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임 자체가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 상징”이라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지난 6년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06.30 10:05
  • 호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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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법관 탄핵에 “정치 상황 살펴야”...국회에는 거짓 답변
거짓 증언, 우리법연구회 인사, 권순일 재판 거래 의혹 등 추문 6년간 이어져

“오늘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2017년 9월26일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사)

이로부터 4년여 후인 2021년 2월, 국회에서는 헌정 사상 첫 법관 탄핵안이 가결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안이다. 같은 날, 김명수 대법원장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임 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는 녹음파일도 공개됐다. 국회에 이를 부인하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했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기억의 오류가 있었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이날은 김 대법원장의 취임사가 무색해진 날로 기록됐다. 이후 헌법재판소가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요건이 안 된다’며 각하해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오는 9월 퇴임을 앞둔 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했다.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이어 두 번째다. 수사 선상에 오른 김 대법원장의 ‘국회 거짓 답변’ 의혹 외에도, ‘김명수의 사법부’는 지난 6년간 숱한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김 대법원장의 코드 인사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주요 재판의 지연 논란도 제기됐다. 대법원장은 5개 헌법 기관장(국회의장·국무총리·헌법재판소장·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속하는 ‘5부 요인’인데, 그 위상이 실추됐다는 법조계 안팎의 지적도 뒤따랐다.

김명수 대법원장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포토

1. 이재명 대표의 정치생명 살려준 대법원 전원합의체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 때부터 법관의 독립을 강조했다. 법관의 독립 침해 시도를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했다.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고도 했다. 법관의 독립은 헌법이 보장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거론하며 이를 굳이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취임사를 두고 전임 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를 거론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김 대법원장은 2018년 9월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법 개혁에 응답했다. 그는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 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흔들고 있고,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기 동안 정치권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정황이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 때의 일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건강상 이유 등으로 사표를 냈으나 김 대법원장이 이를 반려했다. 2021년 2월 공개된 김 대법원장과 임 전 부장판사의 대화 녹음파일에는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국회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해 버리면 탄핵 이야기를 못 한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정치적 상황도 살펴야 한다.” 

이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를 부인하는 취지의 국회 답변서와도 배치됐다. 김 대법원장은 기억에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법부가 정치에 휘둘렸다는 법조계의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검찰은 퇴임을 앞둔 김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김 대법원장의 마지막 해는 전임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에 불거진 재판 거래 의혹도 조명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생명을 살리고 대선주자로 키운 선고가 있다. 대법원이 이 대표의 2018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대표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TV토론회에서 ‘친형 강제 입원’ 의혹을 부인하면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원심대로라면 벌금 100만원 이상을 받은 이 대표는 경기지사직을 상실해야 했다.

하지만 ‘TV토론에서 갑작스러운 질문에 거짓말을 했지만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다’는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이 대표는 기사회생했다. 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가 2020년 내놓은 판단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당시 유·무죄 의견이 엇갈린 상황에서 무죄 의견을 내 주도적 역할을 했다. 권 전 대법관은 이후 ‘대장동 개발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의 화천대유자산관리 고문으로 일했다. ‘대장동 50억 클럽’에도 이름을 올린 권 전 대법관에 대한 수사는 미진한 상황이다.

 

2. 법관 1인당 사건 수 줄어도 재판 지연은 늘어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 격언이 있다. 사법부의 판단은 타이밍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사법부의 사건 처리는 더뎌지고 있다. 법관의 1인당 사건 처리 수가 선진국에 비해 많은 점을 감안해도,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재판 지연이 심각해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1심 판단이 나오기까지 3년 넘게 걸린 점만 봐도 그렇다.

이는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자료에서도 드러났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법원행정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민사본안 1심 판단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2018년 4.9개월에서 2022년 5.9개월로 늘어났다. 항소심은 같은 기간 7.9개월에서 10.9개월로 증가했다. 형사재판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1심은 4.5개월에서 6개월로, 항소심은 4.7개월에서 7개월로 각각 늘었다. 건수로 보면 1년 넘게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은 형사 재판(1심)은 2016년 7366명에서 2020년 1만1733명, 2022년 1만5563명으로 급증했다. 항소심도 같은 기간 923명에서 1850명, 4790명으로 늘었다. 1년을 넘긴 민사 1심 재판 역시 2016년 2만6879건에서 2022년 5만3084건으로, 항소심은 2016년 3442건에서 2022년 9225건으로 각각 급증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법관 1인당 사건 수는 선진국에 비해 많은 편이다. 2019년 기준 법관 1인당 사건 수는 426건이다. 독일(89건)이나 프랑스(196건), 일본(151건)과 비교하면 배 이상이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과거 법관 증원 등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법관 1인당 맡은 사건 수가 감소하는 추세지만, 사건의 평균 처리기간이 늘어났다”(2022년 12월 국회입법조사처의 ‘법조경력자 법관임용제도의 입법영향분석’ 보고서)는 지적도 제기됐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대법원장 임기 동안 재판 적체 현상이 심화했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지난 6년간 ‘후관예우’ 우려도 사법부에서 쟁점으로 떠올랐다. 후관예우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법관으로 임용돼 자신이 근무했던 로펌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의미다. 전관예우와 반대 개념이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대형 로펌 출신 법관임용자는 2017년 이후 매년 20%대를 상회했다. 2022년 9월 기준 대형 로펌 출신 비율은 2013년 7%에서 2014~15년 16%, 2016년 19%, 2017년 22%, 2018년 37%, 2019년 20%, 2020년 21%, 2021년 30%, 2022년 27%로 집계됐다. 이는 2013년부터 시행된 법조일원화(법관과 검사 임명 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자를 선발하겠다는 취지)의 결과이긴 하다. 하지만 대형 로펌 쏠림 현상에 대한 법조계의 우려는 만만치 않다.

