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은 사라지고 정쟁만 남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5 15:05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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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장관의 섣부른 정치적 ‘백지화 선언’이 논란 키워
이재명, 가설 수준 의혹에 ‘대통령 처가 게이트’ 규정도 너무 나간 정치공세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둘러싼 논란을 이렇게 키운 계기는 윈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백지화’ 선언이었다. 원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일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관련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이 사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아무리 팩트를 얘기하고 아무리 노선을 설명해도 이 정부 내내 김건희 여사를 악마로 만들기 위한 민주당의 가짜뉴스 프레임을 말릴 방법이 없다”는 것이 원 장관의 설명이었다. 원 장관은 민주당이 제기하는 의혹이 사실이 아닐 경우 민주당은 간판을 내려야 한다며 의혹을 제기해온 민주당에 반격하고 나섰다. 대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스스로 장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는 모습을 보였다.

원 장관의 이 같은 사업 백지화 선언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국토교통부가 이미 6년 전부터 추진하던 1조7695억원 규모의 대형 국책사업이다. 2021년에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2025년 착공, 2031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고속도로가 개통될 경우 서울에서 양평까지 차량 이동시간이 15분대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숙원사업이다. 그런데 이런 사업을 야당이 의혹을 제기하자 하루아침에 백지화 선언을 한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7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 관련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元, ‘野 향한 감정적 대응’ 지적 피하기 어려워

원 장관의 입장을 일면은 이해할 수도 있다.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설명했듯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오히려 사람들은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상대편이 꺼내든 프레임은 더욱 활성화되고 강해진다.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특혜 의혹을 대대적으로 제기하고 나서면 정부와 여당은 그 진위와 상관없이 ‘특혜 아님’을 입증하는 데 진땀을 빼야 할 가능성이 크다. ‘아니 땐 굴뚝’은 아니고 노선 변경이라는 불을 아궁이에 피운 것이기에 특혜가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는 방법도 마땅치 않을 것이다. 원 장관은 총선 정국에서 발목이 잡힐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판단으로 백지화 선언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쳐 백지화 결정을 내린 것인지, 이 사업이 없었던 것이 되면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어떤 이유를 댄다 한들, 야당을 향한 감정적인 대응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의혹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일단 국민을 상대로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소명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다 건너뛰고 덜컥 백지화 선언을 했다. 국책사업이 장관 개인 마음대로 했다 말았다 해도 되는 것이 아닌 이상, 원 장관의 대응 방식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너무나 감정적 혹은 정치적이다.

그렇다고 이 사안에 대해 민주당의 주장을 옹호할 이유 또한 발견할 수 없다. 민주당이 의혹을 제기하는 대목은 당초 양평군 양서면으로 계획되었던 종점이 대통령과 양평군수가 바뀐 이후 마련된 개정안에서 김건희 여사 일가의 선산이 있는 양평군 강상면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민주당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진상규명 TF’ 단장을 맡고 있는 강득구 의원은 “강상면 JC가 생길 경우 서울 송파·강남까지 가는 데 20~2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면서 “쓸모없는 땅이 ‘황금의 땅’이 된다”고 김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 이미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도 지난 6월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기 위해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했다”고 의혹을 제기해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주장이 확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주장처럼 ‘특혜’로 단정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노선을 바꾸는 과정에서 부당한 개입이나 외압이 드러난 것도 없다. 민주당은 “예타까지 통과했는데, 환경영향평가 중 종점이 바뀌는 ‘신의 손’을 보여줬다”(장경태 최고위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1999년 이후 신설 구간의 고속도로 타당성 완료 24건 가운데 14개 노선이 타당성 조사 과정에서 시작점과 종점이 변경됐다고 한다. 양서면 종점을 예타안으로 올렸더라도 이후 진행되는 타당성 조사 과정에서 다른 곳으로 종점을 바꾸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양평군 측은 원안대로라면 1km도 안 되는 짧은 터널과 터널 사이, 그것도 높은 교량에 JCT를 만든다는 건 기술적으로도 어렵다며 교통정체 해소뿐 아니라 기존 농경지, 주택지 훼손을 최소화하는 안을 검토하다가 강상면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더라도 IC와 달리 JC 주변 땅들은 주변 지가가 상승하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적지 않다. 국토교통부는 “양평군의 요청을 최우선적으로 반영해 최적 대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양평군 내에서의 인구 분포를 따져보면 종점을 강상면으로 하는 데 대한 지역 내 찬성 여론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당에선 “대통령 탄핵 사유” 주장까지

여기에다가 민주당 소속인 정동균 전 양평군수와 친척들이 원안 노선 종점 인근에 적지 않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민주당의 ‘김건희 일가 특혜’ 주장이 무색하게 되었다. 정 전 군수는 원안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을 당시 현직에 있었기 때문에 원안 추진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에 대한 의심도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까지 나서서 “대통령 친인척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의혹의 전형으로 그야말로 국정농단”이라며 “어느 선까지 개입된 것인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공세 수위를 한껏 높이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대통령 탄핵 사유’(김두관 의원)라고 주장하면서 특검 추진과 국정조사까지 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야당은 노선 변경의 특혜성 여부를 따지고 설명을 요구할 수 있다. 그게 야당의 기능과 역할이다. 그러나 가설 수준의 의혹을 갖고 당대표가 ‘대통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라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 나간 정치공세의 모습으로 비친다.

무엇 하나 뚜렷한 것은 없는데 여야가 서로 물러서지 않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다. 지역의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한 고속도로 사업이 이렇게까지 나라가 떠들썩할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어느 것이 가장 타당한 노선인가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교통분담 효과, 기술적 문제, 환경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의 판단을 합리적으로 하지 못할 만큼 낙후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고속도로를 신설하는 국책사업을 갖고 여야는 정면충돌하는 정쟁거리로 만들고 있다. 

입으로는 습관처럼 민생을 말하면서 정작 지역 민생의 최대 현안을 가로막는 모습이다. 이제라도 시간을 갖고 합리적인 절차와 논의를 거쳐 결론을 내리면 되는 일이다. 먼저 원 장관은 자신의 백지화 선언을 백지화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여야는 고속도로를 볼모로 한 정쟁을 중단하고 객관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구를 만들어 종합적인 검토를 하고 결론을 내리면 되는 일이다.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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