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스타 작가만큼 스타 감독도 뜬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4 15:05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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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만큼 중요해진 드라마의 연출 리더십…사전제작제 정착되면서 감독이 드라마 성패 갈라

드라마의 성패는 작가에게 달렸다?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작가만큼 이를 잘 연출해 내는 감독의 역할 또한 중요해졌다. 최근 주목되는 스타 감독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연출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걸까.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TV부문 대상과 연출상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애초 백상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대상으로 거론될 정도로 지난해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또 시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백상은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서사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이야기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작품에 대상을 줄 것인지 아니면 배우에게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이 작품의 탄생 과정을 복기하면서 결론이 나왔다. 박은빈이 대상으로, 또 유인식 감독이 연출상으로 결정된 것.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ENA 제공

우영우와 김사부를 탄생시킨 감독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대본이 몇몇 유명한 연출자에게 돌았지만 선뜻 연출하겠다고 나선 이가 없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사실상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 캐릭터인 데다, 그것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돌고 돌던 대본은 유인식 감독의 손에 넘어가면서 임자를 만나게 됐다. 유인식 감독이 박은빈이라면 이 캐릭터를 소화해낼 것이라 추천했고 그것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후일담이지만 대본을 사양했던 감독들은 박은빈이 연기한 첫 회를 보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섣불리 장애를 흉내 내기보다는 자신 스스로 해석해 너무나 러블리하게 우영우를 표현해낸 박은빈을 보며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는 것.

유인식 감독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드라마에서 연출의 영역은 전방위에 걸쳐져 있다. 캐스팅 과정에서부터 어떤 톤으로 어떤 분위기로 갈지를 정하거나 작품 전체의 흐름을 통일성 있게 잡아주는 역할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로 꼽히는 것이 ‘연기 지도’다. 배우가 그 상황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도록 알려주고 그 안에서 감정 등을 완전히 펼쳐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유인식 감독 ⓒ뉴스1
유인식 감독 ⓒ뉴스1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 스틸컷 ⓒSBS 제공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 스틸컷 ⓒSBS 제공

유인식 감독은 작품이 가진 분위기부터 주제의식, 장르적 특성, 인물이 가진 심리는 물론이고 어떤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까지 고려하며 현장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들도 경청하는 균형 잡힌 연출자로 알려져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최근 연출한 《낭만닥터 김사부3》가 가진 드라마틱하면서도 작품이 갖는 일관된 통일성을 잃지 않는 안정감은 유인식 감독의 이런 연출 리더십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지니 TV 《마당이 있는 집》은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영상 연출이 압권인 드라마다. 넓은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 사는 문주란(김태희)과 좁디좁은 낡은 아파트에서 사는 추상은(임지연)이라는 두 여자들이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변화해 가는 과정을 섬세한 심리 연출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그 공간 연출이 예사롭지 않다. 어딘가 음산한 느낌을 주는 문주란의 집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추상은의 집이 그 공간을 통해 두 여성의 심리를 표현해 내고 있어서다. 부유하지만 불안 속에 사는 문주란과 뭐 하나 누리지 못해 걸신들린 듯 뭐든 입에 넣으려 하는 허기 가득한 추상은의 모습은, 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 그 느낌을 그대로 담아 표현된다. 마치 《기생충》의 드라마 버전을 보는 것만 같은 공간 연출이랄까. 

정지현 감독, ENA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 ⓒ뉴스1·ENA 제공
정지현 감독, ENA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 ⓒ뉴스1·ENA 제공

특히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구도로 표현하는 장면들은 숨 막힐 정도로 압권이다. 문주란의 머리를 뒤에서 빗겨주는 남편 박재호(김성오)의 모습이 아내를 속이고 가스라이팅하는 남편의 실체를 인물 구도로 표현하는 장면이나, 서로 대척점에 서있는 듯 보이는 문주란과 추상은이 서로 공조해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때 두 사람이 나란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장면을 보여주는 식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드라마가 이제 사건의 재연만이 아니라 영화처럼 영상 언어를 구사하고 있고, 이를 통해 좀 더 깊이 있는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 사례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밝고 경쾌한 청춘 서사를 연출해 냈던 정지현 감독은 그래서 《마당이 있는 집》을 통해 그가 가진 연출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김철규 감독,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 ⓒ뉴스1·넷플릭스 제공
김철규 감독,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 ⓒ뉴스1·넷플릭스 제공

드라마는 작가? 감독 역할도 중요해져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셀러브리티》로 돌아온 김철규 감독도 최근 몇 년간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주목받는 연출자다. 《마더》나 《자백》처럼 인물의 깊은 심리를 파고드는 연출에 능한 김철규 감독은 《악의 꽃》에서는 범죄 스릴러와 멜로 드라마를 엮어내는 기막힌 연출을 선보인 바 있다. 《셀러브리티》는 SNS 시대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 신흥계급으로 떠오르는 인플루언서를 소재로 하는 작품으로, 성장 드라마는 물론이고 복수극과 멜로에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는 사회극적 요소까지 가진 다양한 장르적 결을 갖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재미 요소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해 내는 김철규 감독의 역량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드라마에서 그 중심은 여전히 작가지만, 최근 들어 OTT 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스토리를 제대로 그려내 소통시키는 감독의 연출 또한 중요해졌다. 신원호 감독이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시리즈를 연달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데는 예능 PD 시절부터 몸에 밴, 제작진은 물론이고 배우·스태프에게까지 의견을 듣는 남다른 ‘소통 능력’이 작동했다. 《눈이 부시게》 《나의 해방일지》 같은 작품을 연출한 김석윤 감독은 작가가 가진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게 해주는 ‘뚝심 있는 연출’이 돋보였다. 《성균관 스캔들》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등을 연출한 김원석 감독은 철저하게 준비된 연출과 더불어 인물을 따뜻하게 들여다보는 시선까지 더함으로써 시청자들이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정지인 감독,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뉴스1·MBC 제공
김희원 감독,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뉴스1·tvN 제공

이 밖에도 《돈꽃》 《왕이 된 남자》 《빈센조》 《작은 아씨들》 등으로 성숙해 가는 연출력을 선보인 김희원 감독이나, 《VIP》 《악귀》 등 범죄 스릴러에 오컬트 장르가 더해진 작품을 연출한 이정림 감독,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퓨전사극에서 새로운 눈도장을 찍은 정지인 감독 같은 여성 감독들도 주목할 만하다. 그간 흔치 않았던 여성 감독들의 등장이 연출 세계에서도 특유의 섬세함으로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과거 연속극의 개념으로 커온 드라마는 꽤 오래도록 연출이 대본 뒤에 따라오는 어떤 영역으로 치부된 바 있다. 물론 예외적인 감독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사전제작제가 본격화되기 전에 초치기로 들어오는 대본의 현실 속에서 연출이 재연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전제작제는 지상파에서도 어느 정도 정착 단계로 들어서는 상황이다. 그러니 연속극 개념이 아닌 하나의 완성된 드라마 개념의 연출도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떤 작품은 어떤 감독이 메가폰을 잡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기도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 이러한 변화는 또한 OTT를 통해 영화감독들이 드라마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더 본격화되고,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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