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라진 대한민국, 각자도생 내몰리는 국민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0 07:35
  • 호수 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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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적으로 보는 ‘정서적 내전 상태’…‘극언·정쟁’ 반복 피로감
여야, ‘강성 지지층’에 포위…무한 갈등에 ‘국민 위한 정치’ 실종

‘우리 편만 보는 정치’에 대한민국이 포획됐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 채 강성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정치가 한국 사회를 질식시키고 있다. 여당도, 야당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향한 저주와 상식을 저버린 극언이 하루가 멀다 하고 되풀이된다. 

지난 열흘이 딱 그랬다. 대통령은 전임 정부와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했다. 여당 대표는 민주당을 향해 “마약에 도취됐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을 향해 “사실상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됐다”는 극언이 다시 나왔다. 상대를 국정 파트너로 인식하고 인정한다면, 협치에 대한 일말의 진정성이 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말들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정치는 사라지고 배제와 독단, 증오와 독설만이 남았다. 대통령이나 야당 모두 제각기 각자의 길만을 가는 정치를 하고 있는 탓”(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그렇게 대한민국은 ‘정치 실종’ 상태가 됐다. 이제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대결과 정쟁의 갈등만 반복된다. ‘정서적 내전 상태’라는 표현(김부겸 전 국무총리)은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아예 만나지 않는다. 앞으로 만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계속 지금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란 얘기다. 

여야도 대화로 문제를 풀지 않는다. 거대 야당은 여야 합의 대신 법안 본회의 직회부를 밀어붙이고, 이에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맞서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극한 정쟁은 일상이 됐다. 내년 총선까지 계속 같은 모습이 반복될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선악 구도에 빠졌다. ‘우리 편이 하는 정치’만 옳고, 상대가 하는 정치는 ‘악’이다. “소위 ‘체제 전쟁’ 혹은 내전과 같은 식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질 것”(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여야 간 대립 상태가 전쟁 같은 상황”(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등과 같은 원로들의 우려가 나올 정도다.

정치가 황폐화되면, 국민은 정치를 외면한다.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추긴 결과는 잔혹하다. 정당 정치가 실패한 자리는 극성 지지층이 차지했다. 일부 훌리건 같은 극성 지지층이 과다 대표되는 팬덤정치는 이제 일상이 됐다. 극단의 정치가 팬덤정치가 장악한 광장으로 퍼지고, 광장의 극단적 언어는 수위를 높여 다시 제도권 정치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강화됐다. 그렇게 이들은 점점 제도권 정치도 장악하고 있다. 소금 같은 쓴소리는 이제 내부 총질로 내몰린다. 정당의 자정 작용은 사라지고 있다. 대통령과 거대 양당의 지지율이 모두 30%대 박스권에 갇히고, 갈 곳 잃은 무당층이 계속 ‘제1당’ 위치를 위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사이 국민은 전쟁 같은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3고’(고환율·고물가·고금리) 상황이 길어지고 있지만, 산적한 민생 문제는 모두 상대방 탓이다. 여당은 늘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고 하고, 야당은 계속 “대통령이 야당 대표도 안 만난다”고 한다. 제도권 정치가 내년 총선에만 목을 매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는 ‘문제 해결’이라는 고유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고 은행 대출로 연명하는 자영업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고 천문학적 규모의 가계부채는 내수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정치는 문제 해결 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국민은 각자도생에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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