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산치수는 나라의 기본, 文 정부 때 ‘보 폭파말라’ 계속 말해”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31 11:05
  • 호수 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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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산강 사업’ 뚝심 보였던 박준영 전 전남지사 “식량 안보·수해 방지엔 여야 따로 없다” 
“靑 공보수석 시절 野 비판했다가 DJ로부터 ‘여야는 정쟁하더라도 靑은 해선 안 돼’ 꾸중 들어”

4대강, 민주주의, 국가의 미래. 얼핏 보면 서로 동떨어진 주제처럼 보이는 이 의제들을 시종일관 하나로 꿰어 말했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 이야기다. 박 전 지사는 7월24일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사옥에서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 원로다운 모습을 보였다. 그의 시선은 후손들을 위한 미래를 향해 있었으며, 그 방법론에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정신이 녹아있었다. 

그는 전남지사 시절(2004~14) 소속 정당인 민주당 당론에 맞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중 하나인 영산강 살리기를 끝까지 밀어붙였던 장본인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영산강 살리기는 지역의 미래를 위해 포기할 수 없었던 사업이라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소신은 마지막까지 지키되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세 번의 전남지사 이후 2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언론인(중앙일보 부국장) 출신으로 김대중(DJ) 정부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과 국정홍보처장을 지냈다. 

 

최근 문재인 정부 당시 환경부의 금강·영산강 보 해체 결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정치적 결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정권의 방침이 그랬다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사안을 현 정부가 고발하고 처벌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당시의 정책 결정을 사법부로 끌고 가는 일은 안 하는 게 맞다. 이렇게 하면 불행한 역사가 계속 반복된다. 당시 장관과 실무진을 구속해 사법 처리하겠다고 하면, 정권이 바뀌면 같은 일이 계속 되풀이되게 된다. 이런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이 바라는 방향도 아니라고 본다.”

7월24일 시사저널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박준영 전 전남지사 ⓒ시사저널 이종현

“물 관리에 식량 안보 달려…여야가 어딨나”

윤석열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16개 보 존치’를 선언했다. 

“제가 문재인 정부 당시 계속해서 했던 말이 ‘보는 폭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4대강 사업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국가의 큰 예산을 들여서 한 사업 아닌가. 보가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효과가 있는지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여야가 합의해서 계속 해나가는 게 맞다는 주장이었다. 녹조 현상 등 일부 부작용은 보완해 나가면 된다. 후손들이 의사결정을 하게 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 관리에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물 관리에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나.

“그렇다. 치산치수(治山治水)는 나라의 기본이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식량 안보와 국민의 안전이 달려 있다. 우선 물 관리는 농업과 직결된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50%에 못 미치고, 곡물 자급률은 겨우 20%대다. 이런 나라에서 물 관리를 체계적으로 해서 농업이 잘되게 하는 일은 그 어떤 국정과제보다 중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예측할 수 없는 복합위기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물론 잘사는 이들은 어떻게든 식량을 구해서 먹겠지만, 서민들도 과연 그럴까. 이렇듯 중차대한 식량 자급률을 높이려면 물 관리가 필수적이다. 여야가 따로 없는 문제다.”

체계적 물 관리를 왜 강조하나.

“제가 전남지사를 할 때 전남의 브랜드를 ‘녹색의 땅’으로 정하고 물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 관리는 친환경 농업과 직결된다. 대한민국의 식량을 제공하는 일번지 전남이 안전한 식품을 제공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여기에 체계적인 물 관리는 ‘바다 경영’과 ‘신재생에너지 사업’과도 직결된다. 지금도 이 세 가지 모두는 국민의 삶과 직결된다. 평화가 흔들려 자급자족을 해야 할 때 식량과 에너지는 필수적이다.”

국민의 안전은 무슨 의미인가.

“이번 수해에서도 드러났듯 국가 전체의 물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과도 직결된다. 수해가 나면 인명 피해로 직결되기 쉽다. 준설 작업 등 하천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물을 가뒀다면 넘쳐서 위험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각별하게 주의해 관리해야 한다. 댐 관리 같은 큰 사업부터 보·하천 정비까지 철저하게 관리해야 수해가 났을 때 국민을 지킬 수 있다.”

전남지사 시절 ‘4대강 반대’라는 민주당 당론과 반대로 영산강 사업에 찬성했다.

“(단호하게) 영산강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영산강은 과거 정부부터 오랫동안 방치돼 오염이 심해 농업용수로 쓰기도 부적합한 상황이었다. 김대중 정부 당시 4대 강 수질 개선사업이 추진됐을 때 예산이 2005년까지 목표 대비 한강은 120%, 낙동강은 80%, 금강은 70% 이상 투입됐지만 영산강은 40%대에 머물렀다. 그만큼 수질 개선이 더뎠다. 특히 영산강 하굿둑이 생긴 이후 물 흐름이 단절돼 강바닥엔 오염된 흙이 쌓였다. 강의 폭은 50~100m 정도 되지만 물이 흐르는 곳은 1~2m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사정이 이러니 홍수가 빈번하고 물이 썩어갔다.”

