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루페인트 등 일부 업체, 협약 깨고 유성 도료 꼼수 유통 의혹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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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물질 저감 위한 환경부-업계 ‘MOU’ 깨고 유성 공급…“제재 조항 없어”
환경부 “사실 인지…법적 처벌 위해 법 개정 나설 것”
한 업체가 공급하고 있는 자동차 보수용 도료통 모습. 공업용 자동차 도료(빨간원)라고 표시하고 있지만 파란원 안에 있는 색깔코드는 유성도료를 의미한다. ⓒ독자 제공
한 업체가 공급하고 있는 자동차 보수용 도료통 모습. 공업용 자동차 도료(빨간원)라고 표시하고 있지만 파란원 안에 있는 색깔코드는 유성 도료를 의미한다. ⓒ독자 제공

노루페인트 등 일부 페인트 업체들이 자동차 보수용으로 유성 도료를 넣어 유통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정부와 업계가 수성 도료만 쓰기로 맺었던 자율협약을 스스로 어긴 셈이다. 대기오염물질 저감을 위해 맺었던 약속을 저버린 일부 업체들의 영업행위에 대해 국민 건강을 저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태 파악에 나선 환경부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으나, 현재로서는 법적으로 제재할 조항이 없어 개정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16일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인천, 경기 등 수도권과 충청 일부 지역에서 자동차 보수용 유성 도료가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페인트 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부터 자동차 보수용 도료를 사용하는 공업사들이 수성 도료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의구심을 갖게 됐다”며 “노루페인트 등 3개 업체의 대리점에서 공업용 도료캔에 유성 도료를 넣어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공급된 공업용 자동차 도료캔에 유성 도료를 의미하는 색깔코드가 적혀있는 것이 적발되면서 드러났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페인트 색을 구분하기 위해 색깔코드를 기입한 것이다. 업체들은 생산한 페인트에 각 사별로 고유의 색깔코드를 정해놓는다. 코드를 통해 어떤 업체에서 생산했는지, 유성인지 수성인지 확인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일부 업체들의 유성 도료 유통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와 업계가 맺었던 ‘자율협약’을 어긴 행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환경부와 국내 자동차 보수용 도료 생산량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9개 제조사는 ‘휘발성유기화합물 저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서(MOU)’를 체결했다. 협약의 골자는 여름철 오존 발생 원인 중 하나인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Volatile Organic Compounds)을 함유하고 있는 자동차 보수용 유성 도료의 제조, 수입, 판매를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VOCs는 여름철 도심 광화학 오존오염의 원인물질이다. 사람의 호흡기 자극, 신경계 장애, 발암성 및 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물질이기도 하다. 특히 자동차 수리 후 최종 도장에서 사용되는 유성 도료와 유성 조색제가 VOCs을 대기 중으로 방출하면서 여름철 오존 발생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반면 수성 도료는 물이 주성분으로 이뤄져 공기 중에 배출되는 VOCs을 저감해 대기환경보전법 기준에 충족할 수 있다. 수성 도료로의 전환을 통해 대기 관리에 도움이 되고자하는 취지에서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지난해 8월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휘발성유기화합물 저감을 위한 협약식’에 환경부 관계자와 도료 제조사 대표들이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휘발성유기화합물 저감을 위한 협약식’에 환경부 관계자와 도료 제조사 대표들이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은 안 속는다”…서울시 추진 MOU에 업계 불참

일부 업체가 자율협약을 깨자 나머지 업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도료 내 VOCs 규제는 도료와 신너를 사용하는 일반소비자 및 중소규모 공업사 등을 환경부가 일일이 규제할 수 없어 도료업체에 기술개발을 강제하는 것”이라며 “대부분의 업체들은 그 취지와 목적을 이해하고 장기간 계획을 통해 설비투자 및 기술연구를 수행해 해당 법규에 맞는 도료를 개발하고 공급하고 있는데, 공업용 도료통에 유성 도료를 유통하는 건 질서를 흐리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 규모를 보더라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보수용 도료 시장은 약 1600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유성 도료는 약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약 320억원 수준이다. 한 관계자는 “편법 유통을 이어가는 업체 가운데는 전체 매출이 1조원이 넘는 곳도 있다”며 “굳이 업계의 원성을 사면서까지 협약을 깨며 영업활동을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협약 위반 여파는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VOCs 저감을 위한 MOU 체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는 현재 페인트 업계 및 자동차정비조합과 VOCs 저감을 위한 MOU 체결을 추진 중에 있다. 지난해 환경부가 맺은 협약과 유사한 내용이다. 하지만 6개 페인트업체가 참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체 관계자는 “환경부와 맺은 협약도 깨고 유성 도료 생산과 유통을 이어가고 있는 업체들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나머지 업체들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MOU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수성 도료 전환을 위한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사용자인 정비조합 측과 계속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조사간에 분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모두 참여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적 사각지대 발견…개정 위한 입법예고 준비 중”

환경부도 업계 반발이 커지고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자동차 보수용 유성 도료 판매 자제 공문을 지난해에 이어 올 초에도 보냈다”면서 “그럼에도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는 제보가 많아 점검에 나섰다. 그 결과 유성 도료가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환경부의 입장이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르면, VOCs 함유기준을 초과하는 도료를 공급하거나 판매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현재 문제가 되는 유성 도료(상도-Basecoat)의 VOCs 함유기준(g/L)는 200이하이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은 VOCs 함유기준을 지키면서 유성 도료를 유통하고 있다. 법적 테두리 내에서 자율 협약을 지키지 않는 ‘꼼수’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환경부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협약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협약 내용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제품 전량 회수 조치 등의 처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자발적 협약을 통해 업계 변화를 유도했지만 법적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단속 점검을 강화하는 동시에 관련 규정 보완을 위한 개정 절차로 입법예고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 개정은 시일이 걸리는 일이기에 업계는 강한 우려를 표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 개정 전까지) 일부 업체들이 편법으로 유성 제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면 대기 중에 배출되는 VOCs 양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해당 법규를 지키기 위해 아무 업체도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모든 개발과 투자 대신 편법으로 공급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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