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이 정말 ‘정치 혁신’일까 [최병천의 인사이트]
  •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1 17:05
  • 호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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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의 혁신 1호는 ‘자해적 정치 혁신’
정치 위축과 검찰 권력 강화만 돕는 反정치 경계해야

2024년 4월에 총선이 있다. 선거를 앞두고 정당이 혁신을 표방하는 경우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혁신위원회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혁신위를 만드는 건 당대표의 권력이 아직 건재한 경우다. 혁신위는 대표 및 최고위원회로부터 권한 일부를 위임받아 활동한다. 조직도로 표현하면, 혁신위는 최고위원회 ‘산하 조직’이다. 반면 비대위는 대표 및 최고위를 ‘대체하는’ 조직이다. 지도부 자체가 바뀌는 경우다. 

한국 정치사에서 비대위는 성공 사례가 있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와 2016년 김종인 비대위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의 정강·정책도 바꿔버렸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내용을 대폭 포함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의 표현을 빌리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꾼” 경우였다.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등장한 민주당 김종인 비대위도 성공적이었다. 김종인 비대위는 당시 문재인 대표가 불러들인 경우다. 엄밀히 말하면, 문재인-김종인 투톱 체제였다. 김종인 비대위는 이해찬, 정청래, 김현 의원 등을 컷오프했다. 그리고 양향자, 조응천, 김병기, 김병관 등을 영입하고 공천했다. 컷오프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주도했고, 영입 공천은 문재인 전 대표가 주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김은경 혁신위위원장이 6월20일 국회에서 열린 혁신위 제1차 회의에서 혁신위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비대위에 비해 혁신위는 성공한 사례 없어

양향자 공천은 “와, 민주당이 삼성전자 임원을 공천하다니”라는 참신함을, 조응천 공천은 “와,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관도 영입하는 포용력을 보여주다니”라는 대범함을 보여줬다. 국정원 출신인 김병기 공천은 안보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열린 자세를, 재산이 수천억원이 넘는 게임업체 사장 김병관의 공천은 부자에 대한 민주당의 개방성을 보여준 경우였다. 이들 4명은 ‘민주당스럽지 않은’ 공천의 상징이었다.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그것이 억울하든, 실체적이든)를 타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와 2016년 김종인 비대위는 ‘총선 승리’로 귀결됐다. 

반면 혁신위는 ‘혁신을 회피할 때’ 만들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정치에서 혁신의 핵심은 ‘리더십 교체’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혁신위는 ‘현재 권력 존중’을 전제로 활동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혁신위의 성공 사례가 거의 없는 이유다. 

6월20일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김은경 혁신위는 ‘혁신 1호’로 민주당 의원 전부에게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요구했다. 최근 민주당은 세 번에 걸쳐 본회의에 상정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바로 직전에는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논란에 휩싸였다. 민주당은 지난 몇 달 동안 도덕성 공격을 받아야 했다. 김은경 혁신위가 ‘도덕성 강화’를 내걸고,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요구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은 ‘정치의 활동 폭’을 스스로 좁히는 잘못된 접근이다. 불체포특권에 대한 대응은 논리적으로 4가지가 있다. ①의원 자유투표 ②무조건적 불체포특권 포기 ③불체포특권 관련 법률 개정 ④사안별 당론 결정이다.

①의원 자유투표는 그간 했던 방식이다. 혁신위는 이를 잘못됐다고 보는 경우다. ②무조건적 불체포특권 포기가 혁신위의 요구사항이다. 그러나 이는 ‘검찰 권력’을 강화시킬 뿐이다. 무조건적 불체포특권 포기를 요구할 것이라면 차라리 ③불체포특권 관련 법률 개정이 더욱 정공법이다. 그러나 역시 검찰 권력만 강화시켜줄 뿐이다. ②와 ③은 모두 스스로 정치를 위축시키고, 검찰 권력을 강화시켜주는 ‘자해적 정치 혁신’에 해당한다.

의원 자유투표가 문제였다면, 바람직한 경우는 ④사안별 당론 결정만 남게 된다. 이러한 판단은 그간 당 지도부가 정치적으로 잘못 대응했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혁신위의 혁신안이 없어 문제였던 게 아니다. 당 지도부의 ‘정치적 책임’을 짚으면 될 일이다. 그런 판단을 하라고 ‘당 지도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혁신위가 체포동의안 부결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요구할 게 아니다. 당 지도부의 정치적 책임 방기를 지적하면 될 일이다.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은 검찰 권력만 강화시켜줄 뿐이다. 

ⓒ연합뉴스
민주당 혁신위원회 윤형중·김남희 대변인이 6월23일 국회 소통관에서 혁신위 2차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은 박성준 의원 ⓒ연합뉴스

‘윤리적 책임’이 아닌 ‘정치적 책임’을 져야

2015년 문재인 대표 시절, 김상곤 혁신위는 민주당의 귀책사유로 재보선을 하는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 내용을 혁신안으로 통과시켰다. 이 경우도 도덕성을 앞세우며 스스로 정치를 위축시키는 ‘자해적 정치 혁신’의 대표 사례다. 

정당이 국민에게 책임지는 방법은 ‘선거’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홍준표 후보가 출마했다. 홍준표 후보는 선거 초기에는 5%도 안 되는 지지율을 받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24.0%로 2위를 했다. 21.4%로 3위를 했던 안철수 후보를 제쳤다. 국민의힘은 2017년 대선을 통해 국민의 심판도 받고, 동시에 ‘정치적 재기’의 발판도 마련했다. 선거 출마를 통해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이게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정공법이다. 

정당은 자신의 잘못으로 재보선을 하게 되더라도, 후보를 내지 않는 방법으로 ‘윤리적 책임’을 지려고 해선 안 된다. 선거에 출마해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김상곤 혁신위는 귀책사유로 인한 불출마를 민주당 당헌에 못 박았다. 애초에 비현실적인 결정이었다. 이후 민주당은 이를 중요한 선거에서는 위반하고, 중요하지 않은 선거에서만 지키고 있다. 민주당은 2021년 4·7 재보선에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를 출마시켰다. 이후 송영길 의원이 사퇴한 인천 계양을의 경우도 이재명 후보가 출마했다.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라면 당헌 자체를 바꿨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 대표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정치 문외한’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혁신위를 꾸렸다. 스포츠로 비유하면, 야구계 혁신을 위해 농구선수, 축구선수, 배구선수를 중심으로 혁신위를 꾸린 경우다. 이 경우,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스스로 정치를 위축시키는 ‘자해적 정치 혁신’이다. 자해적 정치 혁신이 많아질수록 ‘법’의 이름으로, 검찰 권력만 강화시켜줄 뿐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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