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배제’, 시기∙방법 문제 있지만 해야 하는 이유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6.30 16:05
  • 호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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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수능 앞두고 킬러 문항 제거 방침 밝힌 정부…수험생∙학원가는 조롱과 비판 쏟아내
현실성 떠나 당위성 주장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고교 교육 과정 벗어난 문제는 없애야”

수능이 5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 교육 현장이 혼란에 빠져들었다. 정부가 이른바 ‘킬러 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히면서 입시 준비에 변수가 생긴 것이다. 당장 반응은 부정적이다. 킬러 문항의 정체도 불분명한 데다 수능 변별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겹쳤다. 본래 목적인 사교육 경감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회의론도 짙다. 반면, 그 방향성에 대해 공감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차제에 수능이란 낡은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개혁론도 제기된다.

이번 논란의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의 6월15일 발언이었다. 이날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 윤 대통령은 이런 문제들이 사교육 의존도를 높인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정부와 언론은 대통령의 주문을 킬러 문항 배제로 해석했다.

교육부가 사교육 ‘이권 카르텔’ 사례와 학원의 허위·과장 광고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기로 한 6월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시사저널 박정훈
교육부가 사교육 ‘이권 카르텔’ 사례와 학원의 허위·과장 광고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기로 한 6월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시사저널 박정훈

정답률? 공교육 연관성? 애매한 ‘킬러 문항’

혼란은 킬러 문항의 정의를 수립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교육부는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학원가에서는 교육 과정 포함 여부를 떠나 보통 정답률 5%짜리 문제를 킬러 문항으로 보고 있다. 현재 수능에서 절대평가 과목(영어, 한국사, 한문·제2외국어)을 제외하고 국어, 수학, 사회·과학탐구 과목은 상대평가로 등급과 점수를 매긴다. 최고 등급인 1등급을 받으려면 표준점수가 상위 4% 안에 들어야 한다. 킬러 문항의 주 목적이 1등급을 가려내는 것이라면, ‘정답률 5%’는 나름 합리적인 기준이다.

하지만 정답률만 갖고 킬러 문항의 정체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문항별 정답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2학년도부터는 문·이과 통합수능이 실시되면서 표준점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EBS 또는 대형 교육업체가 추정치를 내놓을 뿐이다. 교육부는 6월26일 킬러 문항 예시로 26개 문제를 공개했다. 그러자 기준이 더 애매해졌다.

일단 정답률 추정치가 들쭉날쭉하다. 교육부가 제시한 예시 중 하나인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수리 공통 22번’은 EBS 추산 결과 정답률이 2.9%였다. 반면 다른 예시인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국어 33번’은 정답률이 36.8%다. 차이가 30%포인트 넘게 나는데 킬러 문항으로 같이 묶인 것이다. 공교육과의 연관성을 따져봐도 예외가 있다. 킬러 문항 예시인 ‘2023학년도 수능 국어 17번’은 EBS 교재에 나온 지문과 연계된 문제다.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 ‘오르비’에서는 교육부의 이번 발표를 두고 “사실상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은 것”이란 조롱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객관적 공통점은 있다. 킬러 문항 예시 26개의 평균 정답률은 EBS 기준 19.8%다. 수능은 오지선다라 찍어도 정답률이 산술적으로 20%다. 즉 ‘차라리 찍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 지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서 맞힐 정도면 최상위권 수험생일 텐데, 킬러 문항이 사라지면 이들을 어떻게 선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변별력 약화 우려…“입학사정관 부활할 수도”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안성시 기숙학원 이사장 A씨는 “불수능(어려운 수능)보다 물수능(쉬운 수능)이 더 문제”라고 주장했다. ‘역대급 물수능’으로 낙인찍힌 2001학년도 수능은 만점자만 66명을 배출했다. 고득점자도 재수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A씨는 “수능 점수로 학생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다면 입학 정원을 뽑기 위해 전형을 세분화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입학사정관제가 부활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대학의 학생 선발 권한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는 사교육 부담의 원흉으로 찍히면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바뀌었다.

