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라임 사태’ 주범 이인광, 해외도피 중 원격경영으로 백억대 횡령 의혹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7 07:35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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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에 경영 맡겨 빼돌린 자금 이 회장 측에 흘러가
상장폐지 등으로 손실 입은 3800여 주주 추가 피해 우려

1조6000억원대 환매 중단을 초래한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주범 이인광 에스모 회장이 해외도피 중에도 측근들을 동원해 자신이 실소유한 기업들을 원격경영해온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드러났다. 특히 이 중 한 기업에서는 비자금이 조성돼 이 회장 측에 전달된 정황까지 포착됐다.

이인광 에스모 회장(사진)이 해외도피 중에도 측근들을 내세워 자신이 실소유한 기업들을 원격경영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시사저널 사진자료·연합뉴스

회생법원 속여 약 90억원 비자금화했나

이 회장은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김정수 전 리드 회장,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 등과 함께 ‘라임 회장단’으로 불린 기업사냥꾼이다. 그는 라임자산운용 자금 2500억원을 동원해 동양네트웍스(현 비케이탑스)와 에스모(현 에이팸), 에스모머티리얼즈(현 이엠네트웍스), 디에이테크놀로지 등 상장사를 연이어 인수했다(시사저널 제1583호 ‘[단독] 라임자산운용, 기업사냥꾼 세력과 결탁 의혹’ 기사 참조).

이런 사실은 라임 사태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한 2019년 드러났다. 이 회장은 자신이 실소유한 상장사의 자금을 횡령하고 주가조작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긴 혐의 등을 받았다. 그는 2019년 10월 동양네트웍스 지분을 담보로 한 저축은행에서 수백억원대 대출을 받은 후 종적을 감췄다. 수사 과정에서 라임 사태 핵심 인물 대다수가 붙잡혀 구속된 반면, 이 회장은 아직까지도 검찰의 수배를 피해 도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은 그가 소유한 기업 어디에도 자신을 노출하지 않았다. 경영을 측근들에게 맡기고 철저히 배후에 머물렀다. 그가 잠적한 이후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엠네트웍스(옛 에스모머티리얼즈)의 경우는 2020년 말 ‘관리자’가 변경됐다. 이엠네트웍스 대표이자 이 회장의 측근인 김아무개씨가 횡령 등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르면서다.

김씨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이는 강남 사채업자로 알려진 홍아무개 회장이다. 그는 이 회장이 평소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인물로 알려졌다. 당초 홍 회장은 이엠네트웍스 지분이 전무했다. 그럼에도 이엠네트웍스 경영진은 그의 가족들로 채워졌다. 홍 회장의 조카는 대표이사에 선임됐고, 아들은 총괄본부장(부회장)에 올랐다. 국회의원 출신의 사촌에게는 사외이사 자리가 주어졌다.

이 시기 이엠네트웍스는 한국거래소에 의해 상장이 폐지된 상태였다. 대규모 횡령과 라임 사태 연루 사실이 드러난 결과였다. 이엠네트웍스는 홍 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한 지 20여 일 만인 2021년 초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 그해 2월 기업회생절차가 개시됐다. 사업부와 부동산, 재고자산 등을 매각해 회생채권자들에게 채무를 상환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과정에서 재고자산 매각 대금 일부가 비자금화된 정황이 포착됐다.

이엠네트웍스는 지난해 5월 보유 중인 경희토류 재고자산 약 134톤을 69억5117만원에 판매하겠다는 재고자산양수도 계약서 등을 회생법원에 제출해 허가를 받아냈고, 그해 7월 매각을 마무리했다. 문제는 매각가였다. 이엠네트웍스가 희토류 매각에 나섰을 당시 희토류(메탈)의 국제 시세는 톤당 2억1655만원이었다. 그러나 이엠네트웍스가 회생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명시된 희토류 톤당 매각가는 5100만원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입수한 실제 거래 계약서를 보면, 이엠네트웍스는 총 3건의 계약을 통해 희토류를 처분했다. 69억5117만원에 거래하기로 한 희토류는 53톤이었고, 나머지는 별도의 계약 2건을 통해 각각 37억9886만원과 52억4000만원에 팔려 나갔다. 회생법원의 눈을 피해 조성한 실제 매각 대금 159억9009만원 중 90억3889만원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우선 의문이 든다.

문제의 자금은 이엠네트웍스의 100% 자회사이던 에스모소재기술연구원(현 디에이네트웍스) 법인 계좌 등으로 입금됐다. 이후 에스모소재기술연구원은 지난해 9월 자본금을 3억원에서 1000만원으로 축소하는 30대 1 무상감자를 단행했고, 그 직후 홍 회장이 1억원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그 결과, 홍 회장은 에스모소재기술연구원 최대주주(91%)에 오르며 사실상 이 회사 자금줄을 쥐게 됐다. 이와 관련해 이엠네트웍스 관계자는 “3건의 계약을 통해 희토류 재고자산을 159억원에 매각한 것은 맞다”면서도 “횡령이나 배임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엠네트웍스는 회생법원에 희토류 재고자산 134톤을 69억원에 처분하겠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3건의 계약(사진)을 통해 159억원에 매각됐다.

