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힘듦’은 나의 정체성…정치적 계산 않고 계속 ‘소수의 목소리’ 낼 것”
  • 박나영·이원석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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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정부질문서 ‘코이’ 스토리로 갈채 받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천편일률적인 국회…구성원 더 다양해지고 선거제 개편에도 반영돼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26일 국회 의원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기자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6월 26일 국회 의원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기자

3년 전까지 정치를 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 않던 피아니스트가 6월14일 국회의원으로 대정부질문에 나서 여야 모두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국회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기에 더 화제가 된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다. 그는 생육 환경에 따라 최종적으로 성장하는 크기가 달라지는 물고기 ‘코이’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기회와 가능성, 성장을 가로막는 우리 사회 속 어항과 수족관을 깨달라고 호소했다. 

시사저널은 6월26일 김 의원을 만나 그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장애를 ‘앓고 있다’ 거나 ‘극복했다’는 표현을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장애는 앓거나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이자 다른 삶의 형태라는 설명이다. 의정활동 시 겪는 물리적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 그는 ‘힘듦’ ‘어려움’ ‘불편함’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여느 피아니스트는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연주를 해왔듯이 김 의원은 국회에서 3년째 여성, 장애인, 예술가로서 소수를 대표해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6월14일 대정부질문으로 크게 주목받았는데.

“많은 관심에 감사하면서도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묻혔던 작은 목소리들을 이제는 들어주실까 하는 기쁨과 동시에 한편으론 어리둥절했다. 사실 계속 똑같이 해오던 일이었다. 이번 대정부질문에서도 장애인 예산에 대해 질의를 하면서 ‘소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모두를 위한 예산, 모두를 위한 정책’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지금까지 3년 내내 주야장천 해왔던 말이었다. 언론에 대해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라고 하는데, 그 민의가 상당히 편중돼 있다. 전달하는 사람은 있지만, 대중적 관심이 없는 사안에 대해선 전달이 안 된다. 그 책임은 언론에 있다고 본다.”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느끼는 게 많은 것 같다. 

“3년간 의원 생활을 하면서 어떤 게 기사가 되는지, 또 어떤 이슈를 사람들이 클릭하는지 그 패턴을 알겠더라. 바람이 있다면 언론에서 핫한 정치적 논란이라든지 이슈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의원 299명 중에 몇 분이라도 의정활동을 하시다 한 번쯤 돌아봐주시지 않을까, 부처에서도 ‘이런 부분은 간과했구나’ 하지 않을까 싶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대정부 질문을 하고 있다. 김 의원 옆은 안내견 조이. Ⓒ연합뉴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대정부 질문을 하고 있다. 김 의원 옆은 안내견 조이. Ⓒ연합뉴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가 대정부질문 다음날 공개석상에서 화답했는데, 다른 동료 의원들이나 국민들의 피드백도 있었나. 

“굉장히 놀랐다. 다른 당이지만 상임위를 3년째 같이 해 온 이병훈 민주당 의원님이 칭찬해주셨다. 저희 당 정진석 전 국회부의장님도 SNS에 글을 올려주셨고, 의원총회에서 만나 잘했다고 하시더라. 저의 옛 스승에게서도 자랑스럽다는 연락이 왔고, 저나 저희 직원들을 응원하는 국민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니스트로 살아오다가 정치에 뛰어들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피아니스트였지만, 장애인 관련 정책이라든가 인식 제고에 도움이 되는 활동, 인문학 강연 등 대중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해왔다. 음악 활동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많지만, 제가 음악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건 그분들이 전달하는 것과는 다른 메시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때마침 인재영입 제안이 있었다. 저 같은 사람에게 국회의원은 상당히 벽이 느껴지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기회를 주신다고 하니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을 토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굉장히 생각을 많이 했고, 내가 직접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보자, 좀 더 가까이 가보자, 이런 생각을 갖고 뛰어들었다.” 

밖에서 봤던 정치와 현실은 어떤가. 괴리가 있나. 

