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도주’ 꿈꾼 김봉현, 또 한번 입 열까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7 07:35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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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전 회장 보석 석방과 2차 도주 비호한 세력 밝혀져야

△1차 도주: 2019년 10월8일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선언-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도주-2020년 4월23일 김 전 회장 검거

△2차 도주: 2021년 7월21일 김 전 회장 실시간 위치추적과 전자장치 부착 조건으로 보석 석방-2022년 11월11일 결심 공판 앞두고 전자장치 끊고 도주-2022년 12월29일 김 전 회장 경기도 화성시의 한 아파트에서 검거

△3차 도주: 2023년 2월9일 1심 징역 30년 선고-2023년 7월3일 김 전 회장 도주 계획 도운 친누나 체포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회장 ⓒ연합뉴스

아직도 도주 꿈꾸는 희대의 사기꾼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 얘기다. 수천 명에게 1조6000억원대 피해를 입힌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수개월이나 수사망을 피하다 검거됐지만, 보석 석방돼 추적장치를 끊고 또다시 도주했다. 48일 만에 덜미가 잡혀 1심에서 30년형을 받았지만, 이를 비웃듯 구치소 안에서도 탈옥 계획을 짰다.

이 과정에서 검사 술접대, 정치권 로비 등 힘깨나 있는 사람들이 김봉현 전 회장을 비호한 의혹도 터져 나왔다. 2020년 10월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김 전 회장의 말을 믿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기도 했다. 정부도, 정치권도, 사법부도, 수사기관도 사기꾼의 세 치 혀에 휘둘린 셈이다.

김봉현 전 회장과 관련된 사건은 돈의 액수가 엄청나고, 권력기관과 사회 지도층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에 복잡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메커니즘은 간단하다. 김 전 회장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금융사기로 한몫을 잡았고, 자신의 뒤를 봐줄 사람들에게 돈을 물 쓰듯 썼다. 돈 냄새를 맡고 지저분한 일을 처리할 조직폭력배와 이 보다 좀 더 복잡하고 섬세한 일을 할 사회 각계 지도층이 꼬였다.

김봉현 전 회장은 자신이 이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폭은 “경찰 추적을 피해야 한다”며 김 전 회장과 차를 바꿔 탄 후 34억원을 훔쳐 달아났다.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국면에서 당시 정부·여당(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을 공격할 수단으로 김 전 회장을 적극 활용했지만, 이제는 관심 밖이다.

김봉현 전 회장은 하릴없이 구치소에서 탈옥이라는 허튼 꿈을 꾸었지만 그마저도 들통나 버렸다. 이제는 징역 3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이 ‘아직도 하지 않은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김봉현 전 회장의 옥중편지나 측근들의 증언·진술, 녹취파일 등을 종합하면 김 전 회장과 관계를 맺은 사회 지도층은 한두 명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라임 펀드 운용과 1차 도주를 비호한 세력 △보석 석방과 2차 도주를 비호한 세력 등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김 전 회장이 탈옥이라는 헛된 망상을 잊고 징역 30년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했을 때, 대한민국은 또다시 김 전 회장의 ‘입’에 뒤흔들릴 수 있다.

 

마카오로 전세기 보내 공범 빼내

김봉현 전 회장은 1심에서 1258억원대 횡령·사기 혐의가 인정됐다. 추징금만 769억원이다. 서민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돈이다. 이 정도 돈을 불법적인 일에 서슴없이 쓴다면 어떤 일까지 가능할까.

이번 탈옥 시도 사건에서도, 김봉현 전 회장은 같은 구치소 수감자에게 “탈옥에 성공하면 20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밖에 있는 친누나가 수감자의 지인을 만나 착수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김봉현 전 회장 측 변호인은 7월11일 항소심 재판에서 “30년을 선고받은 이후 종신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극단적인 생각을 하며 나날을 보내왔다. 일종의 정신병동 같은 곳에 있다가 그곳에서 폭력조직원을 알게 됐다”면서 “폭력조직원이 6개월간 지극정성으로 김 전 회장의 마음을 사더니 결국 꾀어냈다. 김 전 회장은 정신이 홀린 사람처럼 돈을 주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김봉현 전 회장은 2019년 3월경 공범이 마카오에서 잡히자 전세기를 동원해 빼낸 적이 있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검은돈으로 조폭과 사회 지도층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라임 사태 관련 검경 수사와 재판 기록에 따르면, 김봉현 전 회장의 지시로 해외도피 중이었던 A씨는 2019년 3월경 괌-베트남 호찌민-중국 칭다오·항저우를 거쳐 마카오에 도착했다. 그러나 입국심사에서 ‘인터폴 적색 수배자’로 여권이 정지 상태라는 것을 통지받고 유치장에 수감됐다.

