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을 몰살했다” 수원역 폭행 사망 사건 가해자들에 커지는 공분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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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피해 남성 여동생도 가해자들 조롱·모욕 마주하다 극단 선택
가해자 중 일부 마약 범죄로 또 기소…‘엄벌’ 촉구 탄원서 서명 릴레이
2012년 9월 발생한 수원역 집단폭행 살인 사건 가해자들이 출소 후 촬영한 단체 사진. 이 사진을 SNS에 올린 가해자는 게시물에 '역경을 같이 이겨낸 놈들아 사랑한다'는 글도 함께 적었다.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012년 9월 발생한 수원역 집단폭행 살인 사건 가해자들이 출소 후 촬영한 단체 사진. 이 사진을 SNS에 올린 가해자는 게시물에 '역경을 같이 이겨낸 놈들아 사랑한다'는 글도 함께 적었다.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우리 가족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이 더우나 추우나 (오빠) 묘지에 가서 그저 울 수밖에 없는데, 한 가족 몰살 시켜놓고 뭐가 그렇게 사는게 재밌니."

2012년 9월 수원역에서 발생한 집단폭행으로 사망한 피해자 남성의 여동생이 사건 발생 4년이 지난 시점에 작성한 글이다. 여동생은 당시 미성년자였던 가해자들이 출소해 SNS에 '역경을 같이 이겨낸 놈들'이라는 문구와 단체 사진을 보란 듯이 올린 것을 확인하고 울분을 토했다. 반성은 커녕 가해자들의 모욕과 조롱을 마주해야 했던 피해자 여동생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16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11년 전 발생한 수원역 집단폭행 사망 사건을 재조명하고 피해자를 무차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이 일고 있다. 당시 사건으로 이미 가해자들은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또 다시 마약 범죄를 일으켜 기소된 이들을 솜방망이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피해자 지인의 호소에 시민들은 "기꺼이 동참한다"며 릴레이 서명에 참여하고 있다. 

사건이 재조명 된 건 피해자의 지인 A씨가 지난 1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물이 공유되면서다. A씨는 "수원역 미성년자 집단 폭행 살인사건 피해자는 당일 사망했고, 그 여동생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에 피해자의 노모를 대신해 작성한다"며 가해자 엄벌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수원역 집단폭행 사망 사건은 2021년 당시 미성년자였던 가해자 일행이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길을 지나던 20대 3명을 붙잡아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다. 당시 21세였던 피해자 1명이 결국 사망했고, 2명은 중상을 입었다. 가해자 일당 8명 중 6명은 상해치사상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시비를 건 가해자 일당을 피해 현장을 벗어나려 했지만 뒤쫓아 온 10대 가해자들이 욕설을 하며 주먹과 발로 피해자들을 무차별 폭행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이 바닥에 쓰러진 상황에서도 잔혹한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1심에서 가해자 3명은 징역 10년형, 1명은 8년형, 2명은 5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 이들의 형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피해자 지인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미성년자였던 점을 강조하며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합의를 거부한 피해자에 공탁금을 거는 등 방식으로 '선처'를 구했다고 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피해자 부모에 공탁한 점, 피고인들의 연령, 환경, 범행 후 정황 등을 종합할 때 원심 선고형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감형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반성한다던 가해자들은 출소 후 보란 듯이 SNS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고, '역경을 함께 이겨낸 놈들아 사랑한다'는 문구도 적었다. 가해자가 언급한 '역경'은 집단폭행 살인으로 인한 교도소 수감 생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피해자 가족의 삶은 처참히 망가졌다. 생일을 맞은 여동생의 미역국을 끓여 주러 가던 길에 무차별 폭행으로 목숨을 잃은 오빠와 가해자들의 끝없는 조롱을 마주하며 생을 등지게 된 여동생, 남매를 잃은 충격에 빠진 부모의 모습을 보며 지인들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며 분노했다. 

A씨는 "제 지인의 죽음이 저들에겐 고작 역경이라는 이름의 추억팔이로 전락했다는 것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며 "제 지인의 가족은 송두리째 (삶이) 무너졌고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 가해자들은 떳떳하게 잘 살아가더라"고 탄식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직접 전화해 조롱하거나 SNS 게시물을 통해 피해자를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유튜버 구제역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우리가 죽인거냐, 니 친구가 XX거지"라고 웃는 등 조롱했다.  

A씨는 가해자 중 일부가 최근 마약밀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1년 전 사건과 마찬가지로 '솜방망이 처벌'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엄벌을 받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가해자들의 마약 재판을 직접 참관하며 지켜 본 A씨는 "1심에서 검사가 징역 30년형을 구형했지만 판사는 징역 12년형을 선고했고, 2심에서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와 대형로펌을 선임하더니 2심에서 (검찰) 구형이 15년형으로 깎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11년 전 악몽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며 "부디 이번에는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엄중한 법의 철퇴를 맞을 수 있도록 엄벌탄원서를 제출해달라. 부디 죄지은 사람들이 합당한 벌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한편, 수원역 집단폭행 사망 사건 일부 가해자들의 마약밀수 혐의 선고 공판은 오는 18일 오후 2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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