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내렸으면” 秋 발언 9일 만에 떨어진 라면…다음은 제과·제빵?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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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분업계 가격 조정 검토 하루 만에 농심·삼양식품 “내달부터 인하”
오뚜기·팔도도 합류할 듯…인하율은 인상률 절반 수준?
밀가루 원재료 빵·과자도 내릴까…원유 가격 협상 촉각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라면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라면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정부의 가격 인하 요청에 제분·라면업계가 결국 손을 들었다. 제분업계가 7월 밀가루 출하가격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농심과 삼양식품이 가격을 내리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라면업계 1위 농심이 가격 인하를 결정하면서 다른 업체들도 이에 동참하는 건 수순이라는 전망이다. 아울러 향후 밀가루 가격 인하가 확대될 경우 밀가루를 원자재로 하는 빵, 과자 등 제과·제빵업계를 향한 인하 압박도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다.

 

秋 발언에 ‘공정위’ 등장하자 물러선 라면업계

2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오는 7월1일부로 신라면과 새우깡 가격을 각각 4.5%, 6.9% 인하하기로 했다. 소매점 기준으로 1000원에 판매되는 신라면은 50원, 1500원인 새우깡은 100원 떨어질 전망이다.

농심의 가격 인하 결정은 국내 제분회사가 농심에 공급하는 밀가루(소맥분) 가격을 다음달부터 5.0% 인하하기로 한데 따른 후속조치다. 정부는 지난 26일 제분업계와 간담회를 갖고 “제분업계가 밀 선물가격 하락과 물가안정을 위해 7월에 밀가루 출하가격 인하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고 알린 바 있다.

앞서 지난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라면 가격과 관련해 “지난해 9∼10월 (기업들이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면서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는 라면 업계의 담합 가능성에 대해 공정위가 들여다봐야 한다며 추 부총리 발언을 지원사격하기도 했다.

당초 라면업계는 제분업계가 밀가루 가격을 조정하지 않아 인하가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제분업계가 공급가를 낮출 의향을 밝히자 결국 가격 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26일 CJ제일제당은 농심에 공급하는 밀가루값을 내달부터 5~10% 인하하기로 했다.

‘업계 1위’ 농심이 가격 인하 선봉장에 나서면서 다른 업체들도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농심에 이어 삼양식품은 오는 1일부터 순차적으로 삼양라면, 짜짜로니, 맛있는라면, 열무비빔면 등 12개 대표 제품의 가격을 평균 4.7%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단 불닭볶음면은 인하 대상에서 제외됐다.

오뚜기는 7월 중으로 진라면 등 주요 제품의 가격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팔도비빔면 제조사인 팔도도 가격 인하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소맥분 가격이 평년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전분기 대비 약 12% 하락한 상황”이라며 “라면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는 이유로 꼽은 것이 주 원재료 상승이었고, 전반적으로 라면 제조업체의 매출 원가율이 하락 혹은 영업이익에 부담이 가중되는 시기가 지난 만큼, 올라간 가격을 내려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제과제빵점 ⓒ연합뉴스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제과제빵점 ⓒ연합뉴스

두 자릿수 인상했던 업계…내릴 땐 반 토막?

다만 인하 폭은 기대에는 못 미칠 전망이다. 농심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예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농심은 라면과 스낵 주요 제품의 출고가격을 각각 평균 11.3%, 5.7% 인상했다. 앞서 농심은 2021년 8월 라면(6.8%), 2022년 3월 스낵(6%) 가격을 올린 바 있다. 그에 비하면 이번 인하 폭은 아쉬운 수준이다.

다른 업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팔도와 오뚜기, 삼양식품도 지난해 각각 9.8%, 11.0%, 9.7%씩 인상했다. 다만 현재 결정됐거나 논의되고 있는 가격 인하 폭은 4~5% 수준이다.

관심은 이제 향후 제분업계가 라면 외에 밀가루를 원재료로 하는 다른 업계에도 공급가를 낮출 경우다. 대표적인 곳이 빵, 과자 등 제과제빵 업계다. 공급가가 떨어졌는데 가격을 고수한다면 정부의 압박은 물론 소비자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식품업계의 연쇄 가격인하는 지난 2010년 펼쳐진 바 있다. 당시에도 식품 가격이 급등하자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가격 담합 조사를 요구했다. 이튿날 공정위는 바로 조사에 착수할 뜻을 밝혔고, 당일 SPC그룹은 빵 가격을 내렸다. 이후 라면·제과 업체들도 일제히 가격을 내렸다.

변수는 원유 가격의 향방이다. 현재 낙농진흥회는 지난 9일부터 이사 1명, 생산자 3명, 우유업계 3명 등 7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열어 원유 기본 가격 조정을 협상하고 있다. ℓ당 69∼104원 범위에서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밀가루와 더불어 우유가 빵, 과자, 아이스크림 등의 원재료라는 것이다. 밀가루 가격이 내려도 원유 가격 인상에 따라 그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제과·제빵 제품의 우유 비율이 1~5% 수준이라 원유 가격 인상에 따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를 대상으로 현재 유제품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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