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5일, 총을 들었고, 다쳤고, 가난해졌다”
  • 박성의·구민주·변문우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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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3주년]이등병보다 못한 참전용사의 삶
지원금 39만원에 생계 곤란…“예우는 선택 아닌 의무”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4시. 그 날 김필모(익명)씨의 인생은 바뀌었다. 도시 곳곳에 포성이 울렸다. 학생이었던 필모씨는 그렇게 소년병이 됐다. 학우였던 또래 전우들이 수없이 죽어나갔다. 필모씨도 수차례의 사선(死線)을 넘었다. 1953년 7월27일, 지옥 같던 3년이 흘렀고 정전 협정이 맺어졌다. 필모씨의 10대는 사라진 뒤였다.

필모씨는 이후 30여 년간 선원 생활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나라는 필모씨를 ‘참전 영웅’이라 불렀다. 그러나 영웅의 삶은 가난했다. 90세를 바라보는 필모씨에게 정부는 매달 명예수당으로 39만원, 지방자치 추가 수당으로 10만원, 총 49만원을 줬다. 그러나 하루 세 끼를 챙기기엔 부족한 돈이었다. 결국 2023년 4월, 필모씨는 절도범으로 검거됐다. 고령의 참전용사가 훔친 것은 젓갈, 참기름, 참치통조림 등 8만원 상당의 식료품이었다.

6·25 전쟁에 참여했던 인천학도병들이 1955년 자유공원 충혼탑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시사저널DB
6·25 전쟁에 참여했던 인천학도병들이 1955년 자유공원 충혼탑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시사저널DB

39만원, 참전용사가 손에 쥐는 月생계비

6.25 73주년, 이제 전쟁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은 모두 나이 든 노인이 됐다. 국가보훈부가 파악한 6.25 참전유공자 현황에 따르면, 최고령의 참전용사 나이는 만 110세, 최연소는 만 78세, 평균 연령은 만 91세다. 이들에게 6.25 전쟁은 과거가 아닌 현재다. 밤이면 서울 복판에 폭탄이 떨어지는 악몽을 꾸고, 북한 관련 뉴스를 보면 먼저 떠난 전우가 생각난다고 한다.

2023년 대한민국은 과연 ‘참전용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리고 있을까. 국가보훈부 참전유공자 보훈대상요건에 따르면, 6.25 전쟁 등의 전투에 참전하고 전역한 군인 등 국군으로서 전쟁에 참전한 자는 모두 ‘참전유공자’로서 혜택과 보상을 받는다. 대표적인 혜택은 참전명예수당이다. 국가보훈부는 현재 참전유공자 등록자 중 65세 이상인 자에 한하여 월 39만원의 참전명예수당을 지급한다. 이는 최근 1만원 인상된 금액이다. 2022년까지는 월 38만원을 받았다.

이외 혜택도 있다. △보훈‧위탁병원 진료 시 진료비 감면 △신규건설‧공급주택 우선 공급 △국‧공립공원 입장료 할인 △국립호국원 안장 △국내항공 요금 30% 할인 등이 참전용사 복지 정책으로 시행 중이다. 80세 이상 유공자 중 생계곤란자에겐 별도의 생계지원금이 나온다. 추가 지원 액수는 10만원이다. 또 생계곤란 유공자에겐 장례서비스도 지원된다.

과연 ‘전쟁의 영웅’은 충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일까. 참전유공자들은 이 같은 정부의 복지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보훈부가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저소득 보훈 대상자 중 1인 가구는 2만2875명(2022년 10월 기준)이다. 즉, 참전용사 중 상당수가 신체적‧심리적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이들에게 지원되는 월 39만원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참전유공자 측의 절박한 호소다.

실제 징집돼 나라를 지키고 있는 현역병과 비교하더라도, 참전유공자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은 절대적으로 적다. 올해 기준 현역 이등병의 월급은 60만원이다. 병장은 월 100만원을 받는다. 현역병 봉급은 병장 기준 2024년 125만원(25% 인상), 2025년 150만원(20% 인상)으로 확대 예정이다. 이 기간 참전유공자의 수당이 얼마큼 오를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손희원 회장(왼쪽 두번째부터), 김창석. 이하영 이사에게 '영웅의 제복'을 직접 입혀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손희원 회장(왼쪽 두번째부터), 김창석. 이하영 이사에게 '영웅의 제복'을 직접 입혀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공언한 尹정부

이에 6.25 참전유공자회도 ‘복지 절벽’을 호소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시간, 피를 흘린 값을 정당하게 보상받고 싶다는 것이다. 이에 이들은 △명예수당 월110만원으로 인상 △참전유공자 의료비 지원정책 확대 △참전유공자 혜택 유가족 승계 △단체회원 범위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관련해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참전명예수당이 낮아 인상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수당 인상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또 참전유공자 의료비 지원정책과 관련해선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로 위탁병원 확대가 선정된 만큼, 고령 보훈 대상자의 의료이용 접근성 강화를 위해 2027년까지 시군구별 5개까지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고 했다. 다만 “(참전명예수당 승계 요청 등은) 전체 보훈대상자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장기적으로 신중히 검토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국가보훈부는 최근 이 같은 문구를 정책 기조로 설정했다. 국회도 발 벗고 나섰다. 21대 국회에 참전유공자의 명예수당과 복지 혜택을 늘리는 관련 법안이 12개 발의됐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과연 대한민국에 ‘제2의 필모씨’의 비극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을 수 있을까.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은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하신 참전용사분들의 처우가 합당하게 개선되지 못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지난 현충일 추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께서 ‘국가의 품격은 국가가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렸다’고 말씀하셨다. 더 늦기 전에 이분들의 소중한 헌신과 희생을 국가가 보답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의원은 “참전용사분들에 대한 기억과 예우는 우리의 선택이 아닌 의무이며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실천”이라며 “대한민국을 지켜주신 참전유공자분들의 용기와 자부심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적 관심과 보훈 수혜 확대 등 처우 개선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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