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이는 지방 미분양 주택을 어쩌나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nice@sisajournal-e.com)
  • 승인 2023.07.15 12:05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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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크게 늘어나
쓰러지는 지방 건설사 증가 우려도

롯데건설은 7월11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에서 올해 청약 경쟁률의 새 기록을 썼다. 롯데캐슬 하이루체 1순위 청약에 2만여 명이 몰리면서 평균 경쟁률 242대 1을 기록한 것이다. 올해 전국 1순위 청약 기준 가장 높은 경쟁률이다. 기록을 갈아치우기 전 최고 경쟁률이던 곳도 서울에 있다. 지난 4월 GS건설이 서울 영등포구에서 분양한 영등포자이디그니티는 198.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 대어로 불렸음에도 일부 미계약 물량이 나왔던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이 분양되던 약 6개월 전에 비하면 서울 청약시장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지방 건설사發 미분양 증가가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대구 수성구의 도시형생활주택 공사 현장 ⓒ연합뉴스

서울과 다르게 청약 미달률 100%까지 나와 

반면 지방 분양시장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지난달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서 분양한 한 사업장은 153명 모집에 3명만 청약해 150세대가 미분양으로 남아있다. 같은 시기 강원도 원주시 관설동에서 분양한 단지도 873세대 모집에 10명만 청약에 도전했다. 일부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상남도의 올해 3월과 5월 청약 미달률은 100%다. 공급 물량은 있었지만 청약 도전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뜻이다. 제주도에서도 3월, 5월, 6월 분양 물량이 있었지만 평균 청약 미달률은 80%다. 울산광역시의 5월 청약 미달률도 79.1%였다. 통상 건설업계에서는 분양률이 70% 이상이면 안정적, 50% 이상이면 일정 수준의 공사비 확보가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미달률이 50%를 넘어가면 건설사 리스크는 그만큼 증가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발표를 통해서도 지방의 미분양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국토부는 최근 5월말 기준 전국 미분양 물량이 6만8865호라고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84.3%를 차지하는 5만8066호가 지방 사업장이다. 주택산업연구원에서는 실제 미분양 물량이 10만 호를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미분양 물량은 업체에 묻고 대답하는 형태로 집계되는데, 건설업체가 실제 청약 및 계약 기준 미분양보다 30~50% 적게 응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현재 실질적인 미분양은 10만 호를 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기 적체 가능성이 큰 지방 미분양 사업장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건설업과 제2금융권 부실화가 염려되므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미분양에 쓰러지는 건설업체가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이 발표한 6월 종합건설기업 폐업 업체는 53건으로 전달 38건 대비 크게 늘어났다. 올 상반기 폐업 업체 수는 248건으로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자 건설사들도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삼정기업은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수성구에서 시지 삼정그린코아포레스트를 분양했지만 667가구 공급에 9가구를 제외한 658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하자 민간임대로 돌렸다. GS건설의 자회사인 자이S&D는 대구 만촌 자이르네 미분양을 털기 위해 17~25%까지 할인 분양에 나서는 등 물량 소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소 건설사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대형 건설사는 국내시장 대신 해외시장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는 데 반해 중소 건설사는 해외시장 진출이 어렵다 보니 대다수가 지방 주택시장 위축에 따른 경영 악화를 더욱 강하게 겪는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좋았던 수년 전 마구잡이식으로 일감을 확보하던 건설사들이 지금에 와선 고전하고 있다”며 “손해만 면하자는 마음으로 사업을 진행하거나, 보유 중인 토지 등 자산을 매각해 겨우 버티는 곳이 상당수일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상반기 건설사 폐업 건수, 12년 만에 최고치

특히 지방에 사업장을 둔 건설사들은 자금 융통이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 부동산 개발은 대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진행되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마저 중단됐다. 대출 과정에서부터 막히면서 지방 소재 건설사와 자재·설비 업체 줄도산은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 PF 부실화 우려가 아직 해소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최근 들어서는 새마을금고 부동산 PF 부실에 따른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사태) 조짐으로 건설업계의 자금 융통 부담감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다행히 정부의 적극적 뱅크런 진화로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하지만 PF 대출에 대한 관리·감독이 엄격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나마 건설업계는 7월 지방 분양지수가 6월에 비해 개선됐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7월 지방광역시 아파트 분양 전망지수는 93.7, 기타 지방은 98.3으로 예상했다. 이는 6월 대비 각각 12.3포인트, 16.8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이 지수는 주택산업연구원이 주택 사업자 500여 곳을 대상으로 분양을 앞두고 있거나 분양 중인 단지의 여건을 조사해 수치화한 지표로 0.0~200.0 사이의 값을 갖는다. 지수가 100.0을 초과하면 분양 전망이 긍정적이고 100.0 미만이면 그 반대라는 의미다. 주산연 관계자는 “정부의 활성화 대책과 함께 공급 물량 조절, 할인 분양 등 사업자의 자구책 시행에 힘입어 청약 경쟁률이 개선됐고, 분양시장에 대한 긍정적 인식 역시 높아진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세제 혜택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사와 시행업체가 미분양 물량을 소진할 수 있도록 정부는 지방의 미분양 또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한 수분양자에 한해 취득세 감면, 양도세 일정 기간 감면 등 세제 혜택을 주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지역별 핀셋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며 “미분양 주택 구매 시 세금 감면 등 혜택을 부여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미분양 해소 차원에서 취득세 50% 감면과 5년간 양도세 면제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지역별 청약 양극화가 염려되는 만큼 지방의 미분양 물량부터 무주택자나 1가구 1주택자 가운데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단계적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며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 지방 주택 수요가 더 줄어들고 악성 미분양은 더 쌓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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