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내 연기 시험하는 의미로 무대에 올랐다”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3 12:05
  • 호수 17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세 배우 손석구가 9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이유

‘대세 배우’ 손석구가 연극 무대에서도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추앙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LG아트센터와 ㈜엠피앤컴퍼니가 공동 제작한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개막부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그 열기에 힘입어 일주일 연장 공연을 결정했다.

《나무 위의 군대》는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로 영화와 드라마 등 매 작품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배우 손석구와 영화 《박열》로 그해 신인상을 휩쓸고,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등 다수의 작품에서 감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 최희서의 연극 무대 도전으로 캐스팅 발표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또한 무대와 드라마를 오가며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이는 이도엽과 호소력 짙은 연기를 보여주는 김용준의 출연 소식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여주었다.

ⓒ엠피앤컴퍼니 제공

《나무 위의 군대》에서 신병 역할로 연기 변신

첫 공연은 6월20일이었다. 당시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손석구를 비롯한 배우들은 커튼콜 인사를 하며 약 5개월간의 준비 끝에 마주한 관객들 앞에서 감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나무 위의 군대》는 태평양전쟁 막바지, 오키나와가 배경이다. 일본의 패전도 모른 채 1947년 3월까지 약 2년 동안 가쥬마루 나무 위에 숨어 살아남은 두 병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나무 위의 ‘상관’과 ‘신병’ 두 인물에 투영한 작품이다. 손석구는 극 중 ‘신병’ 역을 맡았다. 태어나고 자란 소중한 삶의 터전인 섬을 지키기 위해 입대해 처음 전쟁을 겪는 캐릭터로 그동안의 연기와는 사뭇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전쟁 경험이 풍부하고, 대의명분이 중요한 ‘상관’ 역에 이도엽과 김용준이 더블캐스트로 열연한다. 또한 ‘상관’과 ‘신병’의 곁에서 아무도 들을 수 없던 이야기를 해주는 신비로운 존재 ‘여자’ 역은 최희서가 맡았다.

연출을 맡은 민새롬 감독은 손석구 섭외 이유에 대해 “결국 상관을 자기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한 사람을 통해 우주를 보는 역할이다. 그 통증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신병’ 역을 맡은 손석구는 “사랑하는 연기를 관객분들과 원없이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함께 경험하며 보석을 찾아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기쁨이었다”고 첫 공연 소감과 함께 이번 공연에 신중하고 뜻깊은 마음으로 참여했음을 피력했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8월 중순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함께 출연한 (이)도엽 형과 《지정생존자》라는 드라마를 통해 인연이 닿았고, 이후 도엽 형이 하는 연극을 자연스럽게 보러 가면서 다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은 다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면 나도 하고 싶고 그런다(웃음). 사실 그 전에도 시도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메이드가 되지 않았다. 도엽 형이 관계자분들을 소개해 줬고, 이후에 대본을 많이 보게 됐다. 애초에는 도엽 형과 2인극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작품을 접하고 이 작품이야말로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땅에 붙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어서 선택하게 됐다.”

 

손석구는 함께 이 작품에 출연 중인 배우 최희서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과거 연극 무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동료다.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이기에 전우애가 끈끈하다. 최희서는 “9년 전 즈음에 (손석구와)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그때 각자 100만원씩 내서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돈이 부족해 한 5일 올렸나 보다(웃음). 그 후 각자의 길이 바빠지면서 연극을 못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연락이 왔다. 함께 하는 것도, 스토리 역시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합류하게 됐다. 그때는 50석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렸는데 9년 만인 지금은 어마어마한 무대에서 공연을 올린다.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병 캐릭터다. 과거 자이툰 부대에 지원해 사병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고 하던데, 그 경험이 도움이 됐나.

“솔직히 말하면, 거의 없는 것 같다. 시대와 배경이 다 다르다. 제가 맡은 신병이라는 역할은 군인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사실은 ‘군인’이라는 마인드가 탑재돼 있지 않은 순수한 청년이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인 군대 경험이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카메라 연기와 무대 연기의 차이점이 뭐던가.

“개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똑같다. 애초에 이번 작품을 연습할 때 ‘좀 다르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는데, 결국 접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단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영화 《범죄도시2》의 연기와 연극 《나무 위의 군대》가 뭐가 다른가라고 묻는다면, 연기가 아닌 이야기가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결국 연기하는 방식은 똑같다. 똑같이 했다.”

이번 연극은 무대에서 마이크를 이용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저는 연극만 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근데 한 30대 초반에 마지막으로 연극 무대에 오르고 매체를 드라마로 옮기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그거다. ‘사랑을 속삭이려면 마이크를 붙여주든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만뒀다. 그렇게 카메라 연기를 시작했고 또 익숙해질 즈음에 내 연기가 다시 무대로 갔을 때도 되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극을 위해 연기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 자체가 연극을 하는 목적을 배신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앞서 질문과 이어, 연극은 라이브다. 바로 옆에 관객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감독님과 온 스태프가 나만 바라보고 있다. 관객이다. 반응도 비슷하다. 차이가 없다. 좀 안 들리면 마이크를 달면 된다. 사실 무대와 카메라 연기의 차이점에 대해 수도 없이 질문을 받고 있다. 다르지 않고, 왜 달라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과 고민을 더 많이 했다. 덧붙이자면 이 캐릭터는 그간 내가 해왔던 역할과 너무 다르다. 정서적으로 맑고 순수한 사람이다. 그래서 괴리가 크다. 나처럼 때 묻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오랜만에 무대 위에 서는데, 연습 과정은 어땠나.

“다듬고 만드는 과정이 있었다. 연극은 카메라로 치면 풀샷이다. 내 움직임 전체가 보인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잘 보이게 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한데 그건 카메라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앵글의 사이즈에 따라 연기가 달라진다. 처음 연습할 땐 도엽 형이 저한테 연기가 어색하다고 하더라. 연극이라는 걸 의식하니까 오히려 어색했던 거다. 형이 카메라에서 하던 대로 하라고 조언해 줬고, 연습을 하면서 찾아나갔다.”

상대역은 더블 캐스팅이다. 겉보기에도 너무 다른 두 선배 배우다. 연기할 땐 어떤가.

“완전히 다른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다르더라. 저는 거기에 맞춰서 연기한다. 음식도 궁합이 있는 것처럼 연기도 그렇다.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 다르다. 애초에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대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마음이 다를 때는 대화로 의견을 맞추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다.”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상관’과 ‘신병’의 관계는 저와 아버지 관계와 비슷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버지 말씀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따르지 않나. 신병은 나무에 갇혀 2년을 보낸다. 그런 신병은 상관을 믿는다. 그 믿음은 억지 믿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믿음이다. 간혹 왜 저래야 하는지 의문도 있지만 믿음이 더 크니까 따른다. 이것은 우리 사회, 그러니까 가족, 직장, 학교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저마다 계급과 능력치가 다르고 경험도 다르기에 충돌이 생긴다. 두 사람은 불협화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인해 부패하는 관계다. 싸워서 토해 내면 되는데 싸우지 않아서 병들어가는 부조리도 있다. ‘저 사람을 믿고 따르면 모든 게 해결되지만 이해는 안 돼’ 하는 관계. 참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전쟁과 군대를 빼고 그런 측면에서 공감하며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