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X같네”, 부모는 “아동학대 신고”…벼랑 끝에 선 교사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7.2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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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초등교사 노조 실태조사서 99.2% ‘교권침해’ 경험
서이초등학교에서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한국교총 회원들이 20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진상규명과 교권이 존중되는 정당한 교육활동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이초등학교에서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한국교총 회원들이 20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진상규명과 교권이 존중되는 정당한 교육활동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이초 교사의 극단 선택으로 인한 파장이 확산하는 가운데 사실상 모든 초등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이 21∼24일 전국 초등교사 23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권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99.2%인 2370명에 달했다.

교권침해 유형으로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49.0%)이 가장 많았다.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불응·무시·반항'(44.3%), '학부모의 폭언·폭행'(40.6%), '학생의 폭언·폭행'(34.6%) 등이 뒤를 이었다. 

노조의 교권침해 사례 접수에 교사 2000여 명이 현장에서 겪었던 경험을 공유하며 실태를 전했다. 

교사의 인격을 모독하는 학부모 폭언과 함께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퍼붓는 학생들의 사례 다수가 포함됐다.

한 교사는 '학생끼리 괴롭힌다'는 신고가 들어와 당사자 간 속상한 점을 대화하고 사과하게 했는데 이후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인 거 아시냐"며 민원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교사는 학부모 상담일 여러 학부모로부터 "올해 결혼할 계획이 있나, 혹시 계획이 있다면 학기 중에는 수업 결손이 생기니까 방학 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교권침해가 일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 개탄했다. 

한 학부모는 본인의 자녀가 따돌림을 당했다고 항의하면서 학교로 찾아와 교사에게 "애는 낳아봤냐?"고 항의를 했다고도 한다. 

예정된 수업 시간대로 일정을 마친 후 학생을 개별하교토록 했는데 "수업시간을 지키지 않았다"며 교육청이나 신문고, 맘카페에 민원이 제기된 적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달 23일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 담당 교사가 학생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쓰러져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 담당 교사가 학생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쓰러져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교사를 향한 학생들의 인권 침해 역시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다른 친구를 가위로 찌르려는 학생을 교사가 제지하자 교사에게 분노를 드러내며 여러 차례 주먹질을 했다는 사례도 접수됐다. 최근 공분을 일으킨 초등학교 6학년생의 교사 폭행 사건처럼 교실에서 학생으로부터 맞는 교사들이 점점 더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학생은 수업 중 큰 소리로 "아, 재미없어, 이거 왜 해, X같네" 등의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또 어떤 학생은 교사에게 "공무원이 나랏돈 받고 뭐 하는 거냐, 자격이 있냐, 여기 있는 이유가 뭐냐" 등 막말을 일삼기도 했다. 

학생이 교사를 몰래 촬영해 단체 채팅방에 공유하고, 신체 부위 등을 언급하며 성희롱을 한 사건도 있었다. 

노조 측은 "근무 시간이 아닌 때에도 학부모의 민원으로 교사들이 사생활을 침해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학부모가 교사 개인 전화로 연락하지 않도록 학교에 통합민원 창구를 만들어 학생 교육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만 담당 교사에게 전달되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학교폭력 사안을 교사들이 전담하도록 하는 제도 역시 부적절하다고 짚었다. 노조는 "아무 권한도 없는 교사가 (학교)폭력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교사에게는 법적으로 학폭 의심 신고 의무만 부여하고 조사는 수사권이 있는 경찰이 책임지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의 조속한 통과와 학생에 대한 교사의 생활지도 범위를 규정한 교육부 가이드라인(고시)을 하루빨리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수경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은 "그동안 교사들은 각종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 아동학대 위협을 맨몸으로 감당하며 무력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며 "교육활동뿐 아니라 교사도 보호해 교육이 바로 설 수 있게 해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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