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감형이 ‘거래’된다… 사라진 ‘피해자 중심주의’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7 11:05
  • 호수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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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 감수성 없는 판사들이 보복범죄 우려 키워

지난 5월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모르는 여성을 상대로 한 ‘묻지마’ 성폭행 범죄였다. 거구의 범인은 일면식도 없던 한 여성을 따라가 무자비하게 구타해 의식을 잃게 한 후 성범죄를 저질렀다. 죄질이 아주 나쁘다. 이 사건은 단순 폭력 사건으로 마무리될 뻔하다가 가해자의 성범죄 혐의가 피해자에 의해 뒤늦게 밝혀지면서 항소심 재판에서 최종 20년을 선고받았다. 

징역 20년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중한 벌이긴 하다. 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한 범죄의 무거움, 반성 없는 태도는 재판부가 20년 실형을 선고했음에도 피해자를 다시 공포 속으로 빠뜨렸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니 출소 후에 피해자를 해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범죄 외에도 수십여 차례 전과가 있는 가해자에 대해 재판부는 “과도한 공격적 특성과 반사회적 성격을 보아 법을 준수하려는 기본적인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면서도 “불우한 성장 과정이 영향을 미친 것”을 참작해 검찰의 35년 구형을 20년으로 줄여 판결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대낮에 대형마트에서 처음 본 10대 여학생을 화장실로 끌고 가 강간한 20대 남성은 강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감경 사유는 75번에 걸친 반성문 제출이었다.

6월12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 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시민들이 줄 서 있다. ⓒ연합뉴스

‘성범죄 감형 패키지’ 제공하는 로펌

여론은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매번 분노와 실망을 표출했다. 누리꾼들은 “판사와 그 가족이 같은 일을 당해 봐야 한다”며 사법부의 상식에 반한 결정을 비난했다. 우리 재판부는 유독 성범죄의 경우 감형을 많이 해준다. 실제 성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집행유예가 실형보다 2배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부의 관대한 감형 기준이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재판부의 이러한 감형은 형법 제51조와 제53조에 근거한다. 법률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범죄에 참작할 만한 요소가 있으면 판사가 형을 깎아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런 제도가 판사의 재량권 행사를 보장하기는 하지만, 과연 합리적인 기준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재량권 남발이 전관예우와 연결돼 있다는 의심도 사고 있다. 

그동안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밝힌 감경 이유는 다양하다. 피고인이 ‘초범인 경우’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 ‘불우한 성장 환경’ ‘80세의 고령’ ‘2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 ‘전도양양한 대학생’ 등이 있다. 심지어 ‘고도비만’도 감경 사유가 됐다. 이 외에도 ‘스스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이수’ ‘성폭력 재발 방지 교육을 받고 자원봉사’ ‘소감문이나 반성문 제출’ ‘공탁금 제출’ ‘합의금 액수’ 등이 있다. 피해자와 상관없는 ‘시민단체에 기부금 납부’ ‘장기 기증 서약’ 등도 있다.  

2016년 한 건강검진센터장은 환자들을 성추행해 1심에서 3년6개월을 선고받았는데, 장기 기증 서약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000만원의 기부금을 내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으로 감경됐다. 

판사의 감경권은 인터넷 공간에서 ‘성범죄 감형으로 이어지는 꿀팁’이라는 제목으로 공유되고 있다. 무엇보다 로펌들에 ‘성범죄 감경’이란 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일부 로펌은 성범죄 피고인들에게 ‘소감문 및 반성문 대필’ 등 각종 성범죄 감형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감경을 넘어 성범죄 불기소 처분을 이끌어낸 후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해 준다는 패키지마저 나왔다. 특히 돈이 없는 피해자들에게 로펌이 합의를 설득하며 2차 가해를 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로펌 수요로 편입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형사공탁 제도가 바뀌면서 형사공탁금을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걸 수 있게 됐다. 법원은 이 형사공탁금을 피해자 합의에 준한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 인기 있는 감경 팁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심지어 피고인들에게 ‘천사 공탁’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다는 이 형사공탁금은 선고 하루 전에 피해자도 모르게 제출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대응할 시간을 갖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한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재판에서는 10명 중 8명이 공탁금을 내고 감형을 받는다. 

 

반성문 썼다고, 공탁금 냈다고 형 줄여줘

재판부 판결을 보면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이 감형의 잦은 이유가 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반성의 기준은 상식적이고 객관적인지, 그 반성문 자체의 대필 여부를 확인이나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반성문의 대상이 정작 용서를 구해야 하는 피해자가 아닌 재판부라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진지한(?) 반성문 수십 통이 판사에게 제출되는 게 어찌 감경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반성하고 있다며 형량을 줄여주기보단 반성하지 않을 때 가중처벌하는 게 상식에 맞다. 판사는 피해자의 대리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지한 반성과 사과, 용서는 피해자를 향한 것이어야지 판사를 향한 것은 의미가 없다. 

전문가들은 판사들이 피고인에게 관대해지는 이유에 대해 재판 과정에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주 만나는 피고인에게 감정을 과몰입하고 라포(공감대)가 형성돼 피고인의 방어권 보호와 온갖 사정에 온정적 시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형사재판의 경우 검사와 피고인을 당사자로 인정해 피해자는 재판에서 배제되거나 적극 참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 감형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한 ‘양형 자료’가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법원에 제출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또 다른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피고인 변호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양형 자료는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주장하거나, 가해자 중심의 사실관계를 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은 강력 범죄인 경우 피해자나 그 가족이 피고인을 직접 신문하거나 양형에 대한 의견을 적극 개진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피해자가 원고의 위치에 검사와 함께 있으면서 재판에 자신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게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법부 판사들은 성범죄의 심각성(피해자의 고통과 피해 정도)을 잘 모르고,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려고 애쓰는 것 같지 않다. 성인지 감수성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연결되는 것으로, 재판부는 사건마다 피해자가 놓인 상황과 상태를 고려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면서 피해자 중심으로 판단하려면 최소한 성범죄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거나 에세이라도 읽어봐야 한다. 피고인의 형식적인 반성이나 공탁 여부로 너무 쉽게 감형을 남발할 때 피해자들은 사법부가 그리고 정의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느낀다. 피고인의 감형은 그가 처한 개인적인 상황보다는 피해자에게 정말 용서받았는지, 용서받을 만한 노력을 했는지, 그럴 만한 태도를 보였는지가 기준이 되어선고에 반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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