이 회장 측에 수표 20억원 등 30억원 전달

하지만 회사 측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이후에도 이엠네트웍스 자금 유출은 계속됐다. 여기엔 이엠네트웍스가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식(RCPS)이 동원되기도 했다. 상환전환우선주는 채권처럼 만기에 투자금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환권과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이 있는 주식이다.

홍 회장은 지난 3월 차명으로 회생채권자들이 보유한 이엠네트웍스 상환전환우선주 145만7316주를 매수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매수인으로 강남의 한 카센터를 내세웠지만, 홍 회장의 조카가 해당 카센터를 대리해 매수 절차 전반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매수 절차가 마무리된 직후 이엠네트웍스는 상환전환우선주 1주당 3500원을 상환하기로 의결, 총 51억원의 현금을 지급했다.

이 역시 상법과 정관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상법과 이엠네트웍스 정관에는 회생채권자들이 보유한 상환전환우선주 상환은 배당가능이익 재원 범위 내로 한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이엠네트웍스는 누적결손금이 1231억원에 달하고 2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는 등 배당가능이익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도 이엠네트웍스 관계자는 “주주총회에서 자본·이익 잉여금을 배당가능이익으로 전환하기로 의결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엠네트웍스와 관련한 의문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공 거래를 통해 자금이 유출된 정황도 포착됐다. 이엠네트웍스는 지난해 1월부터 7월 사이 기존 사업 부문과 전혀 무관한 컴퓨터 주변기기 및 소모품 유통사업을 한다며 상품 대금 명목으로 약 39억원을 지급했다. 이엠네트웍스 내부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업체들로부터 물품공급 계약서와 거래명세표 등을 제공받았지만 실질적인 상품 공급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게 외부로 유출된 자금의 행방은 현재까지도 묘연한 상태다.

이엠네트웍스에서 나온 자금이 이 회장 측으로 흘러간 정황도 일부 파악됐다. 홍 회장 측은 올해 초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이 회장 측과 만남을 가졌다. 이 회장을 대신해 그의 측근인 이아무개씨와 이 회장의 배우자가 나왔다. 이 자리에 배석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홍 회장 측은 이 회장 측에 1억원권 수표 20장 등 총 30억원을 전달했다.

사채업자 홍아무개 회장 측은 올해 초 이인광 에스모 회장 측에 1억원권 수표(왼쪽) 20장 등 30억원을 전달한 후 영수증(오른쪽)을 주고받았다

회사 측 “홍 회장 음해 목적의 유언비어”

시사저널이 입수한 양측의 거래 영수증에는 ‘2023년 1월14일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하여 아래 영수인은 합의금 명목으로 30억원을 정히 영수함’이라고 명시됐다. 영수인 서명란에는 이 회장을 대신해 이씨가 사인을 했다. 이 합의금이 이 회장에게 전달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수표 20억원 중 17억원은 이미 현금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해 이엠네트웍스 관계자는 “홍 회장이 이 회장 측에 합의금을 전달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전했다.

홍 회장은 현재 이엠네트웍스 경영권 완전 장악에 나선 상태다. 이엠네트웍스는 지난 4월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100대 1의 무상감자를 결의했다. 무상감자가 완료되면 이엠네트웍스 자본금은 기존 9억6161만원에서 954만원으로 감소한다.

그 직후 이엠네트웍스를 홍 회장이 지분 91%를 보유한 에스모소재기술연구원과 합병하는 안건을 결의하기도 했다. 이엠네트웍스 자본금이 900만원대로 축소된 상태에서 에스모소재기술연구원과 합병할 경우 이들 회사는 모두 홍 회장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홍 회장은 불과 1억원을 들여 두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의사결정의 피해를 3800여 명의 이엠네트웍스 주주가 떠안게 된다는 데 있다. 이미 이엠네트웍스 주주들은 상장폐지와 연이은 무상감자로 막대한 손실을 본 상황이다. 여기에 100대 1 무상감자까지 더해지면서 99주 이하를 보유한 주주는 사실상 주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 경우 기존 3800여 명이던 주주는 53명으로 감소하게 되며, 그나마 남은 주주들마저도 사실상 피해 회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 된다. 소액주주들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의문 해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무상감자와 합병 결정이 이엠네트웍스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감추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상감자를 통해 주주 수를 대폭 줄여 감시의 눈을 최소화하고, 합병을 통해 희토류 매각 대금이 건너간 에스모소재기술연구원을 사실상 소멸시키려 한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이엠네트웍스 관계자는 “주주총회에서 무상감자와 합병 결정을 내린 것은 맞다”면서도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누군가가 홍 회장을 음해할 목적으로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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