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 베스트11이 전원 유럽파로 채워질 날도…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5 11:05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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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성, 덴마크 진출로 국가대표 공격수 전원 유럽파로 구성
김지수는 잉글랜드, 양현준도 스코틀랜드 이적 가능성…미래 자원도 쑥쑥

지난해 카타르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의 유럽파는 총 8명이었다. 월드컵 최종 명단이 26명인 점을 감안하면 30%를 조금 웃도는 비중이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 유럽파가 1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경우가 있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A대표팀은 5~8명 정도의 유럽파로 구성됐다.

일본의 경우 점진적으로 유럽파 숫자를 늘렸고, 카타르월드컵 명단에서는 무려 20명에 이르렀다. 한국은 병역 문제 같은 현실적 숙제가 유럽 진출에 변수가 된다는 걸 감안해도 일본과의 격차는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카타르월드컵 이후 당시 유일한 유럽파 수비수였던 김민재가 “일본이 부럽다. 한국에서 유럽 무대로 직행하기가 힘들다”는 작심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를 통과하며 16강에 올랐지만 우리가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같은 특출한 스타들의 영향력이 발판이 된 반면, 일본은 스쿼드의 깊이가 더 강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A대표팀을 비롯해 한국 축구의 젊은 스타들이 더 적극적으로 유럽 무대로 나가겠다는 도전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조규성이 7월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전북 현대-FC서울 경기가 끝난 후 홈 관중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황의조·오현규 이어 조규성까지…유럽파 스트라이커 퍼즐 맞춰

지난 1월 오현규가 스코틀랜드의 명문 셀틱FC에 입단하며 신호탄을 쐈다. 소속팀 수원 삼성과 수차례 설득과 협의가 오간 끝에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셀틱에서도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 감독 체제에서 계속 A대표팀에 뽑히며 황의조, 조규성과 주전 경쟁을 펼치는 대표팀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오현규의 유럽 진출 효과에 자극받은 선수가 있었다. 조규성이었다. 원래 조규성은 오현규보다 더 많은 오퍼를 지난겨울 받았다. 셀틱은 오현규에 앞서 조규성을 먼저 노렸고, 이재성이 뛰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마인츠도 제안을 보냈다.

하지만 조규성은 겨울에 유럽으로 나가는 것에 신중했다. K리그를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 리그는 여름에 시작해 이듬해 봄에 끝나는 유럽의 시즌 시스템과 달리 11월이나 12월 초순에 시즌을 마친다. 특히 겨울에 열린 카타르월드컵 탓에 K리그가 2월부터 시즌이 시작돼 조규성은 체력이 바닥나고 몸 상태가 엉망인 상황이었다. “지금 상태로 나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며 조규성은 여름에 해외로 나가는 것을 고려했다.

실제로 최근 우수한 기량의 K리거들이 겨울에 유럽에 나갔다가 두 시즌을 제대로 못 버티고 돌아온 경우가 많았다. 유럽 경험이 풍부한 전북 현대의 박지성 테크니컬 디렉터도 비슷한 내용의 조언을 했다. 시즌 도중 들어가서 실전 위주로 다급하게 주전 경쟁을 하기보다, 시즌 준비 과정을 함께 하며 유럽 클럽의 감독과 코치,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 그 조언까지 받아들인 조규성은 일단 상반기에는 전북 현대에 잔류하겠다며 전략적으로 유럽행 유보를 결정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조규성은 3월말 누적된 근육 피로로 허벅지 부상을 입었고, 두 달 가까이 결장했다. 만약 유럽에서 이 부상을 마주했다면 팀 안착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5월 중순 돌아온 조규성은 6월부터 득점포를 가동했다. 그사이 유럽에서 새로운 제안이 들어와 있었다. 덴마크 수페르리가의 신흥 강호 FC미트윌란이었다. 덴마크 리그는 유럽에서 17위에 해당하는 중위권이지만, 미트윌란은 챔피언스리그·유로파리그 등 클럽대항전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발휘하는 클럽이다. 프로겜블러이자 스포츠 도박 및 분석 업체로 큰돈을 번 영국인 사업가 매튜벤엄이 2012년 인수한 후 미트윌란은 리그 우승 3회, 덴마크컵 우승 2회를 일구는 등 강팀으로 변모했다.

