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한국의 민주주의, 극성기에 몰락 예감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6.30 08:05
  • 호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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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과학’은 감정이나 욕망이 아니라 이성의 산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감정은 가슴, 욕망은 배, 이성은 머리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질적이거나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모인 국가공동체에서 합의하기 어려운 것을 합의할 때 이성이 첫 번째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이성만이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초에서 바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모습 ⓒ 신화=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초에서 바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비사실과 비과학이 횡행하는 ‘후쿠시마 문제’

반면 감정이나 욕망은 주관적이다. 주관끼리 부딪치면 합의 대신 싸움이 일어난다. 감정, 욕망, 이성. 이 셋은 사람의 생명활동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중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영역에선 이성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공동체 유지가 가능하다. 합의 기준을 감정이나 욕망으로 바꾼다고 상상해 보라. 배가 산으로 갈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한다.

예를 들어 BC 5세기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아테네를 보자. 아이러니컬하게도 민주정 체제가 들어선 지 70년이 넘어 이른바 민주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던 때에 헛소문과 극단적 논리, 권력욕과 복수심이 아테네의 의사결정기구를 지배하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막바지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해전에서 대승을 거뒀는데 귀국한 승전 장군 8명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장군들이 바다에 빠진 수백 명 병사를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는 거짓 소문이었다. 장군들은 “눈앞의 스파르타군과 싸우고 있는 데다 폭풍우가 몰아쳐 구조할 수 없었다”고 반론했지만 민중파 정치인의 현란한 말솜씨에 넘어간 시민들의 분노는 의사결정기구인 대표행정위원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

게다가 민중파 정치 세력은 자기편을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친척으로 가장시켜 검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완전히 민 채 행사에 참석하도록 꾸몄다고 한다. 유족의 슬픔을 민중 전체의 복수심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음모였다. 대표행정위원단의 결정으로 장군들은 결국 처형된다. 그때 군중의 사형 요구에 저항하며 판결 과정의 불법성을 지적한 유일한 대표행정위원이 소크라테스였다. 승전한 장군이 처형된 괴상한 역사다. 이래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국이 되었다. 패전 아테네의 군중 민주주의에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신다. BC 399년, 71세.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2021년)라는 책에서 강유원 저자는 아테네 민중파 정치인들의 특징을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과 부끄러움 없이 ‘거짓말을 한다’의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한국은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들어선 지 70년이 넘어 민주주의의 극성기를 맞이하고 있으나 절제가 사라진 폭력적 다수결로 승전 장군을 처형하고 2년 후 망해 버린 아테네의 길을 따라가는 건 아닐까. 수치심 없이 질러대는 거짓말과 말바꾸기, 질주하는 욕망과 감정이 사실과 과학을 삼켜 이성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없어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제1야당 세력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가 한국인의 식탁을 위협할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이는 사실과 과학에 반하는 비이성적인 주장이다.

 

감정·욕망·이성 중 무엇이 합의 기준이어야 하나

후쿠시마에서 방류되는 삼중수소 양은 한국 원전에서 해양으로 흘러나가는 삼중수소의 10분의 1, 중국의 50분의 1밖에 안 된다. 일본의 삼중수소가 위험하다면 한국과 중국은 그보다 각각 10배, 50배 이상 위험해야 한다. 과연 그런가. 또 후쿠시마 방류가 시작되면 ‘삼중수소를 함유한 소금’이 나타날 것이라는 괴담도 있다. 그러나 과학적 실험과 검증에 따르면 삼중수소는 오직 액체(물) 속에 녹아있는 형태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고체인 소금엔 삼중수소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런 비사실과 비과학으로 국가적 의사결정 즉, 정치적 합의의 기준을 삼으려 해선 곤란하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의 극성기에서 쇠퇴하지 않으려면 감정이 아니라 이성의 지배를 늘려야 한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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