이주호 부총리는 ‘킬러 문항 배제 시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그것은 사교육의 논리”라고 주장했다. 이 부총리는 “킬러 문항을 뺐을 때 얼마든지 교육 과정 내에서도 어려운 문제, 쉬운 문제, 중간 문제 등 난이도 조정을 해서 변별력을 갖출 수 있는 게 교육평가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학원가의 표현을 빌리면 ‘준킬러 문항’ ‘준준킬러 문항’ 등이 자리를 메울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난이도 조절 방법과 난이도별 문제 비중 등 구체적인 대책에 관해 교육부는 추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중간 난도의 문제가 확대되면 사교육 경감 효과도 희석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미 학원가에서는 2010년대 후반부터 과목을 불문하고 ‘준킬러 특강’ ‘준킬러 테스트’ ‘준킬러 완전정복’ 등 중간 난도의 문제에 특화된 강의로 학생들을 유치해 왔다. 게다가 사교육이 오히려 더 활성화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입시학원 강사 B씨는 “킬러 문항 공략으로 유명해진 극소수 일타강사들만 타격을 입고 나머지 학원들은 반사효과를 얻을 것”이라며 “중위권 학생들이 난도가 낮아진 것을 계기로 더 많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킬러 문항 배제는 섣부른 데다 설익은 판단이었을까.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은 “정부의 이번 정책 발표는 시기상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원칙을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수능의 본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대학에서 수학(修學·학업을 닦음)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란 뜻이다. 이는 고등교육 전반에 관한 고등교육법 시행령에도 그대로 나와 있는 단어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6월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그래도 원칙 벗어난 킬러 문항은 근절해야

또 수능의 성격에 대해 교육과정평가원은 “고등학교 교육 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는 출제로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라고 밝히고 있다. 신소영 팀장은 “고교 교육 과정을 벗어나는 문제 출제는 안 된다는 게 당연한 원칙인데 이를 너무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부조리가 작금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킬러 문항이 수능이란 제도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 일타’로 이름을 날렸던 수능 국어강사 경력 20여 년의 정지웅씨는 “킬러 문항이 교육 과정을 벗어난 건 팩트”라고 강조했다. 정씨는 ‘교육 과정을 넘어도 노력하면 풀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선을 그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어의 경우 비문학에서 킬러 문항을 많이 내는데 변별력을 위해 국문학 외의 배경지식이 없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지문을 낸다. 그러다 보니 이해를 중시하는 학교 선생님이나 국문학 교수는 못 푸는 게 당연하다. 대신 이해보다 정답 찾기를 우선시하는 입시강사 같은 기술자만 다룰 수 있게 됐다. 이들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 많은 학생이 비싼 과외를 듣고 사설 모의고사에 의존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대치동 국어 일타강사도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그는 “사설 모의고사 제작진 중에 수능 출제위원 출신임을 경력 삼아 광고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해관계 충돌 소지가 명백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킬러 문항이 형평성을 해친다는 비판도 있다. 이번에 교육부가 킬러 문항 예시로 든 2022학년도 수능 수학 두 문제는 대학에서 배우는 ‘테일러 정리’와 ‘벡터의 외적’ 개념을 활용해야 풀 수 있다고 한다. 염동렬 충남고 수학교사는 “대학에서 나오는 개념을 사용해 좀 더 배운 학생이 원활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형평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킬러 문항의 폐해에 대해 실증적 근거를 제시한 전문가도 있다. 임종성 전 서울시립대 영어학 교수는 이번에 교육부가 제시한 영어 킬러 문항 중 2개의 지문 출처를 찾아 시사저널에 제공했다. 그중 하나인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34번’의 지문은 사우스이스턴 노르웨이대학의 다니엘 루빈스타인 교수가 쓴 책 《How Photography Changed Philosophy(2023)》다. 임 교수는 “이 책은 사진과 철학 분야 스칼라(scholar·학자)를 위한 것”이라며 “고교생이 이런 책에서도 극히 일부 문단만 보고 내용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아예 수능 폐지론을 꺼내들었다. 그는 “1994년 시행 이후 주입식 교육과 문제풀이 기술로 점철된 수능은 그 역할을 다했다”며 “이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논술을 강화하는 쪽으로 입시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 “수능, ‘이십년지 대계’라도 좋으니 출제 방식 당장 바꿔야”

