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한 퇴장을 위해 돌아온 전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2 13:05
  • 호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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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 포드가 출연하는 시리즈의 마지막 편

그간 흑마술 고문에 시달리고, 9번의 총상을 입었으며, 칼리의 피까지 마셨던 역사를 몸에 지닌 노쇠한 탐험가가 시칠리아의 동굴 속 가파른 절벽을 오르며 절규한다. “여기 매달려서 내가 지금 뭘 하는지 생각 중이야!” 그리고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다. 중절모와 채찍 그리고 흥미진진한 모험. 여기에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테마곡까지 더해진 풍경이 상징하는 것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오직 하나뿐이다. 세계를 누비는 고생 끝에 유물을 손에 쥐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 그가 운명을 가르는 다섯 번째 모험길에 올랐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시리즈의 4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 이후 15년 만의 속편이며, 1편인 《레이더스》(1982) 이후로는 무려 42년의 명맥을 잇는 신작이다. 해리슨 포드가 출연하는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알려졌다. 어느덧 80대 나이가 됐지만 그의 활약은 여전히 이어진다. 이는 유적을 발굴하다시피 과거의 명작들을 끊임없이 재소환하는 할리우드의 부름에 응답한 결과이기도 하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시간을 다루는 모험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는 조지 루카스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때다. 물론 그로부터 이어진 두 갈래의 사가(SAGA)가 2020년대까지 이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신화의 상상력을 바탕에 둔 우주 대서사시 《스타워즈》 시리즈와, 유물을 찾아 세계를 누비는 고고학자의 모험담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그렇게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나 완전히 다른 외양을 지닌 이란성 쌍둥이처럼 세상 빛을 보게 됐다. 그리고 나란히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조지 루카스가 각본을 쓰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레이더스》부터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단숨에 자리매김했다. 유물의 가치와 역사의 재해석이라는 특유의 배경은 슈퍼히어로의 시대에도 독자적 매력을 지닌다. 흙먼지 아래나 동굴 속 깊숙한 곳, 혹은 천 길 물속에 가라앉은 유물을 건져 올렸던 인디아나 존스 캐릭터의 활약처럼 그를 끄집어낸 재소환의 방식에 일단 환호하게 되는 이유다.

스필버그가 총괄 제작 역할로 한발 물러선 사이, 연출의 책무를 받아든 이는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다. 《로건》(2017)으로 울버린 시리즈의 고전주의적 마침표를 찍으며 마무리 구원투수 같은 활약을 보여준 그가 해리슨 포드가 연기하는 마지막 시리즈의 연출가로 낙점된 것은 납득이 가는 선택으로 보인다. 숀 코너리를 캐스팅한 3편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아버지, 4편에서 아들 머트(샤이아 라보프)까지 만들어내며 가족 서사로 넓어졌던 시리즈의 방향성은 다시 존스 교수 개인의 서사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맨골드 감독이 꺼내든 키워드는 ‘시간’이다.

오프닝은 언제나 그랬듯 인디아나 존스의 활약이다. 1944년, 예수를 찌른 성물이라 전해지는 ‘롱기누스의 창’을 찾기 위해 나치의 전리품 수송 열차에 오른 인디아나 존스는 뜻밖에도 신성한 다이얼을 손에 넣는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것으로 일명 ‘안티키테라’의 반쪽이다. 이윽고 화면에 다시 등장한 1969년의 인디아나 존스, 우리의 인디는 방금 전까지 본 젊은 시절의 활약이 무색하리만큼 맥이 빠진 모습이다. 교수직에서 은퇴를 맞고 아내와의 이혼을 준비 중인 쓸쓸한 노년. 시간의 무상함 앞에서 그는 늙고 지쳤다.

다시 모험이 시작되는 것은 인디 앞에 과거 동료의 딸이자 대녀인 헬레나(피비 월러 브리지)와 나치 수송 열차에서 만났던 숙적 위르겐 폴러(매즈 미켈슨)가 등장하면서다. 실제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 중인 안티키테라는 영화에서 일종의 타임머신 기능으로 풀이된다. 현존하는 유물로 보존하고 싶은 인디의 바람과는 달리, 위르겐 폴러는 안티키테라의 나머지 반쪽을 찾아 시간을 되돌린 후 자신의 뜻대로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고 싶어 한다. 자신만의 목적이 있었던 헬레나 역시 결국 인디와 손잡고 악당의 계획을 막는 여정에 동참한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파라마운트 픽처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노익장 과시하는 과거의 영웅

이번 영화는 마치 쉬지 않고 달려가는 기관차 같다. 나치 수송 열차 위의 결투, 삼륜차로 골목을 누비는 모로코의 카체이싱, 깊은 바닷속과 시칠리아의 동굴까지 부지런히 누비는 액션 시퀀스는 새로운 감각보다 고전적인 방식의 활력을 추구한다. 지구로 귀환한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을 환영하는 축제로 분주한 뉴욕 맨해튼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급작스레 시작된 추격을 피하기 위해 말에 올라탄 채 지하철 선로 위를 달린다. 서부극 시대의 어드벤처 DNA를 이식한 이 장면은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거대한 모험담의 강렬한 상징이 된다.

