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선심성 정책 잔뜩 내놓았는데 지지율은 ‘뚝’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4 07:3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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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 10명 중 7명, 기시다 일본 총리의 저출산 대책에 “기대 못 해”
재원 확보 방안 등 알맹이 빠져 실망감 표출…동병상련 한국에도 많은 점 시사

일본은 대한민국과 함께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7년 연속 합계출산율과 출생아 수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2022년 한 해 동안 일본 전국에서 77만747명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이는 2021년 출생아 수보다 4만875명이나 줄어든 수치다. NHK는 출생아 수가 80만 명 이하로 감소한 것은 후생노동성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899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6월13일 저출산 대책으로 ‘아동 미래전략방침’을 내놓았다. 이날 오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청년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2030년대까지가 지금의 저출산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또한 비혼율 상승, 출산율 하락의 최대 요인이 “청년세대의 소득 문제”라고 지적하며, 청년세대와 육아 중인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소득을 늘리기 위해 경제적 지원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6월13일 내각에서 결정된 아동 미래전략방침은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첫째 청년세대가 결혼과 육아라는 미래를 그리기 어려운 사회 상황, 둘째 육아하기 어려운 사회 환경 및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직장 환경, 셋째 육아에 대한 경제적·정신적 부담과 육아세대 간 불공평함(소득 수준에 따른 지원 유무 등)의 존재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한 대책으로 청년세대 소득 증가, 사회 전체의 구조 및 의식 변화, 모든 아동과 육아세대에 대한 끊임없는 지원이라는 세 가지 기본 이념하에 구체적인 지원을 실시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6월13일 도쿄 총리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아동 미래전략방침에 관해 기시다 일본 총리에게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 AP 연합

“육아나 교육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예를 들어 중학생 자녀까지만 지급되던 아동수당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지급하도록 하거나, 세 자녀 이상인 경우 아동수당을 추가적으로 지급하는 지원 내용은 내년 10월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출산 비용의 의료보험 적용, 대학교 등록금 후불제 도입, 신혼부부 및 육아세대의 주택 구입 시 저금리 적용, 남성의 육아휴직 취득률 향상, 선택적 주3일 휴무제 도입, 아동수당 지급에서의 소득제한 철폐 등 구체적인 지원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가 2021년 실시한 출산동향 기본조사(5년 단위 실시)에 따르면 일본 국민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자녀 수(희망 자녀 수)는 2.25명이다. 그러나 일본 국민의 52.6%가 희망 자녀 수만큼 자녀를 갖지 않는 이유로 “육아나 교육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라고 답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경제적 이유로 인해 출산 및 육아를 주저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다. 올해 3월 ‘닛폰재단’이 일본 전국의 18~69세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저출산과 육아’를 테마로 한 의식조사에서도 ‘저출산 해소를 위해 국가나 지자체, 기업에 어떤 대책을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임금 인상”(33.4%), “교육비 무상화 및 지원 확대”(30%), “출산·육아에 대한 공적 지원 강화”(28.2%) 순으로 응답이 이어졌다. 일본 여성들이 출산 및 육아에서 ‘경제적인 환경 정비’를 중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비춰볼 때 각종 경제적 지원을 통해 청년세대 및 육아세대의 소득을 늘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시다 내각의 방침은 일본 국민의 니즈(Needs)를 적절히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6월13일의 아동 미래전략방침 발표 이후 기시다 정권의 저출산 대책에 비판적인 여론이 압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혜 입어도 재원 마련에 대한 불안감 남아”

먼저 아사히신문이 6월17~18일 실시한 전국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기대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실질적으로 추가 부담 없이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기시다의 발언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72%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중 다른 매체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교도통신의 6월 전국여론조사에서도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기대할 게 없다는 응답이 66.3%로 나타났다. 아동수당 추가 지급 등을 위한 재원 부담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응답자의 72.7%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마이니치신문의 6월 전국여론조사에서도 저출산 대책을 확충하기 위한 재원 문제에 대해 “빨리 논의해야 한다”는 응답이 78%로 나타났다. 

실제로 자녀를 육아 중인 육아세대의 평가도 엇갈리는 추세다. 7개월 된 아기를 기르고 있는 20대 여성은 “(기시다 정권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초점을 잘못 맞춘 점도 있다. (자녀를 가진 여성이) 일을 해도 풀타임으로 근무하기 어려우니 그만큼 소득이 낮고, 어릴 때부터 자녀가 보육원에 다니기 때문에 그만큼 돈도 많이 든다. 실은 자녀를 2~3명 낳고 싶은데 한 명만으로도 너무 힘들다”고 밝혔다.

3명의 자녀를 둔 30대 다둥이 엄마도 “(정책에 대해) 평가할 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어서 높게 평가할 수 없다. 수혜를 입어도 재원 마련에 대한 불안감이 남는다”고 답했다. 7개월 된 아기를 기르고 있는 30대 남성은 선택적 주3일 휴무제 도입과 관련해 “기쁘다. (육아는) 지금밖에 없는 시간이므로 소중히 하고 싶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아빠로서 아이를 더욱 좋아하게 될 것 같다”면서도 “(주3일 휴무로) 월급이 적어지는 건 곤란하다. 만약 월 소득이 줄어든다면 대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식으로 투잡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5월22일 기시다 총리는 저출산 대책 관련 재원 확보를 위해 “소비세를 포함한 새로운 세금 부담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철저한 세출 개혁을 통해 국민의 실질적 부담을 최대한 억제하는 형태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6월13일 아동 미래전략방침 발표 당시, 기시다 총리는 재원 확보를 위한 구체적 논의는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며 상세한 언급을 피했다. 기시다의 “증세 없는 복지 확대” 주장에 일본 국민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세출 개혁 등으로 고령자의 의료 및 돌봄 비용 부담이 증가하면 세대 간 대립이 조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기시다 내각의 저출산 대책이 정작 알맹이가 빠진 전시성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은 똑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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