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이래도 존속된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쓴소리 곧은소리]
  • 조경환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초빙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3 15:0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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院 내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승진하기보다 외부 권력에 기대 출세하려는 분위기 팽배
반복되는 인사파동, 정치권 책임 커…군·경찰·법무부·외교부에 독점적 지위 빼앗길 수도

대통령제 국가에서 직속의 국가정보기관은 실효적 통치자산이다. 그 지휘부와 고위직을 대통령의 철학에 부합하는 인물로 구성하는 것은 권리며 권한이다. 그렇지만 동아일보의 6월14일 “[단독] 국정원 1급 인사 번복…7명 전원 ‘직무 대기’” 보도는 미증유의 사태다. 보안이 생명인 비밀조직의 내부 알력상과 대통령의 인사권이 소상히 노출되고 있다. 북한 정찰총국이나 중국 국가안전부가 시간과 돈을 들여 첩보를 수집하고 퍼즐을 맞춰야 알 그림들이 절로 쏟아진다. 이적이나 다름없다. 의도적 언론플레이가 아니고서는 성립이 안 된다. 내부자는 외부의 정치인·전직들의 입김을 활용한다. 

국가정보원 전경 ⓒ국가정보원 제공
국가정보원 전경 ⓒ국가정보원 제공

보안이 생명인 비밀조직의 내부 고스란히 노출

“국정원은 참 원장 복이 없다”고들 한다. 원장이 자질이 있어야 시스템이 잘 굴러간다. 대통령 측근도, 내부 출신들도, 전직 육군 대장도, 전직 외교관도 예외 없이 실패했다. 정치인 출신의 어떤 인사는 ‘전 국정원장’ 타이틀을 가지고 정파적 발언을 일삼는다. 정보의 정치화를 웅변한다.

국정원장의 실패들은 어쩌면 필연이다. 국정원의 직무는 대공과 방첩, 대테러와 국제범죄, 대북과 해외정보, 사이버와 우주, 신기술 등 복잡다기하다. 별의별 사람들이 종사한다. 한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원장 1인 중심의 응집력과 충성심을 요구하는 비밀조직은 치명적 결함을 내포한다. 리더의 신념, 선입견과 이념적 편견, 희망적 사고, 확신과 불신, 긍정과 비관이 모두 정보 ‘판단’에 스며든다. 원리적이며 단일한 도그마는 더 넓은 시각, 깊이와 섬세함을 앗아간다. 집단사고는 이견을 악인화한다. 정권의 기대치에 부합하지 않는 증거들은 배제되기 십상이다. 감사와 감찰의 내부 견제기능은 원장과 정권의 도구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감독권은 정치적 타산 앞에 맥을 못 춘다. 

원장은 “직원 복이 없다”고 푸념한다. 차장들은 각기 정치 연줄로 내려와 있다. 원장을 조력해야 하지만, 그 자리를 위협하는 경쟁자도 된다. 직원 반목의 근원은 영·호남 갈등이다. 묵묵히 일할 유인이 적다. 입직, 학연과 가족관계로 얽히고설킨 온정주의는 비밀 장막 안에서 작동한다. 상관의 인정을 받아 승진하기보다는 외부 권력에 기대는 게 효과적이다. 5년 정권마다, 원장이 바뀔 때마다 기회의 창은 어김없이 열린다. 경쟁에서 뒤진 일부 직원의 생존술은 퇴행적이다. 복수로 갚고 복수를 낳는다. 모략과 공작, 수사 능력이 동료를 향한다. 인사 전횡이 개혁으로 포장된다. 전 정권 사람들을 솎아낼 때는 뜻을 같이했더라도 그 빈자리를 차지할 때는 아귀다툼이다. 줄타기와 편 가르기의 등에 올라타 주기적으로 고속 승진을 예약한다. 유능한 직원들은 소리 없이 스러져간다. 대다수 전문인력(intelligence professionals)의 가슴 한편에 좌절이 쌓인다. 이러니 새로 온 원장인들 기성 라인을 믿고 큰일을 도모하겠나? 