잉글랜드 2부 리그인 챔피언십 소속의 왓포드, 블랙번도 관심을 보였지만 미트윌란처럼 최종 이적료(약 42억원)가 담긴 클럽 간 공식 제안은 오가지 않았다. 결국 조규성은 미트윌란 이적에 합의하고 7월9일 덴마크로 출국해 입단 절차를 마무리하며 유럽 무대에 발을 내디뎠다. 조규성까지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이제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의 스트라이커는 모두 유럽파로 꾸려졌다. 오현규는 셀틱에서 새 시즌 준비에 들어가고, 황의조는 지난 4개월 동안 FC서울에서 임대생활을 보낸 후 원소속팀인 잉글랜드 노팅엄 포레스트로 복귀한 상태다.

김지수가 브렌트포드의 메디컬 테스트를 받기 위해 6월 21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출국하고 있다. ⓒ뉴시스

A매치 위한 이동·유럽 시즌 중 아시안컵 등 체력 문제는 고민

조규성에 앞서 유럽 무대로 건너간 K리거도 있다. 10대 센터백 김지수다. 지난 6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김은중호를 4강으로 이끈 김지수는 성남FC를 떠나 잉글랜드 브렌트포드로 옮겼다. 이적료는 70만 달러(약 9억원)다. 2004년 12월생으로 아직 만 18세에 불과한 김지수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데뷔한 2022 시즌부터 성남의 주전으로 도약했다. 어린 나이에도 대범하고 차분한 플레이로 제2의 김민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지수가 당장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하는 데는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브렌트포드는 일단 김지수를 2군 격인 B팀에서 성장시키며 향후 상황에 따라 A팀에 올리기로 했다. 브렌트포드는 조규성이 합류한 미트윌란과 같은 구단주 소유의 구단이다. 매튜벤엄 구단주는 기존의 유럽식 연령별 유스 시스템이 아니라,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산하에 2군과 위성 구단을 두고 전 세계의 유망주를 모아 성장시키는 운영 방식을 택했다. 성장세가 빠른 선수이기 때문에 김지수가 역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중 최초로 10대에 데뷔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 여름 추가 유럽파 탄생도 예고된 상태다. 강원FC의 측면 공격수 양현준이다. 오현규가 속한 셀틱이 양현준 영입을 위해 강원 구단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2002년생인 양현준은 프로 2년 차인 지난해 괄목할  성장을 보였고, 지난해 7월 열린 토트넘과의 친선전에 나선 K리그 올스타팀의 일원으로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그 활약을 계기로 셀틱을 비롯한 유럽 다수 클럽이 양현준을 주목했다. 지난 5월 셀틱은 한국에 담당자를 파견해 양현준을 관찰했고 6월 영입 제안을 보냈다.

당초 강원 구단은 셀틱행에 미온적이었다. K리그1 11위로 강등권에 있는 강원은 최근 최용수 감독을 경질하고 윤정환 감독을 선임해 위기 탈출에 집중하고 있다. 셀틱이 30억원이 넘는 이적료를 제시했지만 시즌 중 에이스를 보내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현준이 유럽행에 대한 확고한 의사를 보이며 대치 국면으로 향하자 김병지 강원 대표이사가 중재에 나섰다. 김 대표는 “셀틱과 긍정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90% 정도 진행됐다”고 말했다. 

유럽파가 늘어나며 A대표팀을 중심으로 한 한국 축구의 경쟁력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클린스만 감독 역시 유럽파 확대를 반기는 모습이다. 이미 유럽파로 활약 중인 황희찬도 “많은 선수가 유럽에서 좋은 경험을 쌓고, 대표팀에 큰 에너지를 불어넣어줄 것이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물론 A대표팀에 현실적인 고민도 뒤따른다. A매치를 위한 이동으로 인한 선수들의 누적되는 피로와 체력 관리가 대표적이다. 최근 김민재가 이 점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당장 내년 1월 열리는 아시안컵이 시험대다. 유럽 클럽들이 한창 시즌을 치르고 있는 시기여서 주축 선수들이 예전처럼 충분한 훈련시간을 갖고 대회에 돌입하던 것과 달리 조별리그 1차전 열흘 전부터 소집이 가능하다. 늘어난 유럽파만큼 한국 축구도 달라진 조건과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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