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티즈, 그리고 K팝의 이유 있는 청양고추맛
  • 김영대 음악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30 13:05
  • 호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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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이 내세우는 얼얼함의 미학

최근 발매된 보이그룹 에이티즈(Ateez)의 신곡 《Bouncy》에는 흥미롭게도 ‘K-HOT CHILLI PEPPERS’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지금부터 Fly / 좀 다른 Spicy / 청양고추 Vibe”. 9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록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i Peppers)의 이름이 떠오르는 이 구절은 반복되는 후렴을 채우는 펀치라인이기도 하다.

맥락을 모른다면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룹이 앨범의 타이틀곡을 통해 내세우고자 하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를 한국인의 매운맛, 그러니까 ‘청양고추’의 맛에 빗대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수긍이 될 법도 하다. 물론 K팝에서 강렬한 사운드와 태도를 맛에 비유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투 애니원 출신 CL의 《Spicy》라는 곡이 있었고, NCT Dream의 히트곡 《맛》의 부제 역시 ‘Hot Sauce’다. 불과 한 달 차이로 걸그룹 에스파(aespa)는 신곡 《Spicy》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그룹 에이티즈(ATEEZ)가 6월15일 오후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에서 열린 아홉 번째 미니앨범 ‘더 월드 에피소드 2 : 아웃로우(THE WORLD EP.2 : OUTLAW)’ 발매 쇼케이스에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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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22년 1월16일(현지시간) 두바이 엑스포 알 와슬 플라자에서 열린 두바이 엑스포 한국의 날 공식 행사에서 스트레이키즈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이티즈의 청양고추맛, 그 본질은 서사와 세계관

주제 의식도 큰 틀에서 유사하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중독성 있는 음악을 한번 먹으면 계속 입맛을 잡아끄는 매운맛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노래 제목과 가사에만 이 같은 ‘매운’ 정체성이 묻어있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는 ‘神메뉴’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하면서 그들이 내세우는 주 메뉴의 맛이 맵고 강한 맛임을 천명한 바 있고, 단지 역동적인 수준을 넘어 강하고 과한 이들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이제는 ‘마라맛’ K팝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그룹의 정체성이 되기도 했다.

에이티즈나 스트레이키즈가 내세우는 ‘청양고추맛’이나 ‘마라맛’ K팝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단 이들의 음악에는 우리가 보통 대중음악에서 기대하는 쉽고 편안한 매력이 결여돼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음악이 늘 난해하다거나 아방가르드적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겠지만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어디서나 배경음악으로 즐겨 들을 수 있는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 그 이유는 두 번째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바로 이들의 음악이 즉각적이고 강렬한 ‘자극’을 통해 승부를 걸어온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자극은 적당함이 아닌 과도함을 통해 얻어진다. 단순히 톡 쏘는 매운맛을 넘어 혀끝을 자극하는 얼얼함이 생명인 마라나 청양고추를 언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당연히 그 얼얼함은 중독성을 이끌어내는데 이는 이성적인 반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신체의 호르몬적 반응에 가깝다.

낯설고 강하고 과한 사운드가 특징인 이 음악들은 끝나는 즉시 ‘다시!’를 외치게 만드는데, 이는 단순한 중독성이 아니라 자극으로부터 비롯되는 신체적 반응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얼얼한 매운맛이 가능한 것은 이것이 음악 그 이상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K팝이 비주얼적 호소가 강한 음악인 것은 어느 그룹이든 마찬가지지만, 에이티즈와 스트레이 키즈의 경우 더 각별하다. 여기서도 ‘얼얼함’의 법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단지 아름답거나 예뻐서가 아니라 강한 자극을 주는 춤사위,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음악적 텍스처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에게 여유를 주지 않음으로써 그 핵심적 매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 매운맛은 나름의 맥락과 밸런스가 있어야 하는데, 그중 하나는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세계관’이다. 이제는 K팝 프로덕션의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된 ‘서사’ 만들기는 IP의 다양한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맹렬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 그룹의 이야기를 설득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그 매운맛은 다분히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에이티즈의 새 앨범을 예로 들어보자. 이 앨범은 ‘THE WORLD EP.2: OUTLAW’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영화로 치자면 ‘세계’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이며 그 소주제는 ‘도망자’ 혹은 ‘무법자’가 되는 것이다. 앨범은 이 주제에 맞춰 그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직조돼 있다.

시리즈의 주제의식을 의문의 형태로 제시하는 첫 곡 《This World》에 이어 이 세계의 통제를 받는 구성원들이 느끼는 무기력함과 좌절감을 막막한 모래사막의 황량함에 빗대 풀어낸 《Dune》, 오늘도 장담하지 못하는 절박한 운명을 전설적인 총잡이인 장고의 캐릭터에 투사한 《Django》, 혼란스러운 내면의 끝없는 갈등 속에 마침내 각성을 향해 나아가는 전주곡 《Wake Up》, 그리고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의지를 다지며 던지는 출사표이자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는 《Outlaw》까지 앨범의 모든 곡은 큰 틀에서 세계관의 작은 에피소드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촘촘한 이야기 구성과 논리 속에서 청양고추의 매운맛은 단지 고통을 위한 자극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음악의 맛을 살리고 후련함과 해방감을 주는 음악적 향신료가 되는 것이다.

최근 에이티즈와 스트레이키즈 같은 그룹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으나 ‘매운맛’은 적어도 지난 10년 이상 K팝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리고 이는 K팝이 전 세계 대중음악 신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도 관련이 있다. 세계시장에 도전하는 K팝은 필연적으로 미국과 영국이 만들어낸 주류 팝 시장의 높은 벽을 맞닥뜨려야만 했다.

언어, 인종, 문화 등 모든 부분에서 비주류의 한계를 실감해야 했던 K팝이 생각해낸 승부 포인트는 그들이 차지하지 못한 틈새시장 공략이었고, 통제하기 어려운 광범위한 일반 대중 대신 K팝의 미학에 공감하는 마니아층, 그러니까 고관여층 소비자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갔다. 그 가운데 강하고 과함을 앞세우는, ‘맥시멀리스트(maximalist)’적 정체성이 그 주요한 전략 중 하나로 고안됐고, K팝은 일반 음악 대중이 쉽게 다가가긴 어렵지만 마니아들의 특별한 취향에 복무하는 흥미로운 하위문화로서 그 명성을 쌓는 데 성공하게 된다. 에이티즈의 청양고추맛과 스트레이키즈의 마라맛도 결국 그 와중에 등장한, 특히 보이밴드가 가진 강렬한 퍼포먼스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전략이며 그에서 비롯된 미학적 특성인 셈이다.

 

틈새시장을 노리는 K팝의 전략

하지만 매운맛도 결국 모든 맛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그 매운맛이 갖고 있는 독자적인 ‘향’은 결국 그룹이 가진 개성과 기획사마다 내세우는 스토리, 그리고 멤버들을 비롯한 작곡진의 음악적 역량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룹의 성공 여부 역시 단순히 ‘얼얼함’의 정도가 아닌 그 매운맛을 어떻게 다른 맛과 조화시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게 단순히 음악적인 전략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귀나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을 넘어선 총체적인 경험과 그에서 비롯된 흥분감. 어느새 K팝의 매운맛은 음악 장르를 넘어 퍼포먼스 예술의 장르에 가까워지고 있는 K팝의 가장 K팝다운 면모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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