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충수 된 ‘양평고속道 백지화’? 딜레마 빠진 與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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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사업 백지화 선언 파장 일파만파…김기현 “민주당 탓”
양평군민 반발 속 수도권 민심 하락…與일각 “무리수 둔 꼴”

김건희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 논란으로 제동이 걸린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설 사업과 관련해 여당이 ‘딜레마’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업 백지화’를 선언한 직후 양평군민들의 거센 저항이 이어지면서다. 같은 기간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발표되자, 수도권 지역구의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사업 재추진’ 요구 목소리가 타져나오기 시작했다.

10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청 앞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재추진 범군민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청 앞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재추진 범군민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버티는 원희룡…김기현도 지원사격

10일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원희룡 장관의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 백지화’ 선언은 친윤석열계 핵심 의원들도 인지하지 못했던 ‘깜짝 발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윤계 여당 의원은 “(사업 백지화 선언은) 기자회견을 보면서 ‘라이브’(생방송)로 알게 됐다”며 “놀랐다. 그 정도 수위의 대응일지는 예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원 장관도 사업 백지화는 ‘독자적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원 장관은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최종 백지화 결정을 독자적으로 내렸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장관은 정치적 책임까지도 지는 것이고, 책임을 묻는다면 인사권의 책임까지도 각오하고 고뇌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야권 일각에선 원 장관이 윤 대통령의 ‘허락’ 하에 사업을 백지화시켰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지난 7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 원 장관이 윤 대통령과 논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백지화 결정을 내렸다고 한 데 대해 “그걸 누가 독자적 판단이라고 생각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원 장관이 대통령한테, 김건희 여사한테 총대를 한 번 메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 장관의 사업 백지화 선언 파장이 정치권을 강타한 가운데, 김기현 대표도 원 장관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김 대표는 사업 백지화의 책임은 ‘가짜뉴스’로 민심을 선동한 민주당 탓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 강화 방안 논의차 이날부터 5박7일간 미국을 방문하는 김 대표는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관련 질문에 “(민주당이) 완전히 가짜뉴스, 괴담을 만들어서 헛발질하다가 양평군민들로부터 지금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여권 일각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의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주민투표·여론조사를 실시하자는 얘기가 나온다’는 질문에 “지금 해야 할 일은 민주당이 즉각적인 사과를 하고 다시는 이런 가짜뉴스와 괴담을 통해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선행돼야 할 과제”라며 “지금 탈출구가 필요한 쪽은 민주당 쪽”이라고 말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로 지역사회가 술렁이고 있는 9일 경기도 양평군청 근처에 이 사업과 관련한 입장을 담은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로 지역사회가 술렁이고 있는 9일 경기도 양평군청 근처에 이 사업과 관련한 입장을 담은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민심 이상신호? 수도권 與의원 ‘좌불안석’

다만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 백지화와 관련해 여권 내 의견은 분분하다. 특히 수도권 지역구의 의원들은 민심 악화를 우려하는 눈치다. 여권 일각에선 대통령실과 원 장관이 ‘묘수’를 두려다 결과적으로 ‘무리수’를 둔 것이란 강도 높은 비판까지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민주당이 비판받는 핵심 이유는 정쟁을 방패삼아 민생을 돌보지 않기 때문”이라며 “지금 우리(정부 여당) 모습이 이와 무엇이 다른가. 대선 공약을 뒤엎어 놓고 민주당 탓만 하는데, 정작 그 피해는 국민들이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TK(대구·경북) 지역의 여권 한 관계자는 “(사업 백지화는) 결과적으로 무리수였다”며 “이렇게 되면 당과 정부의 운신의 폭이 굉장히 좁아진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원 장관이 직권을 남용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은 1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걸 가지고 국토교통부 장관이 갑자기 발끈하면서 취소하고 백지화한다? 저는 있을 수 없는 직권남용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국책 사업으로 추진이 되고 있었다.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다. 이거를 국토부 장관이 독단적으로 취소하고 백지화할 수 있는 거냐,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실제 민심 변화도 심상치 않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 영향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밑으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10일 나왔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25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9.1%로 집계됐다. 전주 조사와 비교해 2.9%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반면 부정평가는 2.9%포인트 오른 58.0%로 집계됐다. 긍정 부정 간 격차는 18.9%포인트로 오차범위 밖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는 김건희 일가 특혜 의혹이 불거진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이 꼽혔다. 이는 일간 흐름을 살펴보면 더욱 눈에 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업 백지화’ 발언이 있던 지난 6일, 윤 대통령 지지율은 34.9%로 7.6%포인트 급락했다.

지역별 지지율에서도 고속도로 논란의 영향력이 감지됐다. 해당 고속도로와 직접 연관이 있는 지역인 ‘인천/경기’는 한 주간 지지율이 3.4%포인트 하락해 35.9%를 기록했고, ‘서울’은 4.7%포인트 하락해 37.2%로 나타났다.

리얼미터 측은 “이번 조사 결과는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국제원자력기구(IAEA) 결과 공개와 여야 공방보다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에 김건희 여사 땅 소유 의혹이 더 직접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의 응답률은 3.2%로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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