애초 마지막 편으로 예정됐지만 혹평 속에 조용히 막을 내렸던 4편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영화의 의지는 가장 인디아나 존스다운 퇴장 방식을 고민한다. 현재보다는 언제나 과거를 향해 자신만의 나침반을 맞추며 살아온 고고학자에게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맞춤한 키워드로 읽힌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안티키테라를 꺼내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는 “시간이 가진 의미, 나이가 들면서 수용하는 자세, 시간의 흐름이 인디아나 존스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활극 속 인디아나 존스는 여전한 활약을 보인다. 이제는 젊음의 패기보다 노익장을 발휘하는 모험이지만, 힘 있게 채찍을 휘두르는 분투는 다시 봐도 분명 반갑다. 그 모험의 역사 안에 스스로를 남겨두려는 인디아나 존스의 마지막 선택에는 뭉클한 지점마저 있다. 동시에 익숙함은 아쉬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고대 유물을 찾아나서는 모험담은 기존 팬층에게는 클래식이지만, 새로운 시대의 관객을 포섭할 비기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 영화는 40년을 넘는 기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시리즈 영웅의 퇴장에 바치는 예의 있는 헌사로 보는 편이 여러모로 더 알맞아 보인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파라마운트 픽처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OTT 시리즈로 명맥 유지할 가능성도

그렇다면 이 시점에 인디아나 존스는 왜 부활해야 했을까. 해리슨 포드가 인상적인 퇴장을 원했다는 중요한 사실도 존재하지만, 본질은 더욱 단순하다.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를 발굴하기보다 속편과 리부트, 프리퀄, 실사 리메이크 등으로 시리즈를 이어가는 할리우드 흥행 전략의 공식에 따른 수순이다. 재정난에 빠졌던 마블 스튜디오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작으로 《아이언맨》(2008)을 선보인 이후, 끝이 보이지 않는 슈퍼히어로들의 전쟁으로 수십 편을 찍어내는 것으로 전 세계적 흥행을 주도하면서부터 상황은 더욱 가속화됐다. 원작이 있는 경우에는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자가복제가 된다.

이는 OTT 시리즈까지 제작 범위가 넓어지며 막을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됐다. 가까운 예로 《스타워즈》 세계관은 극장판 영화뿐 아니라 디즈니+에서 선보이는 《만달로리안》 등의 시리즈로 아직도 명맥을 잇는 중이다. 인디아나 존스 박사의 은퇴 역시 장담할 수 없다. 해리슨 포드가 “내가 중절모와 채찍을 집어드는 일은 다신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제임스 맨골드 감독 역시 “아무도 인디를 교체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이들의 장담과는 별개로 인디의 대녀인 헬레나 쇼의 존재가 등장한 지금 시리즈가 유지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실제로 디즈니와 루카스 필름은 인디아나 존스의 드라마 시리즈 제작을 위해 아이템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전설은 사라지는 일조차 쉽지 않다.

인디아나 존스, 배우 해리슨 포드의 또 다른 이름

《스타워즈》 시리즈의 한 솔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타이틀롤은 해리슨 포드를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렸다. 《패트리어트 게임》(1992), 《블레이드 러너》(1993), 《에어 포스 원》(1997) 등의 명작에 출연했지만 인디아나 존스는 여전히 그를 대표하는 이름 중 하나다. 그가 연기한 인디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모험을 제외한 일상에서 맺는 관계들은 엉망이고, 매번 상처를 입고, 분노를 감추지 않은 채 실수하고, 누군가에게 조롱당하기도 한다.

거대한 모험의 배경 안에서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낼 줄 아는 캐릭터는 관객의 공감을 부른다. 이번 5편에서는 그의 젊은 시절 모습도 등장한다. 30여 분간의 꽤 긴 분량으로, 기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영상을 활용한 시각 효과 기술을 통해 탄생했다. 영화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고, 해리슨 포드는 명예 황금종려상을 깜짝 수상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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