10년 전인 2013년 8월5일 국회의 국정원 국정조사 때 모 국회의원은 국정원을 “우물 안 개구리 왕국”으로 묘사했다. 모욕으로 들렸겠으나, 지금의 외부 시선은 그렇다. 국정원이 내전으로 소진하는 동안 밖은 급변하고, 국민 눈높이는 높아간다.  

첫째, 북한의 대남 위협과 미·중 경쟁의 변동성 증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에 따른 서방의 복잡한 셈법,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 등 안보 환경은 엄혹하다. 돌발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1973년 10월6일 ‘욤 키푸르(Yom Kippur)’ 전쟁은 정보 실패의 전형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인 아랍연합군에 패했다.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가용 정보를 틀리게 평가했다. 기만에 당해 침략 징후를 잘못 읽었다. 일선 분석관의 경고를 선임이 엎어버렸다. “아랍은 침략할 능력도, 의도도 없다”는 안보공동체의 정치적 판단에 정보 수장은 굴복했다. 패전 후 군 정보기관(DI)은 속죄양이 돼 해체됐다(애비 쉬라임. 1976. “국가정보평가의 실패”). 김정은 정권이 “압도적 미 확장억제를 뚫고 도발을 감행할 능력이 못 된다”는 예단은 대세다. 그러나 그가 궁지에 몰리면 무슨 수를 못 쓰겠는가?

 

권력이 절제해야…국정원 부릴 생각하면 안 돼

둘째, 행정 권한은 ‘일 잘하는 곳에 배분’이 원칙이다. 국민은 국정원의 독점적 지위를 마냥 보장해 주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방부와 군의 북핵 정보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보도를 접한다. 국정원과의 정보 공유가 매끄럽지 않다는 말도 들린다. 경찰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에서 형해화된 국내 보안정보 기능을 도맡아 하는가 하면 내년부터는 대공수사권을 독점한다. 법무부는 2022년 6월부터 인사정보관리단을 통해 고위공직자의 인사 정보를 수집, 검증한다. 외교부는 재외공관의 전문을 바탕으로 별도 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실에 보고하는 ‘외교정보단’을 가동 중이다. CIA보다 오랜 전통을 가진 정보기관인 미 국무부의 정보조사국(INR)으로 진화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셋째, 반복되는 국정원 인사 파동에 정치권의 귀책은 크다. 권력과 정치가 절제해 주면 좋겠다. 대통령이 국정원을 부릴 생각을 할수록 개혁은 멀어진다. 외부 인사가 정치적 선입견을 가지고 조직과 인사, 감찰을 다루면 하드웨어 개혁은 가능할지라도 소프트웨어 개혁은 힘들어진다. 야당에도 원천적 책임이 있음은 역사가 말한다. 신구 권력의 암투로 해석하고, 파벌싸움이나 ‘폐지된 국내정보’파와 ‘해외정보’파의 대결 프레임으로 모는 것은 본질 호도요, 시대 지체다. 그들 정부의 개혁을 합리화하려는 의도이겠으나, 결과적으로 ‘국가 안보의 최일선’인 국정원을 더 ‘정치집단’화하게 한다. 

국정원 직원도 생활인이고 유권자다. 정치적 스펙트럼은 일반인처럼 다양하다. 그래도 국체와 국익 수호를 업으로 하는 집단이다. 자존심에 더는 상처를 주어선 안 된다. 전문성을 믿어야 한다. 스스로 풀어갈 여지를 둠 직도 하다. 국정원 구성원들은 맹성해야 마땅하다. 이러다가는 원장도, 차장도, 직원도 다 죽는다. 자리를 탐할 처지가 못 된다. 보안 위규자는 엄벌하되, 집합적 지혜를 모으고 단결해 최고정보기관의 책무 수행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치열하게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진리를 알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지 않은가.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는 자, 누가 도우려 하겠나.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조경환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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