김봉현 전 회장은 “무조건 꺼내줄 테니 걱정 마라. 한국으로 돌아오면 절대 안 된다”며 조폭 4명을 동원해 ‘여권 바꿔치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는 조폭을 통해 캄보디아 출국을 주선했으나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영사관 측이 A씨를 접촉해 귀국을 종용했다. 이를 전해 들은 김봉현 전 회장은 “한국 돌아오면 징역 5년은 받을 텐데 차라리 거기서 목매달아 죽어라”면서 갖은 욕설을 했다.

유치장 5일째, 조폭이 다시 A씨를 찾아 “마카오 경찰, 공항 경찰, 항공사 등에 로비 창구를 찾았다”고 전했다. 그다음 날부터 마카오 공항 직원들의 태도가 돌변하더니 이틀 후 캄보디아 프놈펜행 전용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이 전세기는 중국 J그룹사 소유로, 김봉현 전 회장은 통상 대여비의 3배에 이르는 1억원가량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비 작업은 관변단체 수장을 지내기도 했던 정치인 B씨의 인맥을 활용했다고 한다.

전세기에는 김봉현 전 회장이 한국에서 보낸 조폭이 타고 있었고, 여권도 돌려받았다. 더 기가 막힌 건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자 3성 장군이 마중을 나와 있었고, 입국 심사도 없이 VIP 통로를 통해 입국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여권에는 입국 스탬프가 찍혀 있지 않았는데, 함께 온 조폭의 여권으로 호텔에 체크인했다. 이후 A씨는 김 전 회장의 지시와 감시 아래 베트남 호찌민·다낭, 중국 칭다오 등 중국과 동남아 국가를 밀입국으로 넘나들다 결국 자수를 선택했다.

김봉현 전 회장으로부터 술접대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검사 3명 중 1명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진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모습 ⓒ시사저널 박정훈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 ⓒ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정치인·검사·판사·변호사 등 연루 의혹

해외에서의 로비가 이 정도인데, 국내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김봉현 전 회장과 관련해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은 정치인은 물론이고 검사, 판사, 변호사까지 부지기수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20대 총선 전후로 김봉현 전 회장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현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회장은 맞춤 재단사를 기 의원에게 보내 200만원 상당의 양복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봉현 전 회장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던 기동민 의원에게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관련 인허가를 청탁하기 위해 금품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기 의원 측 변호인은 4월18일 열린 첫 재판에서 “양복을 주고받은 사실은 맞지만 대가성은 없었다”며 “나머지 금품은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비례)과 김영춘 전 민주당 의원은 각각 500만원, 김갑수 전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 부대변인은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김봉현 전 회장은 6월7일 재판에 출석해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불법 정치자금 1억6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모두 시인했다.

김봉현 전 회장으로부터 술접대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검사 3명 중 1명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지난해 9월30일 1심 재판부는 “1회 향응가액이 93만9167원으로 1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부정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명목과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 300만원 초과 금품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 된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1월16일 서울남부지법 홍진표 영장전담 부장판사를 직권남용,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검찰이 김봉현 전 회장에 대해 청구한 첫 번째 구속영장과 통신영장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홍 부장판사의 안일한 판단으로 경제 사범의 도주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홍진표 부장판사뿐만 아니라 김봉현 전 회장의 변호인이었던 홍이표 엘케이비파트너스 변호사, 남기정 법무법인 강한 대표변호사, 위현석 법무법인 위(WE) 대표변호사 등을 김 전 회장 도피 ’공범’으로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김봉현 전 회장과 관련한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신빙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범이나 참고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이 로비를 했던 대상은 언론에 공개된 것보다 훨씬 많다”면서 “특히, 보석 석방과 2차 도주 과정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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