“밖에선 부정적 역할만 크게 보였던 것 같다. 근데 와서 보니 본인의 전문분야와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언론에서 그런 부분은 안 다루고, 싸우고 막말하는 것만 남겨 안타까웠다. 그래서 장애 인식 개선을 하듯이 국회의원에 대한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대정부질문이 그런 계기가 됐다면 다행이고 감사하다. 인식은 앞으로 더 개선돼야 하고, 사실상 인식만 개선되는 게 아니라 여기서 일하는 분들도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태도로 의정활동에 임하시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나 기대도 갖게 된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의 안내견 조이가 2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장에 자리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기자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의 안내견 조이가 6월2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장에 자리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기자

의정활동을 하는데 물리적인 불편함은 없나.

“장애인이라고 하면 다 똑같은 줄 안다. 장애유형이 굉장히 많고 각각 다른 불편이 있다. 저는 걷는 덴 문제가 없지만 지형지물과 랜드마크가 제 관점에 맞게 익숙해질 때까지 외우고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리적인 불편보다는 국회 업무에 필요한 정보접근성이 떨어져 불편하다. 여러분은 봐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제대로 다 안 보지 않나. 저는 없어서 못 본다. 전자서명, 공동인증서 같은 시스템도 접근성이 확보가 안돼 업무현장에서 뒤처지게 된다. 또 점자자료나 오디오자료 같은 대체자료가 현재 어문에만 집중돼 있다. 챗GPT, 가상현실 시대가 되면서 영상저작물이 훨씬 많아 청각장애인들 입장에서는 정보접근성이 떨어진다. 편리한 기술이 나와도 소수는 배제된다.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니즈까지 고려했으면 한다. 집을 다 지어놓고 고치려고 하니 예산문제가 대두된다.”
 
미국 유학생활도 했는데, 한국과 비교하자면 일상생활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

“인식의 차이가 크다. 미국에서 안내견과 다니면 안내견과 다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자기와 다른 모습에 신경 쓰는 게 느껴지고 저에 대해 언급하는 말들이 들린다. 미국 버스기사는 장애인이 버스에 타서 휠체어를 고정하는 것까지 도와주는데, 승객들이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국이라면 그 모든 과정을 뚫어지게 쳐다볼 것이고 빨리 출발 안 하냐고 난리일 것이다.”

여성, 장애인, 예술 모두 소수 분야다. 소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은 없나.

“힘듦, 어려움은 제 일상이고 정체성이다. 언론에 장애를 ‘앓고 있다’ ‘극복했다’라는 말을 쓰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한다. 저는 장애를 ‘앓고’ 있지도 않고 극복이 안 되는 걸 극복했다고 할 수도 없다. 국회의원이니 권력자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위치에서 목소리를 낸다한들 소수자 의견이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고 널리 공감을 얻지 못해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 국회에 계신 분들 대부분 50대 후반~60대 초반 남성이고 법조계나 언론계 등에서 오신 분이 많다. 천편일률적이다. 비례대표로서의 상징성을 위해 소수를 대표하는 이들을 영입하지만 기존의 생태계가 이미 구축돼 있어 뛰어넘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국회가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고, 이런 부분이 선거구 개편에서도 참작이 돼야 한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26일 국회 의원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기자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6월26일 국회 의원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기자

국민의힘 당론과 다른 간호법 찬성 의견을 내고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현장에 가서 무릎 꿇고 양측을 설득하기도 했다. 소신을 지키는 데 부담은 없나.

“부담되면 못 간다. 정치인으로서 정무적 판단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계산을 하지 않는다. 계산하면 행동할 수 없을 것 같다. 전장연에 사과하는 마음, 불편한 시민에게 사과하는 마음, 그 모든 마음을 아우르는 게 공동체 아닌가. 어렵고 불편한 분들이 잘 살면 공동체 내 모두가 잘 살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계산 없이 나섰는데, 의도와 달리 언론이 당시 당대표와의 대립 구도로 왜곡해서 피해를 봤다. 저보다 경험도 많고 훨씬 권력이 있는 분이 그 일을 해주길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할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러 간 건데, 오해가 빚어졌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자리가 있으면 욕을 먹더라도 갈 생각이다.”

향후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저는 현재를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정치를 할 것이라고 생각 안 해봤지만 불러줘서 와서 열심히 했듯이 저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서 급여와 관계없이 열심히 일 할 것이다. 물론 음악활동도 계속할 계획이다. 한국이 아닌 그 어디라도 가서 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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