ⓒ뉴스1
2018년 12월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법원도서관 이전 개관식’에 참석한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과 권순일 전 대법관(가운데), 노정희 대법관 ⓒ뉴스1

3.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재판, 3년 지나도 여전히 1심에

대표적인 재판 지연 사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건이다. 1심 결과는 기소 이후 3년2개월 만인 지난 2월 나왔다. 조 전 장관은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법정 구속은 피했다. 1심 판단이 나오기까지 3년간 재판부 구성은 세 차례 달라졌다. 김미리 부장판사가 2명의 배석판사를 이끄는 형사합의부였다. 2021년 2월 부장판사 3명으로 이뤄진 대등재판부로 바뀌었다. 재판장으로 유임된 김 부장판사는 같은 해 4월 병가를 내면서 재판부 구성이 또 변경됐다.

김미리 부장판사는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도 심리했다. 그런데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기소 후 1년여 동안 공판이 열리지 않았다. 재판 지연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부장판사가 4년간 유임되면서 이례적 인사라는 뒷말도 나왔다. ‘코드 인사’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미리 부장판사가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출신인데, 이는 김명수 대법원장도 활동했던 단체이기 때문이다. 김 부장판사는 2022년에야 서울중앙지법을 떠나 북부지법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사건은 검찰이 2019년 수사를 시작해 2020년 1월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의원 등 관련자 15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으나 2023년 6월 현재까지 1심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이보다 더 오래 서울중앙지법에 남았던 법관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에 6년간 유임된 윤종섭 부장판사다. 윤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을 맡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헌정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다. 증거도 증인도 많은 재판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심 재판은 기소 후 4년째인데도 결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윤 부장판사의 유임에는 특수한 사건을 심리한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심 재판부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3년 근무 후 자리를 옮겼다. 윤 부장판사의 경우와 비교해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 부장판사는 2020년 1월 사법농단에 연루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윤 부장판사는 1심에서 이민걸·이규진 전 판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천대엽 대법관은 2021년 4월 대법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윤 부장판사의 임기와 관련해 “이례적인 인사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사건을 맡은 재판장의 이동과 견줘도 이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기소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건과도 대비됐다. 김 전 지사의 2심을 맡은 차문호 판사는 2020년 1월 2년을 채우고 인사 이동을 하기 전에 “김 전 지사가 드루킹의 킹크랩 시연을 본 것이 맞는다”는, 다소 이례적인 중간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시연을 본 것만으로 공모 관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재판부가 지적한 항목에 대해 설명을 내놓으라고도 요구했다. 이 외에도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에게 실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유임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리를 옮겼다.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포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 사진)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포토

4.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민변 출신 일색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명 때부터 파격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비(非)대법관 출신인 최초의 대법원장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근무 등 사법행정 이력도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보다 사법연수원 13기 후배인 파격 인사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불거졌다. 회의록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 자료를 보니 사법행정 경험 면에 있어서나 재판 경험, 경륜에 있어서 이분이 도대체 왜 대법원장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납득이 안 된다”(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며 코드 인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김 대법원장은 당시 “사법행정이나 재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나름 잘 해낼 수 있다”고 답변했다.

‘파격 인사’ 배경에는 당시 문재인 정부 민정 라인의 김형연 법무비서관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김 비서관이 물러나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천 전 장관은 2017년 9월 “김 비서관은 김명수 후보자가 부장판사로 일할 당시 배석판사였으며 김 후보자가 회장이었던 국제인권법연구모임의 간사였다고 한다”며 “일부 야당 의원들은 김 비서관이 김 후보자를 대법원장 후보자로 추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일리 있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비서관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킬 경우 청와대의 사법부 통제 의혹이 지속된다”며 김 비서관(2017~19년)의 해임을 청와대에 요구했다.

6월29일 현재 대법원 구성은 김상환·김선수·노정희·노태악·민유숙·박정화·안철상·오경미·오석준·이동원·이흥구·조재연·천대엽 대법관으로 꾸려졌다.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은 김 대법원장의 취임 이전인 2017년 7월 임명됐다. 김선수 대법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력이 있고, 김상환 대법관은 진보 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노정희·이흥구 대법관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김 대법원장 역시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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