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없이 소리만 요란했던 은행업 경쟁 촉진 방안
  •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8 11:05
  • 호수 176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장 기대와 달리 은행 신규 진입장벽 여전히 높아…올해만 36개 핀테크 회사에 은행업 인가한 영국과 대비돼

7월5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경영, 영업관행,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은행권 경쟁 촉진, 고정금리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확대, 성과보수 개선 등 6개 과제를 담고 있다. 가장 큰 관심사였던 경쟁 촉진의 경우 현행 제도하에 신규 진입을 허용하고, 특화전문은행 제도는 추후 검토한다고 한다. 시장 기대와는 큰 차이가 나는 방안이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은행 ATM(현금자동입출급기)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은행 ATM(현금자동입출급기)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특화전문은행 제도 6년째 추후 검토만?

은행업에 과연 경쟁이 필요한지, 가장 원론적인 문제부터 짚어보자. 2018년 5월 ‘금융업 진입규제 개편방안’에 따라 금융산업 내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고 진입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경쟁도평가위원회(이하 평가위)라는 금융위 자문기구가 만들어졌다. 평가위는 2018년 11월과 2022년 12월 두 차례 은행업의 경쟁도를 평가한 바 있다.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즉 일반은행이 평가 대상이었는데, 2022년 평가 결과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을 지켜본 후 신규 인가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수요자 중심의 논의와 디지털 취약계층 등의 접근성에 대한 고려, 위기 상황에서 개별 은행 규모나 은행의 수가 금융시장 안정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진입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권고였다.

발표 자료의 문안을 그대로 인용했는데,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당분간 신규 은행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이다. 은행업과는 달리 유효경쟁 촉진 정책을 권고한 금융업종도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매우 보수적인 접근이다. 새로운 은행으로 인해 금융 안정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례적이다. 은행 경쟁과 금융 안정을 일종의 상충관계로 본 것이다.

평가위의 자문 결과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금융위와 금감원은 올해 2월22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TF’(이하 TF)를 출범시켰다. 2월15일 대통령이 주재한 제13차 비상경제민생안정회의(이하 회의)에서 취약차주 금융 부담 완화 방안의 하나로 과점 구도에 기댄 은행들의 과도한 이자수익 의존도 개선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회의 발표 자료에는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확충될 수 있도록 핀테크 혁신 사업자 등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위한 경쟁 촉진’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다. TF는 제1차 미팅 후 ‘스몰라이선스·챌린저뱅크 등’ 은행권 진입 정책의 구체적 방안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최종 발표에는 이러한 혁신적 방안이 사라졌다.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적극 허용하고, 시중은행·지방은행·인터넷전문은행 신규 인가를 추진하며, 특화전문은행을 지속 확산하겠다는 게 결론이다. 신용카드업, 저축·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 혁신금융서비스·업무위탁 등을 통한 특화 은행 서비스가 이미 제공되고 있음을 강조하며, 별도 제도 도입 방안은 추후 검토하겠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난 3월 실리콘밸리뱅크(SVB)에서 시작돼 5월 퍼스트리퍼블릭은행(First Republic Bank)까지 이어진 미국과 유럽의 뱅크데믹(bankdemic)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예금 인출 사태까지 일어나는 상황에서 스몰라이선스나 챌린저뱅크 도입이 금융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작년 평가위 권고와 같은 맥락이다. 최종 방안에 대한 시장 반응은 미미하다.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으로 예시된 대구은행 외에 핀테크 업체 하나가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신청 의사를 밝혔을 뿐이다. 현행 제도하에서 법적 요건 외에 실질적으로 요구되는 막대한 자본과 규제 준수 비용이 부담스럽고, 은산분리로 표현되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도 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기회에 진입을 기대했던 참가자들은 2021년 기준 553개에 달하는 핀테크 사업자였을 것이다. 이들에게 은행 진입은 비즈니스, 신뢰도, 투자 등을 위해 매우 유용하고 강력한 모멘텀이다. 은산분리는 별문제가 아니다. 은행 진입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언제라도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인가를 내주겠다고 하지만 이들에게는 닫힌 문이다.

그렇다면 1차 TF에서 언급된 ‘스몰라이선스·챌린저뱅크’는 왜 계속 검토 과제로만 남아있을까. 영국은 10년 전에 이미 실행했는데 말이다. 배경과 취지는 사실 우리와 같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업의 과점화가 심화됨에 따라 건전성감독청(PRA)과 금융행위감독청(FCA)이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은행 진입장벽을 낮추는 챌린저뱅크를 도입한 것이다.

 

“혁신과 소비자 보호 사이의 균형이 중요”

영국 당국은 2013년 신은행스타트업(New Bank Start-up Unit·NBSU)이라는 조직을 발족시켰고 2023년 6월말까지 총 36개 회사에 인가를 부여했다. 오크노스(Oaknorth), 아톰(Atom), 스탈링(Starling), 몬조(Monzo), 조파(Zopa) 등 핀테크 혁신 사업자들이 은행업에 대거 진출했다. 이들은 특정 분야에 특화하며 핀테크 파트너십을 통해 서비스를 다양화했다. FCA의 소매은행업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스탈링과 몬조가 포함된 챌린저뱅크에 대한 고객 만족도가 가장 높다. 개인과 소상공인 결제계좌 점유율(계좌 수 기준)은 2021년 각각 8%와 10%에 달한다. 불과 3~4년 전에는 1%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4대 은행의 점유율은 4%포인트 하락했고, 이들의 순이자마진(NIM)과 자기자본이익률(ROE)도 떨어졌다.

결론적으로 영국은 핀테크 혁신 사업자에게 일찍 은행 문을 열었고, 그 결과는 현재까지 성공적이다. 우리는 이런 영국을 지켜보며 계속 검토 중이다. 영국에 비해 우리 은행 소비자들이 매우 민감하고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존 은행 간 경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영국은 주거래은행 변경과 배우자 변경(이혼) 중 전자가 더 드문 나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금융 안정이 우선일 수도 있다. 첼린저뱅크 중 5개가 인가 취소됐다. 이에 대한 영국 FCA의 생각은 이렇다. “혁신은 위험을 수반한다. 새 은행은 망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한 진입이라도 기존 은행의 변화를 가져온다면 시장은 개선된다. 은행 퇴출이 소비자 불안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당국은 질서 있는 퇴출을 보장해야 한다. 혁신과 소비자 보호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중요하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