 

“윤 대통령, 좀 더 겸손한 자세 필요”

4대강 사업은 지금까지도 정치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저는 (전남지사 시절)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민주당도 그전부터 공약에 영산강 살리기가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현장에 와서 영산강을 보면 다들 제 생각에 찬성해 줬다. 준설의 필요성도 확실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렇게 제가 확고하게 딱 정리했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계 원로인만큼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지금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구체적인 개별 현안에 대해 깊게 말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다만 여야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있다. 정치는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국민의 안위를 고민하는 일이다. 집권여당의 가장 큰 역할은 세 가지다. 첫째는 오늘을 사는 국민이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 셋째는 분단된 상황에서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통일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지 준비하는 일이다. 여당은 이런 고민을 하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야당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협조할 일은 적극 협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추후 정권을 차지했을 때 결국 지금의 여당 협조를 받아야 한다.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은 ‘정치 실종’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양당 모두 ‘싸움’이 아니라 ‘경쟁’을 해야 한다. 특히 정책 경쟁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좀 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야당에 협조해 달라는 부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야당도 국가와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에 임해야 한다. 오늘 정치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후손들이 살아갈 내일의 나라가 결정된다. 지금의 결정들이 내일의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 한국 정치가 잊고 있는 점이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어떻게 다른가.

“최근 미국에서도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두고 여야의 심각한 대치가 있었다.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미 연방정부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도 있는 엄중한 상황이었다. 이런 뉴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저는 주변에 ‘레드라인을 넘기 전에 해결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는, 미국은 대통령이 직접 야당을 만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직접 만나 ‘문제를 해결하자’는 큰 합의를 한다. 세부 협상은 뒤로 미루고, 일단 큰 틀에서의 합의를 끌어내는 리더십이 있다. 미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와 역사가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

과거엔 어땠나. 지금과 다른 점이 있었나.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 청와대 공보수석을 할 때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DJ를 강하게 비판한 일이 있었다. 기자들의 논평 요구가 쏟아졌다. 사안을 두루 살펴보니 이 총재의 주장이 너무 안 맞았다. 팩트를 잘 모르고 한 말이었다. 그래서 제가 ‘사실을 좀 잘 알고 말씀을 하셔야 한다’는 비판의 취지로 논평을 세게 냈다. 그날 저녁 뉴스에 이 총재와 제 얼굴을 붙여놓은 보도가 나왔다. 다음 날 오전 일찍 관저에서 대통령 보고를 하는데, 처음으로 ‘어제 공보수석은 왜 이 총재를 그렇게 비판했나’라고 물으셨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언이라 그랬다’고 설명을 드리니, ‘그럼 내게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사실상의 질타였다. 제가 공보수석을 한 2년 반 동안 DJ로부터 유일하게 꾸중을 들은 날이었다.”

 

“‘정쟁’ 대신 ‘타협의 정치’ 하라고 주문한 DJ”

DJ가 질타한 이유가 궁금하다.

“DJ가 당시 하신 말씀이 ‘야당 총재가 좀 이야기가 되지 않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정면으로 반박하면 안 된다’였다. 국정을 책임지는 청와대가 야당과 너무 충돌 양상으로 가면 일이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신 거다. 오해가 있으면 서로 대화로 풀라는 주문이었다. 아울러 청와대는 정쟁을 하지 않는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설사 여당과 야당은 충돌하더라도 청와대는 그러면 안 된다는 태도를 강조하신 거다. 실제 DJ는 많은 갈등적 현안을 토론과 타협으로 풀라는 주문을 늘 했다. 제가 어떤 일방의 주장을 한다 싶으면 ‘수석회의에서 토론을 해봐’ ‘누구를 찾아 더 이야기를 들어봐라’라고 하셨다. 그렇게 DJ는 늘 인내하고 인내했다. 회고록을 보거나, 지금도 대통령 말씀을 적어놓은 노트를 보면 DJ는 꼭 하고 싶은 국정과제들을 야당이 반대하니까 많이 양보하거나 끝내 못 이룬 일들이 있다. 하지만 그랬기에 기초생활보장제 등 지금까지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수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그렇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선거에서 승리한 쪽은 승리했다고 너무 자만해선 안 된다. 자신을 뽑지 않은 약 절반의 국민도 존중해야 한다. 반면, 야당 역시 국민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지금 제가 제일 걱정되는 것이 TV와 뉴스 속 정치의 모습이 ‘싸움’뿐이라는 점이다. 이러면 젊은 세대 전체에게 싸우고 대결하는 게 정치의 전부라고 인식될 여지가 있다. 사회의 전체 분위기도 이렇게 흐를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국민이 불신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결할 개헌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나.

“민심이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높아 의원내각제는 지지하지 않으니 이원집정부제로 ‘외치는 대통령, 내치는 총리’가 맡는 식으로 개헌을 하면 좋다고 본다. 해외 성공 모델도 있지 않나.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 높은 정치 불신이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나. 대결과 재선에만 매달리는 정치를 바꿔야 한다. 개헌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한 나라를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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