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정답률로만 볼 수 없어…수능 준비 학생들에게 송구”
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불과 5개월 앞두고 꺼내든 '킬러 문항'(초고난도) 배제 논란이 지시 시점을 둘러싼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윤 대통령의 즉흥 발언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 모든 혼란이 발생했다는 야당의 총공세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구두지시'를 거듭 강조하며 "명예를 걸겠다"고 맞섰다.
교육부가 '대통령 지시사항 이행 현황'을 문서화 한 기록에는 '수능'이나 '대입' 관련 기록이 전무해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주호 "尹, 3월 구두 지시했지만 실천 못해"…관련 문건은 '0'
27일 국회 교육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야당은 윤 대통령이 '공정 수능' 관련 지시를 내린 시점을 두고 집중 공세를 펼쳤다.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의 지시 시점을 명확히 밝히라는 의원들의 질의에 "3월8일과 22일"이라고 답했다. 이미 지난 3월 대통령 지시가 나왔지만, 6월 모의평가에서 '킬러 문항'이 출제되는 등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윤 대통령이 최근 이를 다시 꺼내들었고 경질성 인사로도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3월뿐 아니라 대통령께서 상당히 여러 차례 수능 공정성을 강조했다"며 "이 문제의 핵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제대로 실천을 못 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국정과제, 2022~2023년 업무보고, '3대 교육개혁방안' 발표에 '킬러 문항' 관련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유 의원은 "이 소동이 시작된 것이 지난 3월 대통령 지시라고 한다. 그래서 교육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며 "그런데 교육부에서 온 답변은 등록된 자료가 없다, 대통령이 3월에 뭔가 지시했다는 근거가 아무 데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서동용 민주당 의원도 이 부분을 집중 추궁했다. 공정 수능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대통령이 직접 여러 차례 지시했다면, 부처 차원에서 '대통령 지시사항 이행 현황' 등 기록물로 남겨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의) 구두지시였다"며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이 장관은 대통령의 반복적인 지시가 모두 '구두'로 이뤄졌고, 자신 역시 이를 교육부 공무원들에 '구두'로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서 의원은 "(문서로) 등록도 안 된 지시사항을 위반했다고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을 자르느냐"며 "윤 대통령의 갑툭튀 발언으로 대혼란을 초래한 뒤 사과는커녕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맹폭했다.
그러자 이 장관은 "명예를 걸고 말씀드린다"며 "제가 분명히 (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고 국장에게 (구두로) 전달했다"고 되받아쳤다.
야당은 지난 15일 공개된 윤 대통령의 수능 난이도 관련 언급을 '즉흥 발언'으로 보고 있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 경질,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 이규민 평가원장 사임 등 여러 후폭풍과 '킬러 문항' 배제 방침으로 인한 교육 현장 대혼돈 역시 대통령의 말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초래됐다는 것이다.
서 의원에 따르면, 윤 대통령 취임 후 최근까지 기록된 교육부의 '대통령 지시사항 이행 현황' 문서에는 '수능'과 관련한 내용이 전혀 담기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교육'이나 '대입' 관련 단어가 포함된 내용 역시 없었다.
유 의원은 "(대통령의) 3월 지시가 분명하다면, (이행하지 못한) 이 장관을 잘라야지 왜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잘랐느냐"고 반문했고, 이 부총리는 "국장에게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강력히 얘기했으나 6월 모의평가 때 반영되지 않아 경질한 것"이라고 답했다.
김남국 무소속 의원은 "(이 장관이) 잘못된 대통령 발언을 두둔하면서 근본적인 원인과도 동떨어진 '킬러 문항 제외', '(사교육) 이권 카르텔' 이런 것들을 지시하고 또 거기에 맞춰서 후속대책을 내다보니 오히려 혼란이 가중됐다"고 질타했다.
'킬러 문항' 분류를 둘러싼 공방도 오갔다. 윤 대통령 발언 이후 교육부가 수능에서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을 밝히자 구체적인 기준을 둘러싼 현장 혼란이 이어졌다. 이에 교육부는 전날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지난 3년 간 출제된 수능과 6월 모의평가에서 총 26개의 킬러 문항을 추려내 공개했다.
6월 모의평가에서는 국어 2개, 수학 3개, 영어 2개 등 7개 문항이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기 힘든 킬러 문항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이날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 국어 영역은 예상과 달리 평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킬러 문항은) 정답률로만 볼 수 없다"며 "(수능) 150일을 남겨두고 올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송구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래서 핀셋으로 (킬러 문항을) 제거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선정한 킬러 문항 가운데 EBS 교재 연계 문항도 포함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EBS 연계가 돼 있지만, 답안을 요구하는 과정이 배배 꼬아져 있다"며 공교육 밖 문항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대통령에 배웠다' 발언, 나이스 먹통에 사과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윤 대통령을 입시 전문가로 치켜세운 이 장관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앞서 이 장관이 '윤 대통령이 입시 수사를 여러 번 해서 저도 많이 배웠다'고 한 것과 관련해 "정부 여당에 간신들이 판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마치 교육부 장관보다 더 대단한 교육부 전문가처럼 포장을 하고, 거기로부터 배운다 그러니 우리 수험생과 학부모님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이 장관을 몰아붙였다.
이에 이 장관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있다는 취지였고 그런 부분에서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드리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최근 개통한 '4세대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먹통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질타를 쏟아냈다. 서동용 의원은 "교사가 시험문제를 유출하면 최고 파면까지 징계를 하는데, 이 엄청난 사태에 장관은 어떻게 책임지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 장관은 "현장에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며 "빠르게 문제를 먼저 해결한 뒤 책임 문제를 말씀드리겠다"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