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와 저커버그의 격투기 혈전, 온라인 뚫고 나오나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5 10:05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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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철창 경기 벌이자” 도발에 저커버그, UFC 챔피언과 찍은 사진 올려
실제 대결 가능성은 희박…노이즈 마케팅 노린 술수라는 지적도

글로벌 테크 업계의 최강자이자 억만장자인 일론 머스크(52)와 마크 저커버그(49)의 불화와 반목, 그리고 기행이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시작은 6월21일 머스크가 자신의 트위터에 “그가 좋다면 나는 기꺼이 철창 대결을 벌이겠다”는 내용을 올리면서다. ‘그’는 사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경쟁자인 저커버그를 가리킨다. 미국의 복스 미디어가 운영하는 뉴스 웹사이트인 더버지는 그다음 날 머스크의 트위터 내용을 전하면서 “저커버그도 준비가 돼있다”며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테크 분야 억만장자의 싸움”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듣기만 해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철창 대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 격투기 단체인 UFC가 주관하고 전 세계에 중계하는 종합격투기(MMA) 경기의 별칭이다. 높이 1.8m, 직경 11.5m의 철창에 둘러싸인 옥타곤(팔각형의 공간)에서 경기를 펼쳐 이러한 별명이 붙었다.

ⓒ일트스트 오상민
ⓒ일트스트 오상민

머스크의 “저크 커크” 조롱에 저커버그는 복근·팔 근육 과시

황당한 농담으로 보이던 철창 대결 제안은 7월1일 뉴욕타임스(NYT)가 “이들의 철창 경기는 농담이 아닌 것 같다”고 보도하면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NYT는 UFC의 데이나 화이트 회장이 두 사람의 대결을 현실화하기 위해 물밑 조율 중이라고 보도했다. 더버지는 7월8일 “만일 이들이 대결을 벌인다면 네바다주 엔터프라이즈에 있는 UFC 에이펙스 경기장이 유력하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들의 설전이 갈수록 원색적이고 낯 뜨겁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7월10일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저크(Zuck·저커버그를 가리킴)는 커크(Cuck·무기력한 남성을 가리키는 속어)”라며 “문자 그대로 ‘길이 대결’을 제안한다”는 내용을 올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7월10일 “티격태격 승강이를 벌이면서 갈수록 비열하고 천박하게 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커버그를 약칭인 저크로 부른 것은 그렇다 해도 커크로 표현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케임브리지 영어사전에 따르면 커크는 허약한 사람을 모욕할 때 쓰는 용도를 넘어 다분히 정치적이며 대결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백인우월주의·백인민족주의·이슬람포비아·반페미니즘·반유대주의·반이민·반다문화·반대외개입주의(토착주의)를 내세워 미국의 주류 보수주의를 대체하자는 대안우파(Alt-Right) 추종자들이 신념이 다른 사람을 모욕할 때 자주 쓴다는 이야기다. 대안우파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머스크는 자신을 “좌우라는 프레임에 구애받지 않는 중도파”라고 표현하지만 2010년 이후 공화당을 지지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저커버그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지지 후보를 밝힌 적은 없지만 지난 대선 당시 그가 소유한 페이스북 등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계정을 ‘거짓 뉴스’ 유포 등의 혐의로 중지시키고 트럼프의 주장을 담은 포스팅을 삭제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이런 페이스북의 결정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는 지난해 9월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계정 정지나 포스팅 삭제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쟁자인 저커버그와 반대의 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머스크의 조롱에 저커버그는 7월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UFC 미들급 챔피언 이스라엘 아데산야, 페더급 챔피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와 함께 찍은 상의 탈의 사진을 올렸다. 저커버그는 탄탄한 복근과 우람한 팔 근육을 내보였다. 그야말로 장군멍군의 형국이다.

그렇다면 머스크는 왜 저커버그에게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도발을 계속하는 것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는 저커버그가 CEO로 있는 메타가 7월5일 새로운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인 ‘스레드’를 출시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글로벌 소셜네트워크 플랫폼 강자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기업인 메타가 스레드를 출시한 가장 큰 이유는 머스크가 지난해 인수한 해당 분야 경쟁사인 트위터를 누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저커버그는 7월5일 경쟁 플랫폼인 트위터에 스파이더맨이 스파이더맨 자신을 가리키는 밈을 올렸다. 저커버그의 트위터 사용은 2012년 1월18일 이후 무려 11년 만이다. 이는 트위터와 비슷한 스레드를 출시하면서 트위터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저커버그는 “10억 명 이상이 참여하는 개방형 대화 플랫폼 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스레드를 앞으로 그렇게 키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두 억만장자, 실제 주짓수 등 무술에 일가견

기존 인스타그램 계정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스레드는 출시 4시간 만에 가입자가 500만 명을 넘어섰고 7월9일에는 1억 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머스크가 저커버그를 상대로 기행을 이어간 것은 트위터 대주주로서 스레드 돌풍 앞에 불안·초조함을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철창 대결은 실제 이뤄질 수 있을까? 사실 저커버그는 코로나19 대유행기 동안 브라질의 무술로 MMA 핵심의 하나인 주짓수를 훈련받았으며, 5월6일에는 생애 처음으로 경기도 치렀다. 그는 미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 고교에서 열린 대회에서 도복을 입지 않고 치르는 노기 주짓수에서 다른 출전 선수 여섯 명과 겨뤄 금메달을, 도복을 입고 벌이는 도복 주짓수에선 17명과 경쟁해 은메달을 각각 땄다. 머스크 또한 유도·태권도·주짓수를 단련해 무술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이 무술을 수련했다고 해서 현실에서 실제 피의 대결을 벌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감성 분출 외에 두 사람이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철창 안에서 벌어지는 격투기 대결 결과에 따라 패한 쪽에서 트위터나 스레드 같은 초대형 글로벌 비즈니스를 접을 가능성은 없다. 게다가 비즈니스는 아무리 대주주라고 해도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도 없다.

이들이 주고받는 자극적 언사는 자신들의 소셜네트워크 사업을 위한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일 수도 있다. 전 세계 사람이 쓰는 소셜네트워크에 격투기라는 인기 스포츠, 그리고 서로 다른 개성의 두 억만장자 기업인이 어우러져 전 세계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수억 달러를 들여야 가능했을 마케팅을 두 사람의 신경전과 기행이 대신 해준 셈이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의 ‘실시간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따르면 7월13일 현재 머스크는 재산 2443억 달러로 1위이고, 저커버그는 1096억 달러로 7위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오히려 재산을 늘렸다는 사실이다. 7월13일 기준으로 전날보다 머스크는 14억 달러(0.59%), 저커버그는 38억 달러(3.64%) 각각 증가했다. 머스크와 저커버그의 신경전은 보는 사람을 짜증 나게 할지 몰라도 자신들에겐 경제적으로 서로 손해볼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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