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폐지보다 학벌주의 철폐가 우선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7 14:05
  • 호수 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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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시장 규모 26조원, K콘텐츠 수출액 뛰어넘어…학벌주의가 초래한 사교육 산업화의 그늘

최근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 ‘삼성전자 사장과 류현진 메이저리그 선수, 특A급 연예인, 모 일타강사 중 누가 가장 연 소득이 높을 것 같냐’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흥미롭게도 ‘입시를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타강사가 그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소득이 높을 것’이라는 댓글이 지배적이었다. 일타강사는 참고로 내수시장에서만 돈을 번다. 이미 사교육의 스타는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반도체 산업의 최고를 넘어선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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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9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의실에서 수능 킬러 문항 판별 기준 모색을 위한 긴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사교육의 산업화

몇 년 전, 모 사교육 업체로부터 수능강사 영입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대학에서 가장 높은 강의 평가를 그간 학생들로부터 받은 점을 어떤 경로로 확인했는지 모르지만 이미 해당 정보를 파악하고 영입 제의를 한 점이 놀라웠다. 교수에게 수능강사 제의를 한 점도 뜻밖이지만 영입 방식 역시 대학에서 받는 연봉의 최소 10배를 1년에 벌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한 점도 충격으로 남았다. 사교육은 말 그대로 산업이 됐다.

국내 사교육의 역사는 60년을 넘었다. 1959년 초등교육 의무화로 인해 초등학교 취학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중학교 입시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1968년 무시험 중학교 진학제도를 도입하자 곧바로 고교 입시 경쟁이 형성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정부가 1973년 고교 평준화 정책을 시도한 후 교육과 입시 경쟁의 끝판왕인 대학 입시 경쟁이 다시 사교육을 소환했다.

중학교에서 고교 그리고 대학으로 입시 경쟁이 전환되면서 수많은 사교육 업체가 시장에 뛰어들었고, 입시제도 변화와 상관없이 소위 일타강사는 늘 시대별로 존재했다. 지난해 한국의 사교육 시장 규모는 26조원으로 추정된다. BTS와 《오징어 게임》 《기생충》으로 유명한 국내 콘텐츠 산업의 지난해 수출액 규모는 17조원.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의 위상을 통해 벌어들인 수출액의 1.5배를 사교육은 내수에서 회수한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학생의 70% 이상은 현재 사교육을 받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가계 지출 중 최소 20%가 교육비로 지출된다.

그 결과, 사교육을 지배하는 일타강사들은 1년에 100억~300억 이상의 연봉을 받으며 고가의 아파트, 미술품, 명품 자동차와 시계를 요란하게 수집한다. 교육자의 소명의식, 사명감은 이내 사라져 버렸고 그 빈 공간엔 수십억원을 벌 수 있다는 경제 논리만 가득하다. 지금도 일부 강사는 온라인을 통해 더 많은 수강생을 모집하기 위해 애쓰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유튜브와 지상파 예능에 출연하며 자신의 소득과 수강생 규모를 자랑하기 바쁘다. 모 강사는 연봉이 100억원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으며, 차를 살 때 1억원이 넘는 금액을 카드로 긁었다고 밝혔다. 교육자의 철학보다 자신의 영향력을 경제적으로 자랑하기 바쁜 그들. 사교육은 경제 논리가 교육 이념을 완벽히 밀어냈다.

사교육이 산업화된 이면에는 킬러 문항이 도사리고 있다고 정부는 추정한다. 수능에서 공교육으로 해소할 수 없는 초고난도 문항이 제시되면서 학생들이 사교육에 더 많이 몰리고 있다는 가설이 뒤따르자 해결 방법은 곧바로 도출된다. 고난도 문제인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수능을 공교육과 EBS 내에서 출제한다면 사교육 수요는 줄어들 수 있다는 것. 과연 사교육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을지 의견을 들어봤다.

일타강사를 포함한 사교육 강사들은 수능이 쉽게 출제되면 사교육에 더 많은 학생이 몰릴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능이 쉽게 출제될 경우, 학생들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입시 결과를 높일 수 있기에 쪽집게 강의, 문제를 쉽게 설명하는 일타강사를 선택하는 열풍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능의 난이도 그리고 수시 및 정시 여부와 상관없이 사교육을 잡기는 솔직히 불가능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공교육의 정상화, 지원정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사교육은 학생 1명당 인센티브가 따르는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산업의 영역이다. 아무리 잘 가르쳐도 별도의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는 공교육에서 교육자의 사명의식만으로 선생님들이 동기부여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정권마다 공교육 정상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 어떤 제도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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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킬러 문항’ 논란으로 거대해진 사교육 시장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킬러 문항 사라져도 ‘스카이캐슬’은 그대로

그리고 학생 입장에선 제일 쉽게 가르치는 선생님, 제일 잘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이는 수능이 쉬워진다 하더라도 대학 입시가 수능이 아닌 수시로 다시 전환된다 해도 바뀔 수 없는 학습자의 본능적 욕망이다. 그리고 킬러 문항 폐지와 95% 이상의 수험생은 별 관련이 없다. 국내 학생의 70% 이상이 사교육을 받는 슬픈 현실에서 킬러 문항 폐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효약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은 수능 난이도에 상관없이 사교육에 매달릴까? 해답은 학생들이 제일 잘 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국내는 학벌주의가 엄연히 존재하기에 사교육을 외면하기 어렵다고 다들 하소연한다. 킬러 문항은 사라질 수 있어도 스카이캐슬이 사라질 수는 없다.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부모는 내 자녀를 스카이캐슬에 입성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일타강사와 킬러 문항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긴 어렵다. 역대 정부 내각의 50% 이상은 늘 스카이 출신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은 76%가 스카이 출신이었다. 당시 다수의 언론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을 서울대·8학군·서울 출신으로 규정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와 입시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 학생들에게 이는 중요한 시그널로 다가온다. 아무리 다양성이 넘쳐나는 조직이 성과를 창출한다고 해도 정부 및 기업의 요직은 언제나 대학 서열 순이다. 대학 서열을 곧바로 철폐하자는 이상적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정부가 학벌주의의 병폐를 지적하고 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면, 그리고 실제로 다양성을 중시하는 방향성을 갖고 인재를 등용했다면 사교육이 이토록 막강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 어떤 이념보다도 막강한 학벌주의가 오늘도 수많은 학생을 사교육으로 결집시킨다. 킬러 문항이 사라지면 또 다른 킬러가 학벌주의를 위해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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