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와 차별이 부른 프랑스 폭력시위, 유럽 전체가 화약고
  • 김휘동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9 08:05
  • 호수 176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 사회의 뿌리 깊은 사회적·인종적 차별 문제가 곪아 터져
경찰 공권력 남용에만 기댄 해결 방식, 사태 더 악화시켜

6월27일, 프랑스 파리 북서부의 근교 도시 낭테르에서 교통 검문을 무시하고 도주를 시도하다가 경찰의 총격에 숨진 17세 소년의 죽음으로 시작된 폭력시위가 일주일째 이어졌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다소 안정세로 접어들었지만, 한때 프랑스 전역에 경찰병력 4만5000여 명이 투입되며 파리에서만 하루에 약 1500명이 체포되는 등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인근 프랑스어권 국가인 스위스와 벨기에에서도 유사한 폭력시위가 발생하며 이로 인한 인종·계층 간 갈등이 유럽 각국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EPA 연합
6월29일 프랑스 낭테르에서 경찰에 의해 살해된 17세 나엘을 추모하는 행진 도중에 검은 옷을 입은 한 시위자가 교통 표지판 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

17세 소년의 죽음, 분노 표출 도화선 돼

이번 시위의 발단은 알제리-모로코계 프랑스 시민인 17세 소년 나엘의 죽음이었다. 프랑스 사법 당국에 따르면 나엘은 6월27일 오전 노란색 벤츠 AMG A45를 버스전용 차로에서 난폭운전하며 경찰에 단속됐다. 그는 차량 앞 유리창을 통해 그에게 권총을 겨눈 경찰관의 엔진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차량을 출발시켰다. 이후 즉시 경찰관이 총기를 발포했고 나엘은 사망했다.

나엘은 범죄기록은 없지만, 과거 교통법규 위반으로 소년법정에 출석한 전력이 있었다. 또한 프랑스에서의 운전면허 취득 연령이 18세인 데 비해 17세인 그는 무면허·무보험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망이 있기 며칠 전 프랑스 정부는 2024년부터 운전면허 취득 연령을 17세로 내리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총기를 발사한 38세 경찰관은 수사를 위해 곧바로 구금되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방위’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엘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나엘이 차량을 출발시키며 자신과 동료 경관에게 ‘충돌’하며 생명에 위협을 가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경찰청 대변인은 “해당 경찰관은 10년간의 근무 동안 징계 전력이 없었으며 장관 표창 등 3개의 훈장을 받는 등 모범적인 근무경력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해당 경찰관을 위한 모금에 20억원가량이 모였다.

그러나 유가족 측 변호인은 해당 경찰관의 행위가 정당방위 수준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특히 당시 나엘과 함께 탑승했던 동승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나엘에게 총구를 겨눈 경찰관과는 별개로 또 다른 경찰관이 운전석 옆 내려진 유리창을 통해 총기 후면으로 나엘의 머리를 서너 차례 가격했다는 것이다. 이때의 충격으로 나엘은 브레이크를 놓쳤고 차량이 자동변속기어인 탓에 스스로 전진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의 전말을 둘러싸고 소셜미디어에서는 다양한 추측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나엘이 이미 경찰에 잘 알려진 ‘전과자’로 사건 당시 도난당한 자동차를 운전했다는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불량 비행청소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방어행위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이에 맞서 프랑스 내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기인한 경찰의 과도한 방어행위가 17세 소년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반박도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시위를 촉발한 ‘분노’는 단순히 17세 소년의 죽음에서만 비롯되었다고 볼 수 없다. 프랑스 사회의 뿌리 깊은 사회적·인종적 차별 문제가 곪아 터져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수십 년 이어진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남용과 폭력에 더해, 주로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프랑스 주요 도시 변두리 지역의 소외가 인종차별과 낙후된 주거 및 교육 환경으로 이어지며 이곳 젊은이들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어려울 정도까지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2013년 한 연구 결과에 의해 ‘낙후된’ 지역에 거주하거나 이민자 배경이 드러나는 이름이 이력서에서 확인될 경우 상대적인 차별을 받는다는 점이 밝혀진 바 있다.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붕괴된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인해 깊어진 ‘소외감’은 ‘분노’로 뒤바뀌며 1990년대부터 간헐적인 폭동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나엘의 죽음 또한 축적된 분노를 다시금 터지게 만들었다는 반응이다.

 

경찰 노조, 시위 가담자들을 “벌레”로 지칭

일부 시민은 지난 프랑스 대선 당시 마크롱 대통령의 재산업화와 경제 활력 비전에 낙후된 변두리 지역의 활성화 방안도 포함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마크롱은 임기 동안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일관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프랑스는 공권력 강화라는 해법을 제시하며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에 따라 최근 수년간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크게 늘어났으며 이는 시민과 공권력 간 긴장 상태로 이어졌다. 이번 폭력시위에서도 경찰 노조는 시위 가담자들을 “벌레”로 지칭하며 “폭력적인 소수인종들의 폭정을 두고만 볼 수 없다. 전쟁이다”란 성명서를 내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냈다. 지난 수년간 유럽인권위원회와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프랑스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인권침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이번 사태를 소셜미디어 시대의 폭력시위 특성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즉 분산 및 탈중앙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가 직접 만나 협상할 수 있는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으며 폭력시위 가담자들 또한 특정한 요구사항을 밝히는 것이 아닌 ‘나엘을 위한 정의’ 등 추상적인 레토릭만 외치며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가 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탓에 한정된 경찰병력만으로 시위에 대응한다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또한 공권력을 투입해 시위를 억누른다 하더라도, 프랑스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폭력시위가 지난 수십 년간 반복돼온 것처럼 또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이번 폭력시위의 문제를 단순히 비행 청소년들의 폭력행위와 이를 막기 위한 공권력 간 대립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수십 년간 뿌리 깊게 박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남용되는 경찰 공권력에 대한 개선뿐만 아니라 낙후된 지역 거주민들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한 해법을 제시해 나가야 반복되는 폭력 사태를 끊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크롱 정부에 큰 기대를 거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폭력시위와 그에 대응하는 공권력 강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현재의 프랑스를 만들어냈다. 부유한 계층은 소외된 계층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며 이들의 ‘폭력’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억압받는 계층이 처한 사회적·인종적 차별과 멸시는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단순히 이들의 ‘노력’이 부족해 범죄와 비행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단언한다면 폭력시위는 계속해서 다시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