무대 위 가장 매력 있는 배역을 조승우와 함께 나눠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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