[인터뷰] 킬러 문항 비판 후 EBS 떠난 일타강사 출신 김정호 바른영어훈련소 원장

‘킬러 문항’이 사교육 경감을 추진하는 정부의 눈엣가시로 최근 떠올랐지만, 그 개념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킬러 문항은 일종의 ‘필요악’과 같았다. 사상 최악의 ‘물수능’으로 만점자마저 떨게 만든 2001학년도 이후 당국은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초고난도 문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난도가 너무 올라가버려 급기야 고교 교육 과정을 벗어나기에 이르렀다. 임종성 전 서울시립대 영어학 교수는 6월23일 시사저널에 “고교생의 배경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정호 바른영어훈련소 원장은 10여 년 전부터 킬러 문항을 적극 비판해 왔다.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1992년 사교육 업계에 뛰어든 그는 수년 동안 일타강사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6월27일 경기도 성남시 사무실에서 만난 김 원장은 “수능이 줄세우기 시험인 이상 변별력을 유지하는 문항은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킬러 문항은 논리적 풀이 과정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이 킬러 문항에 날을 세운 건 2010년 중순이다. 당시 EBS 스타강사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여느 때처럼 수능 강의를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강의 내용은 모의고사 문제 해설이었다. 이때 모의고사에서 경제학에 관한 난해한 지문이 나왔다고 한다. 김 원장은 ‘도저히 모르겠다’며 풀이를 포기해 버렸다. 이어 그 자리에서 지문의 오류를 낱낱이 지적했다.

 

유형 맞춰 스킬 가르치는 영어…“유형에 갇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구글에서 해당 지문의 출처를 찾아냈다. 해외의 학술논문이었다. 김 원장은 “그때 내 생각이 맞았다고 확신했다”며 “지문이 논리적으로 전개되려면 앞뒤로 추가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원문에서 일부만 발췌해 인용하니 그 설명을 빠뜨렸던 것”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출처 논문을 공개하며 킬러 문항을 적극 비판했고, EBS 제작진의 반감을 사게 됐다. 그가 EBS를 떠나게 된 결정적 계기다.

김 원장은 “영어 실력을 제대로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지문의 전개가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문 독해만으로 배경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소위 킬러 문항은 지문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에 풀이 과정도 잘못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 원장은 “지문을 먼저 해석하고 답을 도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강사가 할 일인데, 지문이 엉망이다 보니 답을 확인한 후에 그에 짜맞춘 논리를 보여주며 학생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변별력 있는 문제의 유형이 한정돼 있다 보니 강사들이 문제풀이 스킬을 주입하고 있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김 원장은 “유형에 갇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나마 수능 영어는 킬러 문항 논란이 덜한 편이다. 2018학년도부터 영어 영역은 절대평가로 치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킬러 문항이 사라진 건 아니다. 교육부는 최근 2년간 수능과 모의평가에서 영어 킬러 문항 6개를 제시했다. 또 절대평가 전환 이후에도 1인당 영어 사교육비는 2020년부터 매년 늘어났다. 김 원장은 “절대평가는 ‘한시적 무통주사’일 뿐, 결국 난이도로 인해 다시 논란이 될 것”이라고 봤다.

해결 방법은 뭘까. 김 원장은 “정형화된 문제 유형을 타파하고 영작 문제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영어를 시험 과목이 아닌 순수 어학으로 접근한다면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점수 획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능 지문의 경우 더 이상 베끼지 말고 논리 정연한 한국어 문장을 번역해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수능이 ‘이십년지대계’만 돼도 좋으니 문제 출제 방식을 당장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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