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값도 내리는데 편의점 가격만 오르는 이유는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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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수입맥주 등 편의점 일부 품목, 최대 25% 인상
정부 인하 압박 속에서 줄인상 단행…“낮은 가격 민감도 악용”
“높은 수용성 활용한 자신감의 행태…결국 소비자 선택”
서울 한 편의점의 맥주 코너 ⓒ연합뉴스
서울 한 편의점의 맥주 코너 ⓒ연합뉴스

정부의 거센 가격 인하 압박에 식품업계가 백기를 들었다. 라면업계가 줄줄이 가격을 내린 데 이어 SPC 등 제과·제빵업체들도 인하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가격이 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편의점이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아이스크림, 커피 등 음료와 수입맥주와 안주류 등은 이미 인상했거나 인상이 예고된 상황이다. 제조업체들이 편의점 유통채널을 통한 가격 인상엔 주저함이 없는 데는 대형마트와 견줘 매출 비중이 큰 차이가 없는데다가 낮은 가격 민감도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격 인하 눈치 속 편의점 먹거리 가격 줄인상 

2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편의점 먹거리 상품 가격의 도미노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는 다음달 1일부터 커피 등 음료와 아이스크림, 안주류, 통조림 일부 제품의 가격을 최대 25% 인상한다. 롯데웰푸드, 매입유업 등 제조사들이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공급가를 올리면서다.

전방위적인 가격 상승이 일어나는 품목은 수입맥주다. 하이트진로는 내달 1일 수입·유통하는 맥주의 편의점 가격을 평균 9.6% 올린다. 싱하, 기린이치방, 크로넨버그 1664블랑로제 등의 캔맥주가 12.5~15.4% 인상된다. 하이네켄, 에델바이스, 데스페라도스, 애플폭스 등 총 14종도 가격이 올라간다. 이에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수입 캔맥주 묶음 가격이 1만1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9.1% 오를 예정이다.

이에 앞서 이달에는 기네스 드래프트, 아사히, 설화, 밀러 제뉴인 드래프트 등의 맥주캔 11종은 각각 4500원으로 올랐다. 인상 폭은 제품별로 100∼700원이다.

편의점 가격 인상을 결정한 제조·유통업체들의 발표에는 공통점이 있다. “편의점만 가격 인상 대상”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편의점의 경우 다른 오프라인 유통채널 가격 인상률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에 대해 다른 유통채널에 비해 덜 민감해 하는 곳이라고 판단한 업체들의 결정이라고 보여진다”고 밝혔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다른 유통채널에 비해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파고들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 관계자는 대대적인 인상이 이뤄지고 있는 수입맥주에 대해선 “수입 캔맥주 가격 인상을 단행한 업체들(오비맥주, 하이트진로)의 재무현황 분석 결과, 독과점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다”며 “원재료 상승 등의 인상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국산 맥주뿐만 아니라, 수입 맥주의 가격 인상 역시 자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계절적 요인도 한몫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름 성수기에 앞서 아이스크림이나 맥주 가격을 올려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다. 덩달아 편의점들도 자체 판매하는 안주류 가격을 올리는 형국이다. CU는 닭다리와 넓적다리, 매콤넓적다리를 기존 2500원에서 2700원으로, 자이언트통다리는 40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됐다. 각각 8%, 12.6%의 인상률이다. 세븐일레븐 역시 후라이드 한 마리 가격을 기존 1만900원에서 1만2900원으로 18.4% 올렸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진열된 아이스크림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진열된 아이스크림 ⓒ연합뉴스

“제조업체들, 편의점 판매 제품 출고가 변동률 별도 운영”

제조업체와 편의점이 가격을 올리는 데는 견조한 매출 신장도 그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온오프라인 유통 업태별 매출 비중에서 편의점은 17.1%를 기록했다. 경쟁 업태로 볼 수 있는 백화점은 13.6%에 그쳤다.

전년 동월 대비 매출 증가율도 편의점은 8.9%를 기록하며 대형마트(3.3%), 백화점(2.5%)을 따돌리고 오프라인 유통채널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이에 산업부는 “방문객수의 지속적인 증가로, 잡화(24.1%), 즉석식품(22.5%), 생활용품(17.8%) 등 전 품목에서 큰 폭으로 매출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제조업체로선 편의점이 중요한 매출통로인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해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라면이나 과자 등 식품업계가 정부 눈치를 보면서 가격을 인하하는 상황에서 가격을 올리는 것은 편의점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행태”라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한국의 대표소매업체로 성장한 편의점은 소비자들에게 필수적인 곳으로 인식된 상황”이라며 “대형마트, 백화점 등 다른 유통채널보다 소비자 수용성이 높다는 점을 활용해 업태별로 가격 차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명품 업체들이 고가 비판에도 가격 인상을 거듭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라며 “결국은 소비자의 선택에 업체들도 반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편의점 제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을 악용해 편의점 판매 제품의 출고가 변동률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제조업체들이 문제”라며 “유통채널에 따른 가격 변화 추이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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