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자 다변화는 이제 ‘선택 아닌 필수’
  • 이장수 뉴프레임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8 12:05
  • 호수 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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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해외투자액,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46% 증가
脫중국 기조에 맞춘 무역 전략 마련 시급

한국 경제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성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80년대에도 이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1990년대는 경제 규모가 대폭 확대됐다. 자연스럽게 해외 진출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 협소한 국내시장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직접투자(FDI·Foreign Direct Investment)가 본격화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수출입은행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FDI 규모는 1980년까지만 해도 3.28억 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처음으로 연간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2006년에는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후에도 해외투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2016년에는 300억 달러를 돌파했고, 2018년 517.5억 달러, 2022년에는 771.7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북미가 302.2억 달러(39.2%)로 가장 높았다. 이어 아시아 181.2억 달러(23.5%), 유럽 153.9억 달러(20.0%)를 기록했다. 최근 10년 동안은 동남아 거점 지역인 베트남에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3월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42회 해외 이민·투자 박람회를 찾은 방문객들이 부스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3월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42회 해외 이민·투자 박람회를 찾은 방문객들이 부스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10년간 베트남 투자 활발

업종별로 보면 금융보험업이 297.0억 달러로 가장 높았다. 이어 제조업 235.9억 달러, 부동산업 70.7억 달러 순이다, 금융보험업 투자는 해외 주식이나 채권 투자 활성화로 개인 및 기관투자가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누적 투자액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1분기 4560.7억 달러에서 2023년 1분기 6637.2억 달러로 3년 만에 45.5%나 증가했다.

이제 해외투자는 저렴한 인건비 확보와 자원 개발, 신기술 축적, 신제품 출시 등 효율적 시장 확보와 글로벌화 추진을 위한 필수 코스가 됐다. 중소기업의 경우 국제화 및 내수시장 한계로 인해 주로 대기업과 함께 동반 진출하고 있다. 최근 북미 지역에서 반도체와 이차전지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이 잇달아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시간이 갈수록 해외투자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내 반도체와 이차전지 업계의 경우 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미국, 유럽 등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차전지 업계의 경우 유럽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기술력과 자금 지원 등 선제적인 시장 확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해외투자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영권 분쟁, 현지화 실패, 원자재 확보의 어려움, 문화적 차이, 종교적 차이, 정치적 요인 등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입해야 했다. 이 때문에 해외투자 때 특정 국가에 치우치기보다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다변화가 필요하다. 당장 반도체만 봐도 그렇다. 지난 5월 기준으로 한국의 무역수지는 15개월째 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적자가 지금처럼 계속된 것은 1995년 1월부터 1997년 5월까지 연속 적자를 낸 이후 25년여 만에 처음이다. 5월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262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수출의 약 10%인 반도체와 지역 기준으로 20%인 중국 수출이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6월 들어 무역수지가 반짝 흑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는 16개월 만에 11억3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고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혔다. 하지만 수입액이 수출액보다 더 많이 떨어져 나타난 ‘불황형 흑자’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 의존도부터 낮춰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최근 보고서에서 수출 부진의 구조적 문제 개선 방안으로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고 탈(脫)중국 기조에 맞춘 무역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주요 과제로 △탈중국 기조와 기회 포착 △경제외교 강화 통한 교역 구조 재편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지원을 제안했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내 업체가 해외직접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과 함께 정부 및 관련 기관의 지원 정책이 동반자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나 관련 기관의 지원책으로는 투자국과의 투자보장협정 체결, 한국수출보험공사가 시행하는 이중과세 방지법, 한국수출은행 등의 정보 제공, 직간접적인 금융 지원이 있을 수 있다. 투자국의 새로운 국제규범이 만들어질 경우 정치적·외교적 해결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한국판 CRMA 검토 필요성도

최근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과 반도체 지원법(소위 Chips Act)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생산한 제품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집중적으로 주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다. 실상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맞서 중국은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에 나섰다. 갈륨은 차세대 반도체, 태양광 패널, 레이더, 전기차에 들어가고, 게르마늄은 광섬유 통신, 야간 투시경, 인공위성용 태양전지 등의 핵심 소재다. 각각 전 세계 생산량의 94%, 90%를 중국이 공급해 왔는데, 다음 달부터는 수출할 때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유럽 역시 CRMA(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의 경우 원자재 사용을 법으로 제한해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악재가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현실에 맞는 대처를 할 수 있다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판 CRMA를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투자는 장기적으로 보면 생산시설 해외 이전에 따른 국내 산업 위축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조세 수입 감소, 역수입에 따른 국제수지 악화, 해외 이전에 따른 고용 감소 등의 부작용도 있다. 과거 미국 역시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신설하고, 생산시설을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공동화(Hollowing Out) 현상을 겪었다. 최근 보조금 지급이나 법인세 감면 등의 방법으로 세계 각국의 공장 유치나 리쇼어링(국내 복귀·Reshoring)을 유도하는 등 제조업 부활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해외직접투자는 경제적 이득과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상존하고 있으나 경제 영역을 글로벌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해외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 역시 FDI를 통해 국제수지 개선이나 지하자원 확보, 경제성장 등 여러 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협소한 국내시장을 극복하고 경제 영토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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